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나요? - 벌새 [영화]

글 입력 2021.01.1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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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나요?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해에, 중학생 은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상황에 마주하며 크고 작은 감정들을 느끼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은희에게서 느껴졌던 지배적인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은희를 둘러싼 어른들은 대체로 무심하다.

 

은희의 부모님은 온종일 떡집에서 일하느라 자식들에게 소홀한데, 삼 남매 중 막내인 은희에게는 더더욱 그 관심이 닿지 않는다. 더군다나 은희의 오빠 대훈은 매번 은희를 때리며 폭력을 일삼는다.

 

은희가 학교를 다녀온 후 텅 빈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은희의 귀밑에 혹이 났을 때도 은희는 혼자 병원을 찾아간다.

 

학교에서도 은희는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나 공부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수업 시간엔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일에 열중한다. 은희가 그나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상대는 단짝 친구인 지숙과 남자친구인 지완으로, 이들과도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여러 번 겪는다.

 

영화 중간에 은희는 밖에서 엄마를 만나고, 애타게 부르지만 엄마는 들리지 않는 듯 돌아보지 않는다. 처절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부르는 것이 기억에 남는데, 은희가 평소에도 자신을 좀 알아 달라고, 자신을 좀 사랑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은희에게 한문 학원 선생님이자 멘토인 영지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영지는 은희를 멋대로 판단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은희라는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해 주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서 경청한다.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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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는 주인공 은희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1994년도라는 시대의 공기 역시 반영하고 있다. 나는 90년대를 잘 모르고 은희가 겪는 것들을 몸소 겪어보지 않았기에, 기대하는 만큼의 공감을 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김보라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감독이 인터뷰 도중 한 말과 영화 속 장면들에 대한 의도, 생각 역시 영화만큼 정말 인상 깊었고 감동적이었다.

 

특히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과 감독의 의도가 일치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영화 속에선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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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괴팍했던 아버지는 은희가 수술을 하게 됐을 때 엉엉 울었다. 은희를 괴롭히던 오빠는 사실 학업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와 부담에 눌려 살았었고, 성수대교 사고가 벌어진 날 저녁 식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의외의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줄 뿐 그들의 잘못에 대해 과장되거나 억지스러운 미화를 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잘못을 모두 정당화할 순 없지만, 일관된 모습만이 아닌 여러 가지 모습을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보여주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완벽해 보였던 영지 선생님 역시 스스로가 싫었던 적이 많은, 내면에 끊임없는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었고, 모두에게 서사와 이야기가 존재했다. 주인공의 친구들도 단순한 조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각자의 삶이 존재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현실에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과연 오직 한 면 만을 보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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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영화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구체적인 접근을 한다면 영화에서 클리셰를 피할 수 있고 보편적인 감정에 닿을 수 있다.

 

영화에서 은희가 영지와 이별을 해야 했을 때 나는 은희가 소리를 내어 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게 상황을 마주하는 은희의 모습이 뻔하지 않게 느껴졌고, 은희라는 아이의 성격과 특성을 더 잘 보여준 것 같았다.

 

감독의 의도처럼, 인물의 내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더 큰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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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자신을 알아주는 것 같지 않은 삶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도 은희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내면을 더 단단하게 가꾸어 나간다.

 

은희의 삶은 극단적으로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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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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