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완전한 휴식 -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 [문학]

글 입력 2021.01.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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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릿터》 2020년 12월/2021년 1월호를 통해 발표된 박솔뫼 작가의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이다.

 

박솔뫼 작가의 단편소설들은 작품 자체의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단편소설에는 평범한 인물에게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들, 그리고 이 속에서의 변화의 과정을 잘 풀어내는 작품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작품의 초기 설정 자체가 신박하고 대격변 없이 처음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끌어가는 작품들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설정 자체도 신박하고 스토리 전개도 드라마틱한 작품들 역시 존재하겠지만, 원고지 약 80매 분량의 단편소설 속에 그 모든 이야기가 담기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니다. 그러한 작품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현대의 독자는 다이나믹한 배경과 전개 속에서도 능동적인 읽기를 잘 해내는 것 같다. 장진영 작가의 「새끼돼지」와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와 독자 모두 소설의 복잡하고 체계적인 짜임새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꽤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시 박솔뫼 작가의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박솔뫼 작가가 발표하는 단편소설들은 (내가 느끼기에는) 극적인 사건들로 소설을 전개시키기보다는 재치있는 초기 설정에서 시작하여 그 고유한 분위기를 잔잔하게 이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오늘날 다양한 작가와 독자들이 개개의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박솔뫼 작가 특유의 설정과 플롯이고, 그녀의 작품들은 항상 일상의 영역에 머물지만 비현실적인 소재를 하나 던지면서 그 특유의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것은 어느 날 개와 영혼이 교체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사랑하는 개」), 겨울잠을 자는 인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수영하는 사람」, 「달리기 수업」),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고양이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요함 동물』). 특히 겨울잠이라는 소재는 그녀의 여러 단편작품에서 등장하며 현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박솔뫼 작가만의 방식으로 일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습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작품에서도 동면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는 동면에 돌입해버린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그의 동면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인물과 인물이 맺고 있는 독특한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펼쳐지는 오묘한 분위기를 한껏 감상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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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태식과 태인, 그리고 시온. 태식은 서울에 올라와 여덟 살 터울의 형 태인의 집에서 신세지게 된다. 어느 날 태식이 집에 머무는 동안 낯선 여성이 도어락 번호를 누르고 들어온다. 이것이 태식과 시온의 첫 만남이었다. 시온은 자신을 태인의 친구라고 소개하지만, 태식은 자신의 형과 시온이 친구 이상의 밀접한 관계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형 태인은 여행을 떠나 집에 없었고 시온은 태인이 다음주에 돌아온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태인은 시온이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그러고는 태식에게 수면 가이드를 부탁한다. 태인은 자신이 동면 경험이 여러 차례 있고 부작용도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며, 동면하는 동안 자신의 신체 컨디션 관리를 맡기려는 것이다. 시온이 찾아오자 태식은 그녀와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고 주변을 산책하며 시온과 형의 과거에 대해 시온에게 전해 듣는다. 시온 역시 과거에 태인의 수면 가이드를 맡았었다. 태식은 시온을 집으로 데려 오지만 형을 만나지는 못하게 한다. 그 둘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 소설이 엄청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은, 이 세 인물이 맺고 있는 독특한 관계이다. 태식과 태인은 형제지간이지만 여덟 살 터울이고 어려서부터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태식은 태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고, 동면에 돌입한 형의 얼굴을 보면서 낯선 감정들을 느낀다. 반면 시온은 태인과 단순히 친구 사이 또는 수면 가이드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라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금지되어버린 관계이다. 따라서 시온은 태식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열린 도어락 현관문을 사이로 태식과 시온이 대치했을 때 시온은 태식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태식과 시온의 만남은 그래서 상당히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둘은 태인이라는 접점으로 인해 서로 만나게 된다. 태식은 태인의 혈육이고 동거인이지만 소원한 형제 사이라서, 태인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반대로 시온은 태인과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각별한 사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 관계 구조 속에서 시온이 태인을 만나기 위한 유일한 열쇠는 태식이다. 그러나 태식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태식은 형에게 있어서 시온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시온이 왜 찾아왔는지 알 수 없다. 그 모든 것 이전에 그는 태인의 수면 가이드이고, 그가 성공적인 동면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나는 태식과 시온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들이 가진 독특성을 강조하고 싶다. 시온은 자기 내부의 요구에 의해 태식을 만나야하는데 그 요구는 좌절된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인 소설 작품에서라면) 갈등 상황에 해당하는데,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는 작품 내 어디에도 일말의 긴장감도 없다. 박솔뫼 작가 특유의 설정과 장치들 속에서 소설의 특이한 색채가 전개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 색채가 나타날 수 있는 데에는 박솔뫼 작가의 소설적 장치인 ‘동면’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 속에서 박솔뫼 작가는 일상 생활 속에서 동면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십분 피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5퍼센트는 대체로 강도 높은 업무를 진행하는 대기업 임원이나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이 대다수라고 하며 이들이 지속적으로 동면을 받는 이유는 짧지만 충실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분석되었다. (중략) 말하자면 동면은 전혀 회피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성격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세상에 전혀 회피적이지도 않으면서 반사회적이지도 않은 행동이나 선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지 음식점에서 주인에게 먼저 인사하기 정도 외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무튼 동면은 현재로서는 여행, 운동과 비슷하게 인간이 여가 시간을 충실하게 보낼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태식은 배웠으며 오랜 기간 쌓인 데이터도 처음의 우려와 다르게 더욱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릿터》 2020년 12월/2021년 1월호 p124

 


태인이 동면을 하는 것은 일종의 휴식 상태를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태인은 휴식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수면 가이드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태식과 시온은 누구보다도 동면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배려 속에서 태인은 완전한 휴식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의 완전한 휴식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배려. 결국 이것이 작품의 전체적인 틀인 것이고, 이 사려 깊은 작품 구조에서부터 소설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이 소설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한 주제만을 뽑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소설뿐 아니라 모든 소설이 다양한 담론을 생성해낼 수 있고, 그것은 소설이 아닌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박솔뫼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와 함께 읽고 싶은 작품이고, 독자들은 틀림없이 그의 작품을 사랑스럽게 느낄 것이다.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에는 특히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동면 이야기는 본 작품뿐만 아니라 박솔뫼 작가의 다른 작품들(「수영하는 사람」, 「달리기 수업」)에서도 연달아 나타난 소재이고, 어쩌면 ‘박솔뫼 작가론’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에서는 동면에 진입한 태인 때문에 주변인들이 곤란을 겪는다. 그러나 「수영하는 사람」에서는 동면 기간 동안 수면 가이드와 클라이언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동면이라는 주제를 잘 읽어낸다면 박솔뫼 작품들에 대한 더욱 풍부한 감상이 가능할 것 같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도 (이 글에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태인의 동면을 계기로 태식과 시온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보이는데, 나는 이를 일종의 대안적 휴식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전개되는 태식과 시온의 두 번째 만남에서 둘의 관계가 발전을 이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상 깊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후에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의 이 부분을 다루는 글을 다시 써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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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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