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기억으로 당신이 존재한다면 [사람]

글 입력 2021.01.2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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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코를 처음 본 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짧고도 길었던 한 달 반가량의 여행을 끝낸 후, 드디어 제대로 된 한식을 먹는다는 기대감에 잔뜩 들떠 있었다. 빵 쪼가리를 입에 물고, 무얼 하며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다 가벼운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시작은 경쾌하고 가벼웠으나 끝엔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최근에도 자주 본다.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과 절망, 내가 누군가를 잊음으로써 그들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들을 느낀다.

 

 


나의 기억으로 당신이 존재한다면



내게 가장 가까운 이별은 외할아버지와의 것이었다. 어릴 적엔 나의 해맑고 겁 없는 기질을 지켜 주었으며, 칠 년간 병상에 누워 계셨고,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예상대로 혹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

 

나는 때때로 그를 기억한다. 봄과 가을이면 시골로 성묘를 가기 때문에 좋은 날씨 속에서 그를 추억하고, 이렇게 겨울 한밤중이 되면 원망과 죄책감이 뒤섞인 채로 기억하곤 한다. 지금은 겨울이다.

 

 


자전거


 

내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용 안장을 매달게 된 낡은 자전거였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장을 보고, 산책 겸 운동을 다니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산책을 나가는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 안장을 채웠다. 헬멧을 쓰네 마네, 실랑이를 하며 담벼락 옆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를 불렀다.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는 나를 두고, 잠시 손을 놓은 찰나 자전거가 옆으로 쿵 기울었다. 여기서 ‘쿵’은 내 머리통에서 난 소리였다. 담벼락에 오른쪽 머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덕분에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았고, 나는 대차게 울었다. 그걸 시작으로, 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전까지 나는 그의 뒷자리를 차지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꿋꿋이 몸을 일으켜 서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위험한 질주를 몇 번이고 거듭하며, 나는 겁 없는 어린애로 자랐다.

 

 

 

담배와 계피


 

그는 담배를 피웠다. 그 모습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늘 재떨이와 라이터가 세트처럼 놓여 있었으니 아주 타당한 감각의 기억이다. 때때로 책장을 기어 올라가 숨겨둔 담배를 굳이 꺼내 조물거리던 나를 보며 그는 머쓱하게 웃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내겐 특유의 ‘할아버지 냄새’가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노인 냄새’의 것이 아니었다. 계피 냄새, 그리고 차마 가려지지 않아 미미하게 남은 담배 냄새. 게다가 새것 같지만 본질은 낡은 이불 냄새까지. 할아버지가 입원을 하면서 그 향도 사라졌다. 소독용 알코올 냄새, 병원 특유의 날카롭고도 영 꺼림칙한 향이 코를 가득 메웠다.

 

얼마 전 졸업 기념 향수를 사며 예전 그에게 나던 것과 엇비슷한 향을 찾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의 두려움을 모조리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냄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그런 향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담배를 피워야 하나?

 

 

 


 

그곳에 가면 고정적인 메뉴가 있었다. 콘치즈가 나오는 횟집. 음식이 나오면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집어 먹었고, 가족들은 젓가락도 들지 않고 그런 나를 바라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따금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늘 허허 웃었다고 한다. 자그만 게, 잘 먹네. 하면서. 우리는 그 동네의 온갖 횟집은 다 섭렵했다.

 

어느 명절 막바지엔 문을 연 횟집이 하나도 없었다. 명절 음식 덕에 회를 외쳤던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아빠는 짜장면으로 나를 유인했다. 할아버지는 또 허허 웃으며 자전거에 올랐다. 그날은 배달된 중국음식 한복판에 자그만 회 한 접시가 놓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도 회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것엔 젓가락도 스치지 않았다. 놀리듯 내가 먹는다아, 하며 초장을 콕콕 찍는 시늉만 했다. 그리고 난 회에 소주를 먹고, 매운탕을 먹으며 해장술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주 가끔, 특히 회와 함께 먹은 술에 진탕 취한 날 그런 상상을 한다. 우리가 지금 같이 취할 수 있었더라면.

 

 

 

바위


 

나는 늘 그를 향해 ‘돌 같아!’라고 했다. 돌머리, 그런 버릇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는 커다란 바위 같았다. 얼마 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운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적신호에 줄줄이 서 있었는데, 뒤에 가만히 있던 차가 다가와 우리 차에 꽁 부딪혔다. 말 그대로 ‘꽁’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곧장 내려 상황을 해결하고 돌아왔는데, 말이 없어졌다. 많이 놀랐나 싶어 이런저런 얘기를 혼자서 늘여놓던 찰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꼬맹이였을 시절, 여느 때와 같이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를 어느 차가 톡 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의 자전거는 넘어졌고, 그는 근처 인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몸을 일으켜 운전자를 보는데, 젊은 여자였다. 뒷좌석엔 꼬마 둘이 창밖을 빼꼼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여자였던 엄마와 내가 떠올랐던 할아버지는 옷을 툭툭 털고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또다시 허허 웃으면서. 그래서 우리도 그들에게 자그만 흔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


할아버지가 입원했을 시절, 나는 병문안을 가기를 꺼려 했다. 무기력한 그의 모습을 믿고 싶지 않아서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이유였다. 매번 허허 웃던 그가 병원복을 입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내 손을 잡는 게 싫었다. 그가 건강했을 시절엔 잠을 잘 때나 나를 품에 가뒀지, 좀처럼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의 모든 모습이 낯설었고, 나는 그것에 적응하기를 거부했다. 예상했듯이,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그를 기억한다. 때때로 미워하기도 한다. 검사를 한 달만 빨리 받았더라면, 수술을 조금 더 잘 견뎠더라면.

 

만일 나의 기억이 당신을 존재하게 한다면, 그곳에서 갖게 되는 죄책감과 원망은 모두 내 몫으로 둘 것이다. 영화 <코코>의 세계관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기억의 빌미를 주고, 당신 또한 나를 추억할 것이라는 믿음을 끌어안고. 그렇게 이번 겨울도 저문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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