[Opinion]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시나요? [영화]

엘리자베스 생키 <로맨틱 코미디>
글 입력 2021.02.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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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오는 밤, 달달한 팝콘과 뻔한 사랑 이야기가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예전에 즐겨보곤 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다시 찾아본다.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결말을 보고 나면, 그때서야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 느꼈던 그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꽉 막힌 해피엔딩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려고 영화를 틀었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넘기던 장면에 “왜?”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질문들은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나는 그저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기분 좋게 침대에 눕고 싶을 뿐인데! 가끔은 영화를 그대로 꺼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로맨틱 코미디를 찾는다.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좋달까. 일종의 '길티 플레저 (guilty pleasure)'다. 다행히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나만은 아닌듯하다.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로맨틱 코미디 영화 마니아였다.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는 사랑과 연애를 굳건하게 믿어왔던 감독은, 해당 장르의 엔딩인 ‘결혼’을 거친 이후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는 인생과 실제 삶의 접점이 사라지자, 즐겁게 봐왔던 영화들의 온갖 결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클립만으로 구성된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로, 1934년부터 2018년까지의 160편이 넘는 영화 클립 위에 음성 해설을 덧붙인다. 감독은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성찰해나간다.

 

 

 

전형적인 여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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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스크루볼 코미디는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탄생했다. 해당 장르는 빠르고 재치 있는 대사를 중심으로 계급이 다른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여자 주인공은 주로 상층계급의 똑똑한 신여성이고, 남자 주인공은 주로 중하층 계급의 전문직이다. 이들은 서로의 다양한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지만, 결국에는 사랑에 빠진다. 장르 특성상 ‘결혼’이라는 보수적 결말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이때의 스크루볼 코미디는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적 독립을 바탕으로 여성 캐릭터의 강하고 능동적인 모습, 성적 자신감 등을 보여준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1950년대 이후 쇠퇴의 길을 걷는다. 본격적인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선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사회관을 내세운다. 이러한 윤리관은 전통적인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로맨틱 코미디의 양상 또한 변한다.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성역할로 회귀한 로맨틱 코미디 속의 여성은 ‘순결한 처녀’다. 집에서 얌전히 약혼자를 기다리는 성 경험 없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전문직 여성으로 그려지는 여성들 또한 결혼과 모성 앞에 기꺼이 직업을 내버린다.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이전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 힘을 잃는다. (감독은 이 시기의 마릴린 먼로가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말하며, 마릴린 먼로가 살아 있었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힘을 잃은 여성 캐릭터의 전형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여전히 이어짐을 지적한다. 로맨틱 코미디 속 전문직 여성은 숱한 실수를 남발하고, 이를 누군가(주로 남자 주인공)가 구해준다. 전문직 여성의 당당한 모습보다는 그의 자존감을 꺾는 장면이 더 부각된다. <브리짓 존스(2001, 2004, 2016)> 시리즈의 주인공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브리짓 존스는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지만 동시에 허술하기 그지없다. 극 중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미모, 섹스, 사랑 대신 진흙탕에 넘어지는 재주가 필요하다.”라는 내레이션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 속 여성들의 직업적 성취는 ‘코미디’라는 측면에서 매우 가볍게 다뤄진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 굶주려있고, 연애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과식, 과도한 업무 등으로 채운다. 이러한 결핍은 이성애적 연애, 즉 남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는 ‘남자의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운다. 여기서 여자 주인공들은 마음껏 먹어도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자다 깨도 완벽하다. 여자는 남자의 행동에 자신을 맞추고, 기꺼이 ‘쿨 걸’이 된다. 스포츠, 음주 등 남자들의 취미 생활에 강한 여자 주인공의 연애 성공률은 100퍼센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공통된 주장을 펼친다. 털털하고, 예민하지 않아야 연애 성공률이 높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 특히 성적 욕망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궁극적 주제는 ‘연애의 만족과 행복’으로, 여기서 여성의 성적인 만족은 고려되지 않는다. 여자가 성적으로 만족하면 헤프단 뜻이 된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가 양산되며, 어느 순간 갈피를 잃었다고 말한다. 비정상적인 사건이 이상적인 연애로 제시되고, 평등할 수 없는 관계가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을 반영할 책임은 없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우리에게 “반드시 꽃 피는 로맨스가 찾아올 거라” 속삭이며, 몇 가지 조건을 덧붙인다. 이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동시에 제약을 가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여성’, 그중에서도 10대 여자아이들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신봉하며 자라온 여자 아이들이 그리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질문을 바꿔보자, 그렇다면 로맨틱 코미디 속 남자들의 모습은 어떨까? 로맨틱 코미디 속 남자들의 구애 방식은 공격적이다. 이들이 여성의 영역과 동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은 빈번하게 그려진다. 여성 관객은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연애에 대한 허상을 배울 수 있다지만, 남성 관객은 폭력적인 방식을 배울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양쪽에게 그리 좋지 않은 결과임은 분명하다.

 

 

 

부족한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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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주류 로맨틱 코미디는 제한된 캐릭터만 보여준다. 백인 이성애자와 중산층이다. 다인종 커플이 나오는 인기 로맨틱 코미디는 손에 꼽는다. <러브 액츄얼리(2003)>에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 커플이 나오긴 하지만, 흑인 남성 캐릭터에게는 대사조차 없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가 백인 이성애자의 이야기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관객이 로맨틱 코미디를 볼 때, 등장하는 캐릭터에서 나와 닮은 구석을 어떻게든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기에, 영화에 온전히 가닿기는 힘들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 타겟층과 거리가 먼 관객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해당 장르에서 성소수자가 그려지는 방식은 전형적이다. 게이 남성 캐릭터는 주인공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등장해 극의 감초 역할을 한다. 평범한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또한 이성애를 기본 틀로 삼아 비극을 가미한다. 캐릭터(개인)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내세워 스테레오 타입을 덧입힌다. 레즈비언과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는 그 입지가 더 좁다. 이들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 거의 등장하기 않는다. 장애인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저소득층도 그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쯤 되면 등장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긴 하다.
 
