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계를 만나다 [전시]

2021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이응노의 사계
글 입력 2021.01.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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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추상작품의 대부분은 자연풍경과 인간 그리고 동물이 소재가 된 것으로 이것은 고암 추상의 출발이 자연과의 단절이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의 추상임을 말해준다. 즉, 이응노의 회화는 자연 본질의 사생이다. 이응노는 자연 산천을 벗하며 성장하였고, 그것은 언제나 그가 그리워한 마음의 고향이자 화상이었다.’  - 2021 이응노 미술관 기획전 이응노의 사계 안내 중

 

‘사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이다. 연둣빛과 꽃들이 은은하게 떠오르는 봄, 무성한 나뭇잎들과 진한 초록색이 펼쳐진 여름, 기분 좋은 바람과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가을, 새하얀 눈과 매서운 바람이 느껴지는 겨울까지. 한국의 사계는 다층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들을 연상하게 한다.

 

사계절에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의 폭설, 여름의 습도, 봄의 꽃가루를 생각하면 그 시간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계절을 담아낸 그림들을 보면, 그전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사라지고, 그 계절을 기대하게 된다. 예술 작품이 담아낸 각기의 계절은 그 계절의 의미를 더 깊이, 아름답게 각인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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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소재는 ‘산’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작품은 나무를 이어붙여 만들어진 1980년 작 <금강산>이다. 거친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완성되는 산의 역동성, 거침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조형 작품 외에도 산을 주제로 한 많은 그림 작품들이 존재한다. 먹의 농담의 변화로 나타나는 원근감, 과감한 붓터치로 실현되는 산의 능선, 세밀한 붓터치로 실현되는 생동감, 디테일이 인상 깊다. 여백으로 형성되는 공간이 여유와 휴식, 또는 한과 쓸쓸함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명확한 선과 경계 없이 음영과 먹의 번짐으로 형성되는 자연스러움과 추상의 분위기가 좋다. 먹을 주재료로 하는 전통적인 한국화 외에, 색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만들어낸 명암도 아름답다. 먹 그림에서는 차분함, 정신 수양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면 색을 쓰는 그림에서는 생동감과 발랄함이 느껴진다.

 

가장 감명 깊었던 작품은 <연꽃>이었다. 프랑스 고급 벽지 브랜드인 노빌리스사로부터 벽지 디자인 의뢰를 받고 제작한 도안으로, 총 4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든 장소에 붙일 수 있는 실용성이 높은 디자인은 아니지만 특징, 강조하고 싶은 공간에 이 벽지를 사용하면 특색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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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을 채색으로 메우는 구륵법을 이용해 연꽃을 그리고 있다. 연꽃을 전체적으로 담아낸 작품 보다는, 연꽃의 잎, 줄기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도안이 인상적이었다. 연꽃을 볼 때,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꽃이다. 꽃의 화려함으로 줄기, 잎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묘사하는 것 또한 예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

 

글과 그림의 조합이 주는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 개의 계절로 구획되어 있으며, 각 공간을 소개하며 서울신문, 연합신문의 에세이 글귀를 인용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정겨움이 느껴졌던 부분은 <풍경>과 함께 전시된 1957년 서울신문의 글이었다.

 

내 조그마한 정원의 한 무더기 철쭉꽃도 어느덧 봉오리 지고 그 아래로 한강의 물빛 사뭇 푸르네 멀리 그 강 위에는 양광에 어리어 보이는 기체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집 새집의 멧새는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으나 그렇게도 우는 소리를 듣고자 자다가도 유의하건만 그 지절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유감이다. 화창한 봄이 오면 진정 울려는지?

 

아마는 그 그리운 봄 동산으로 놓아주어야 할까 보다.

 

<서울신문>1957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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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어 보는 그 과정에서 경험에 비추어 한 폭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머릿속에 떠올린 그림을 옆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과정이 하나의 재미다. 마치 타인의 생각을 엿보는 느낌이다.

 

미술관에 방문한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한 작가의 개인전에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방문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작가의 새로운 면에 대해 알게 된다. 같은 영화나, 같은 드라마를 여러 번 봐도 보는 횟수나 시기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것처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면서 이전에는 전혀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눈 여겨 보았던 요소는 ‘문자’ 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한국 전통화, 서예 그림으로 시작되지만 일본, 서양 작품을 공부하면서 동양, 서양의 특징이 뒤섞이게 된다. 그리고 생애 후기,서양에서 주로 활동하며 인정받은 작품들은 문자 추상이다.

 

하지만 예술 초보인 나에게 추상화는 너무 어려웠다. 글자로 형상화된 것 같은 작품들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막막함만 앞섰다. 어떤 글자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 글자와 주변 요소의 조합이 어떤 의미를 담아 내고 있는지, 어느 질문 하나에도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소 아쉬웠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도슨트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비교적 풍성하고 다양한 봄, 여름의 구획에 비해 가을, 겨울의 전시가 작품 수와 구성 면에서 빈약했다. 가을 편에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몇 없는 작품들과 이응노의 일대기로 채운 벽면에서 전시의 빈약함이 느껴졌다. 이전의 구글 아트앤컬쳐 전시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구글 아트앤컬쳐 전시는 작은 공간의 한계를 영상을 통해 극복했다. 영상이 은 다양한 그림과 효과, 음악을 첨가해 관람객이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증폭시켰고, 영상을 보는 시간이 길어 공간이 작거나, 작품 수가 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에 비해 사계 전시는 정적이고, 체험활동들이 적어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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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공연 등 예술 행사에 다녀오면 색다른 분위기, 생각에 빠질 수 있어 그 후의 일상이 재미있어 진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보았던 전시품들을 곱씹어 보고, 했던 생각들을 상기하니 신선함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예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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