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이, 뭐가 중요해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도서]

자전적 에세이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글 입력 2021.01.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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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55세, 첫 무대에 오른 늦깎이 배우들의 이야기'.


나는 애독가이면서도 편독가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의 8할은 소설이고, 겨우 2할만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이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에세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읽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적다. 사회 전체에 무관심하다는 건 아니다. 기사나 영상으로 세상사를 숱하게 들으면서 웬만하면 책으로는 읽으려 하지 않는다. 왜일까. 여전히 확답할 순 없지만 실마리 정도는 찾았다.


책은 텍스트의 총집합이다. 직관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페이지를 꽤 넘겨야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완독을 하기 위해서는 진득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호기심을 지탱해주는 건 대개 의무감 혹은 기대감이다. 나에게 에세이는 둘 중 어느 감정도 자극하지 않는다. 타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 살필 필요도, 이유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타인'이니까.


이 관점에서 『우리는 중년의 삶이 즐겁습니다』는 관심 밖이 돼야 했을 터였다.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은 필자 일곱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참별난극단 B2S'에서 함께 극을 꾸려가는 그들. 모두 중년 여성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책 소개를 여기까지만 보아도 어떤 논조로 책이 채워졌을지 예상 가능했다.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연극을 시작했을 것이고, 가족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을 테고,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 극을 올렸을 것이고, 훈훈하고도 열정적으로 글이 끝날 것이다.


빤히 보이는 스토리라인에도 굳이 페이지를 펼친 건 약간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나와 서른 살 남짓 차이 나는 이들의 이야기니까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그 다름이 나에게 귀감을 불러오길 바라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기대했던 특별함은 없었다. 사실 당연하다.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제라서 '중년 여성'이라는 타이틀의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그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공적인 마케팅 때문이 아니다.


 

공연이 턱밑에 다다른 어느 오후, 집 앞 홍제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답답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출가가 숙제로 내준 복식호흡 연습도 해야 했기에 겸사겸사 개천의 흐르는 물소리, 대로의 차 소리, 산책 나온 사람들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내 꺼! 내 꺼!"를 크게 외치며 걸었다. 저만치 인공폭포와 물레방앗간이 보였다. '참 풍경이 보기 좋다'고 속으로 감탄하는데 그 순간 "어? 아, 그렇구나. 안 해본 말이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훅 올라왔다. 난 남들에 비해 너무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었다. 누군가가 '이것이 네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습관처럼 그렇다고 답했지만 한 번도 진심인 적은 없었다. 내 소유라고 생각지도 못했거니와 내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힌 기억도 없다. 목이 콱 막힌다. 늘 내 것은 나중이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더 급한 게 있어. 엄마가, 식구가 먼저야.'

 

_김영희, 치매 노인3

 

 

어렸을 때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번지점프를 하며 어떤 남자가 외친 말이었던가.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나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그 뜻을 이해한 건 아니고, 당연한 말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나이는 숫자로 표현하니까 당연히 숫자인 건데 말이다. 만국의 공통점이겠지만 유독 한국은 나이에 민감하다. 정확히는 '특정 나이에 해야 하는 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8살부터 13살까지는 초등학교에, 14살부터 16까지는 중학교에, 17살부터 19살까지는 고등학교에, 20살부터 23살까지는 대학교에. 물론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진 만큼 '마지노선' 나이가 올랐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달리고 달린 종착지는 딱 하나다. 회사 직원.

 

회사원을 꿈꾸는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십몇 년을 열심히 살아온 보상이 이것인가. 여기까지 왔으면 그다음엔 무얼 해야 하나. 이쯤 되어서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생각보다 심오하게 들린다. 똑같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굳어진 현상처럼.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요즘 청춘에게 속닥거리고 싶다. 춘곤증에 잠깐 졸고 나면 개운해지고 기운이 차려져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하품이든 기지개든 편히 하고 긴장 풀라고. 조금 천천히 가도 되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물론 그 말도 무대 위에서.

 

_무대가 끝나고 다시 연극으로

 


이 루트에서 1년, 2년, 3년, '늦은' 이들은 묻는다. 제가 지금 nn살인데 이걸 하기엔 너무 늦은 걸까요? 질문을 평서문으로 바꾸어 본다. '나이 듦이 두렵다'. 죽음이나 질병을 겁내는 것이 아니라 숫자 자체에 공포를 느낀다. 이 물음은 여성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나이 앞에서 작아지는 건 만국의 공통점이나, 외적/내적 검열을 끝없이 반복하는 현상은 여성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 시작점은 당연하게도 사회구조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 혹은 사람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그 동질감은 소속감과 연결된다. 그런데 자신이 태생적으로 속한 집단 내 사회생활 하는 40대, 50대, 60대가 극소수라면 숫자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저 나이대가 되면 저렇게 사는 수밖에 없구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모르고 짙은 패배 의식에 빠진다.


때로 사고의 전환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미래의 롤모델을 눈으로 보는 거다. 50대라고, 70대라고 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때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책에서 일곱 명의 여성이 하는 이야기도 이와 같다. 내가 할 수 있듯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책임하면서도 이상적임을 안다. 그러나 모두 이 말을 믿고 싶어 한다는 사실 또한 안다.

 

 

"내 꺼! 내 꺼!" 나는 객석 맨 뒤까지 아니, 극장의 벽을 뚫고 온 세상이 다 들으라고 외친다. 그래, 이렇게 소리쳐도 돼. 무대에선 그래도 된다. 맘껏 누린다. 그리고 달래준다.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영희를. 그게 진짜 철든 삶인지는 의심스럽지만, 그동안 수고했다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_김영희, 치매 노인3

 

 

즐겁게 자신의 길을 다시 걸어가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그 뒤를 젊은 여성들이, 그리고 더 어린 여성들이 따라가다 보면 한 세기의 흐름이 바뀌겠지.

 

 

그리하여 몸과 맘 모두 건강한 인간으로, 다가오는 노년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자 한다. 오늘의 커튼콜이 인생 전환점을 돌아서려는 내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준다. 오 커튼 콜, 찬란한 순간이여!

 

_오호, 커튼콜!

 

 

중년의 삶_표지입체.jpg

 

 

지은이

김영희, 마기원, 안은영

윤현정, 정호정, 최상옥, 최정주


발행일

2021년 01월 15일


ISBN

979-11-89533-53-3 03800


페이지

252쪽


규   격

140×205, 무선제본


정  가

14,000원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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