한정적인 캐릭터는 할리우드의 산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카메라 뒤편 권력을 쥔 사람은 여전히 백인 남성이고, 특정 관점을 가진 사람만 압도적으로 많다. 할리우드가 진보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산업 내에서 결정을 내리는 건 주로 60대 백인 남성이다. 이들은 ‘관객이 원하는 것’ 보다는 ‘업계가 원하는 것(돈)’을 내세운다. 그렇다 보니 주류 로맨틱 코미디에서 유색인 주인공이나 다인종 커플, 퀴어 로맨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찾아 나서고자 하면, 상당히 많은 영화를 찾을 수 있다. ‘백인 여성이자 이성애자’인 감독은 자신이 유명한 로맨틱 코미디만 관람하고 다른 건 찾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놓친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2001)> <더 브로큰 하트 클럽(2009)> <저스트 라이트(2010)> <레게 파티(1998)> <세이빙 페이스(2004)> 등이다.

 

 

 

그럼에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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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은 더 나아가, 그럼에도 우리가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하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 답은 간단하다. ‘사랑’이다. 숱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프레임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제리 맥과이어(1996)>에서 제리가 도로시에게 “당신이 나를 완성시켜(You complete me)."라고 고백했듯, 서로 다른 두 연인은 결국 하나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충족시키며 사랑을 완성시킨다. 로맨틱 코미디는 인간의 소통을 다루며 서로 다른 존재가 만들어가는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진 둘을 바라보며 관객은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인간애를 목격한다.

 

‘사랑’을 내세우는 로맨틱 코미디의 힘은 강하다. 우리는 해당 장르의 구조와 수사를 비틀거나 이용한 영화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버디 무비의 탈을 쓴 로맨틱 코미디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알러뷰 맨(2009)>이나 <히트(2013)>처럼 ‘브로맨스’나 ‘워맨스’를 내세운 영화가 그 예다. 감독들은 전통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그 사실을 감춘다. 가장 큰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로 홍보했다간 무시를 당하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2,30대의 여성을 주 타겟층으로 만든 영화, ‘칙 플릭(chick flick)’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영화’ ‘여자들이 보는 영화’는 폄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평단의 호평을 듣고 싶다면 다른 장르로 포장하는 편이 유리하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은 스크루볼 대화, 사랑 고백, 그리고 해피엔딩까지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동시에, 다른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보다 훨씬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 해당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대신 코미디 드라마를 표방해 아카데미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더욱 큰 호평을 받은 <라라랜드(2016)> 또한 로맨틱 코미디의 다양한 요소로 무장했지만, 이를 새드엔딩으로 변주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효과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구조를 활용해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랑'을 목격한다. 누구나 사랑하길 원하고, 또 사랑받길 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인연'을 기대한다. 인간의 보편적 욕망에 호소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관객에게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감독은 자신이 사랑한 로맨틱 코미디의 면면을 모아, 애정 어린 비판을 가한다. 그러면서도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로맨틱 코미디’ 답게 풀어놓는다. 시작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상대방과의 첫 만남이다. 그렇게 만난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존재기에, 괴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서로를 보완해나가며 결국에는 ‘로맨틱 코미디’와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로맨틱 코미디’와의 내일을 그린다. 감독이 기대하는 미래는 다음과 같다. “많은 감독들이 로맨틱 코미디의 힘을 활용해 연출한 다양한 영화를 앞으로도 보고 싶다. 이런 수요가 있다는 걸 영화사도 알기 바라고, 일반적인 관객들도 볼 기회를 얻기 바란다. 백인 중산층의 이성애자만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니까. 결혼으로 끝맺지 않아도 되고,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근사한 영화가 될 테니까.”

 

이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는 7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영화의 주장이 어떤 면에서는 얄팍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감독의 사랑이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너무나 잘 느껴지기에, 이 유쾌하고도 절절한 사랑고백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감독의 이토록 낭만적인 기록을 통해 이전에 만났던 로맨틱 코미디를 다시 한번 만나고,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맨틱 코미디를 위시리스트에 조용히 추가해 놓을 수 있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를 즐겼던, 혹은 아직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이러한 ‘감독의 사랑’에 흠뻑 뛰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정형적이지 않다. 앞서 말했듯, 감독은 더 넓은 사랑의 바다로 나아가자고 외친다.

 

로맨틱 코미디의 '사랑'은 각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그려져 왔고, 우리 시대에는 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주류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은 여전히 한정적이다. 조금씩 변하고는 있다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를 면면이 보여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2020)>다. 무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맥켄지 데이비스가 연기한) 레즈비언 커플이 주인공으로, 여태껏 쉽게 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이는 내가 평소에 유명한 주류 로맨틱 코미디만 찾아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고, 레즈비언 커플이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다양한 사랑이 당연하게 살아 숨 쉬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또한 언젠가는 '꽉 막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까? '소수자의 사랑'이기 때문에 이별이 불가피해서,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 같은 엔딩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딴지 걸기는 더 이상 듣기 싫다. 무정형의 사랑을, 이제는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틱 코미디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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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로맨틱 코미디'를 검색하면 '남녀 관계' '남녀 간의' '남녀 사이'라는 조건이 꼭 따라붙는다. 언젠가는 저 조건이 '당연하게' 없어질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우리 모두 이전보다 넓은 사랑의 바다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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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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