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탐독가들_박수밀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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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교과 과목에서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도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창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세상에 질문이 무척 많았다. 신과 삶, 인간으로서의 나 등등등.
풀리지 않는 고민들로 가득했던 나에게 도덕 시간에 만나는 철학자들은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오래전 철학자들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구나.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도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구나.
당시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서양의 철학자들이었다. (물론 동양의 철학 또한 배웠지만,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님의 이/기..., 이런 사상들이라 미숙한 고등학생에게는 큰 울림을 주지 못했었다.) 서양 철학자들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책 <탐독가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에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졌던 지식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헐퀴 대박! 조선에서도 나의 고민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항해 홍길주 선생의 <지지당설 止止堂說>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위험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순탄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할 수 있다.
그대는 위험한 곳을 만나 멈췄는가?
아니면 순탄한 곳을 만나 멈췄는가?
홍길주, <지지당설 止止堂說>
순탄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주'하게 되는 것, '관성'을 찾아가는 것.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용기. 홍길주 선생은 그것을 지혜라 말한다.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기억이 오히려 과한 욕심을 불러일으켜 좋았던 결과마저 나쁘게 변색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만 둘걸'하는 후회. 아마도 욕심의 차이일 것이다. 큰 욕심이 없었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의 마음에는 욕심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순탄할 때 멈춘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버린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욕심의 이면에는 화가 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는 것은 화를 면할 수 있는 지혜로운 행동이다. 하지만 욕심의 이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욕심의 이면을 살피는 것 역시, 지혜로운 행동이다. 나는 보통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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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주 선생은 평생을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며 살았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집안의 형제 모두가 유명해지는 것을 꺼린 어머니의 만류로 출세를 포기하였다고 한다는데(pp.69), 벼슬 대신 내면을 살찌우는 일을 선택했던 선생의 삶은 배움으로 가득했다. 선과 악, 그 둘 모두 배움이 있다고 말했던 홍길주 선생의 태도를 통해 매 순간 정진하였을 선생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책 <탐독가들>에는 홍길주 선생 외에도 수많은 조선의 독서광들이 수록되어 있다. 환경과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은 모두 독서를 사랑했다. 책을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갈고닦았으며 나아가 나라를 통치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의 역사적 인물들 역시 독서로부터 발현된 지혜로 위대한 업적을 낳을 수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독서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해왔지만, 조선의 독서광들을 보며 지금까지의 독서를 돌아보게 되었다. 끊임없이 탐구하는 독서를 했던 적이 있었는가? 실천을 위한 독서를 했던 적이 있었는가?
독서의 본질은 단지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말하는 선생들을 공명(共鳴)하고 싶다. 독서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 만물을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다짐한다.
탐독가들-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지은이 : 박수밀출판사 : 카모마일북스분야인문 > 독서/글쓰기규격140*210mm쪽 수 : 216쪽발행일2020년 12월 28일정가 : 16,000원ISBN978-89-98204-84-6 (04020)
저자 소개박수밀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 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분과 학문의 경계에서 벗어나 문학을 역사, 철학, 교육 등과 연계하는 통합의 학문을 추구한다. 미시적 관찰과 거시적 조망의 균형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고전의 정신이 지금 여기에 주는 의미를 탐구해가고 있다. 박지원의 합리적 이성, 이덕무의 온화한 성품, 박제가의 뜨거운 이상을 품으려 한다. 작은 것, 가여운 것에 시선을 두고 나만의 향기를 갖춘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박지원, 이덕무, 이규보, 이옥을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엔 오랫동안 진행해 온 열하일기 완독 클럽 공부 모임을 바탕으로 《열하일기 첫걸음》을 출간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과학기술 글쓰기》(공저)를 냈다. 고전을 바탕으로 지금-여기와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오우아 : 나는 나를 벗삼는다》,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리더의 말공부》(공저), 《고전 필사》를 썼다.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기적의 명문장 따라 쓰기》, 《기적의 한자학습》(공저), 《살아있는 한자교과서》(공저) 등을 썼다. 역서로는 《정유각집》(공저), 《연암 산문집》,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 산문》 등이 있다.[김규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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