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지막 7분에 주목해야 할 영화 - 마테호른

글 입력 2021.01.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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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 취향에 대해서 아직 그렇게나 멋지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시각적 장치와 미장센이 만들어내는 미감과 은유들을 사랑한다. 연기만 적당히 잘 한다면 배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중간에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미흡한 전개가 펼쳐지더라도 영화가 메시지를 힘껏 던진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 열심히 읽는 편이다.

 

하지만 <마테호른>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눈에 띄었다. 아니 눈에 띄었다는 표현은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맺어지는 메시지는, 상당히 청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박자에 맞춰 정확한 음만 짚으면 된다. - 요한 세바스찬 바흐"

 

영화의 도입부에 인용되는 이 문장은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며 나타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 그곳에 나타난 기묘한 이방인이 프레드의 앞에 나타나게 되고 프레드는 신앙심도 예의도 규칙도 없는 그를 거두어, 일종의 종교적 선행을 다하고자 한다.

 

클로즈업되는 시계의 분침은 정시를 넘어가고, 프레드는 한숨을 쉬며 이방인을 불러 식사를 재촉한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할 때조차 음식을 집으려 들고, 포크와 나이프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매일 지켜오던 규칙적인 식사 시간이 망가트려지고 교회의 종이 울리자 프레드는 그를 급히 단장시키고 교회로 향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그들은 마을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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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술 한 병을 카트 제일 아래에 담아 다른 물건들로 가리는 사람이다. 그는 이 이방인 역시 카트 속 술병처럼 남들 앞에 보이기 부끄러워하면서, 떠나라고 내쫓지는 않는다. 그리고 별것 아닌듯한 이 변화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기까진 그리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날 이방인은 프레드가 늘 그리워했던 아내의 옷을 입고 춤을 췄고, 프레드는 술에 취해 늘 같았던 다음날 아침을 놓쳐버린다. 하루는 이방인의 기이한 염소 흉내로 인하여 아이들의 생일파티에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그 길로 소문이 퍼져 둘은 공연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는 동안 이방인 역시 조금은 식사예절을 지킬 줄 알게 되고, 어설프게나마 기도를 따라 하며 프레드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프레드는 곧 도망쳐버린다. 이방인의 이상한 행동은 사고로 머리를 다쳤었기 때문이며 그의 이름이 테오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그의 부인이 주는 차를 마시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내뱉고 나서, 도시 속 한 외진 골목을 따라 들어간 퀴어 클럽에 들어간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는 도망치고 도망치면서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테오가 프레드를 찾아오면서 도망치던 프레드를 붙잡게 되고, 지금껏 내내 프레드에게 설교를 하면서 테오와 떨어지라 경고했던 교회의 캄프스 역시 내면에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며 프레드를 질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캄프스의 집 냉장고 속의 가득한 술병과 암실에 가득한 테오의 사진은 그가 결국 이전의 프레드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절제된 모습이 아닌 인간의 민낯을 확인한 그날 밤, 종교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의 모든 면을 인정한 프레드는 테오의 부인에게 동행을 부탁하여 도망쳤던 퀴어 클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곳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프레드는 남들과는 좀 달랐던 자기 아들을 집에서 내쫓았었다고 고백한다. 아들이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공연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서던 그는, 이번엔 테오의 부인이 붙잡으면서 그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아들과 눈이 마주치고, 노래가 끝나면서 그는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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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은 전반적으로는 내용의 전개가 매우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종종 당황스러움을 자아내곤 한다. 테오가 여자 옷을 입거나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날 밤 둘이 교회에 몰래 들어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나, 캄프스가 프레드의 죽은 아내는 물론 테오까지 몰래 원했음을 밝히는 장면 등,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너무 뜬금없다고 느낄 부분이 많으며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감상에 있어 포인트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모난 돌이 되지 않기 위해 맞춰왔던 삶과 이를 벗어나기 위한 험난한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프레드가 아들을 이해하는 과정,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프레드와 테오 사이에 있는 퀴어적인 요소들은 단순히 상식과 기준을 깨트리기 위한 설정 중 하나가 아니라, 퀴어 정체성을 가진 아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직접적인 경험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프레드가 테오를 버리지 않고 자신이 데리고 다녔던 것들도, 과거 아들을 버렸던 것을 후회함에 있어서라는 추측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기준과, 자유를 추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의 기준에서 나열해보는 것 역시 이 영화가 어떤 상반된 개념들을 다루어 메시지를 전하는가를 이해할 지표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스토리 구성은 좀 조화롭지 못한 편이지만, 배경음악의 구성은 굉장히 완성도가 높다고 보았다. 1시간 20분 동안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바흐의 음악과 첫 장면의 인용문, 프레드는 오직 바흐의 음악만 듣는다는 대사를 통해 그것이 자신의 삶의 태도임을 밝혔었다. 박자에 맞추어 정확한 음을 짚는 삶, 규칙을 지키고 옳다고 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단 7분의 음악, 프레드의 아들이 부르는 'This is my life'는 이 모든 걸 다 뒤집어버리며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특히나 이 장면에서 프레드와 그의 아들이 서로 응시하며 감정이 고조되고 격해지는 순간 그 감정을 분출시켜 토해내는 듯 노래하는 아들의 용기 있는 모습과 이어서 큰 소리로 아들을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러한 자세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단계로 그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엔딩이다.

 

8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꽤나 짧은 편이기는 하지만, 정적이면서도 난해한 80분을 끌고 가다가 마지막 7분에서 모든 에너지를 터트리는 영화이기 때문에 중간에 감상을 포기한다면 아쉬움이 클 작품이다. 하지만 그만큼 엔딩에서 얻게 되는 감동이 강렬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처럼 이 영화에서 마테호른이라는 요소는 없어도 될 만큼 제목이 분산된 포커스를 두고 있기도 하다.

 

왜 영화의 제목이 마테호른인지에 대해서는 직접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하며, 이상으로 <마테호른>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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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 Matterhorn

2013, 네덜란드, 87분

감독: 디데릭 에빙어

주연: 톤 카스, 르네 반트 호프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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