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남성 캔버스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 그림 밖을 향해 걸어 나오다 -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도서]

글 입력 2021.01.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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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캔버스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

그림 밖을 향해 걸어 나오다

 

 

시대를 불문하고 눈이 부신 세기의 명작을 피워낸 위대한 화가들. 그리고 그런 명작 뒤에 숨은 진실들을 조명한 책,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은 남성 캔버스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삶과 예술을 통한 폭력의 양상을 파고든다. 책의 본문에 들어서기 전, 5페이지 분량으로 적힌 작가의 말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는데, 주제적인 측면을 '캔버스 속 여성'으로 설정한 것에 대한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집안의 천사' 일화를 들어 가부장제 아래에서 오랜 기간 천사의 목소리에 길들여진 여성들이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돌보는 등 스스로를 비하하고 부정해왔던 모습, 즉 한때 자연스레 여겨졌던 사회의 틀 안에 갇힌 여성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그와 더불어 예외일 수 없었던 여성 예술가의 삶과 창작 궤적의 흔적까지도 연결함으로써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가부장제로 물든 사회 속에서도 진취적인 삶을 자체적으로 살아냈던 여성, 그리고 예술가들. 그들이 집안의 천사를 무찌르고 경계의 바깥으로 나와 마침내 솔직한 예술을 행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잠식하게 만든, 지배적인 폭력은 어떻게 캔버스 안에 나타나 있을까? 몰랐으면 안됐을 법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그런 배경의 이해와 함께 우리는 여성 예술가들을 옭아 매어온 가부장 사회의 고발과 캔버스 속에서의 여성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을 듯해 보인다. 동시에 저자의 의도처럼, 이러한 문제의식을 21세기 한국사회에까지도 긴밀히 연결함으로 성찰의 태도 또한 가져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은 남성 캔버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는 피카소, 고갱, 렘브란트, 자코메티 등 세기의 예술가들이 명작을 피워내기까지 그 뒤에서 큰 역할을 한 여성들을 비롯해 판위량, 매리 커샛, 베르트 모리조 등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내, 뮤즈, 예술가이기 전 이들 여성은 가부장 사회를 받치는 ‘밑돌’로서 늘 고통받아왔다.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가 모른 척했던 여성을 향한 폭력 역시 이 책을 통해 폭로하고자 한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은 여성의 고통을 예술로 둔갑시킨 시대에 대한 고발이자 그림 속 여성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 ‘낯섦’과 ‘신선함’이 아닌 ‘옳음’이었음을 밝히는 과정이다.

 

 

  

메리 커샛 <과일을 따는 젊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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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커샛 <과일을 따는 젊은 여성>, 1892 캔버스에 유채.

 

 

<여성, 만들어지다> 챕터에서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게 아닌, 여성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서양미술사를 보더라도 기성세대의 예술계에서 흔히 여성은 주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주체적인 예술가가 될 수 없었고, 그들의 옆에서 주체적인 예술의 탄생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조수'에 불과했다.

 

"여자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어!"라는 말이 당연시되었고,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창작활동을 해야만 했다. 더 나아가 창작 자체가 제한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19세기 미국의 예술가 메리 커샛은 '여자는 여자를 이끈다'는 생소한 주제로 의뢰받은 시카고 세계 박람회의 건물을 벽화로 장식했다.

 

 

"벽 중앙에 젊은 여성들이 지식과 과학의 열매를 따는 이미지를 그릴 생각입니다. 야외에 있는 인물들을 표현할 테니 밝은색을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가능한 한 활기차게 만들 생각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축제의 느낌이 전해지겠지요."

 

 

커샛은 벽화의 주제와 동일한 그림의 소재를 이전에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1892년 작, <과일을 따는 젊은 여성>이다. 그리고 이는 인상주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에드가 드가에 의해 "여자는 이런 작품을 그릴 권리가 없어."라는 무지막지한 혹평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 드가의 말은 선악과를 따는 이브의 모습을 연상한 성경의 내용과 맞닿아있는 점을 겨냥해 당대 지배적인 주제였던 것과 여성의 지위를 연결시킨 것이라 본다. 커샛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전체적인 사실을 놓고 볼 때 사실 어떤 의도를 대입했는가를 떠나 당시 메리 커샛에 대한 드가의 태도는 납득 불가하다. 여성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채 남성은 모든 장르와 주제를 섭렵해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여성은 제한적인 작품 활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임을 염두에 두었다는 게 말 한마디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인상주의를 이끈 훌륭한 인물이었다 해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맞다. 여성은 어느 분야에서든 태어난 게 아닌 '만들어진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장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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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장로들>, 1610 캔버스에 유채.

 

 

<여성, 안전할 권리가 있다> 챕터에서는 16~18세기 그림 속 여성들이 겪었던 성적 억압과 폭력을 살피고 과연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는다.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수산나와 장로들>에는 구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인물인 수산나가 목욕을 하다 처하게 된 위험한 상황을 가감 없이 묘사돼있다.

 

존경받는 원로인 두 장로가 갑작스레 나타나 다짜고짜 성관계를 요구하고, 그녀가 응하지 않을 시 간통죄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끔찍한 장면을 수산나의 처절한 비명이 담긴 표정과 몸짓으로 간파할 수 있게끔 그려놓은 것이다. 그림만 보더라도 당대 여성이 억울하게 당했던 온갖 수모와 생각하기조차 싫은 성적 관념의 형성 등, 피해자가 더 고통받아야만 하는 암울한 시대상이 지금보다도 빈번히 나타났던 당시 사회를 고발한다.

 

그러나 저자가 캔버스를 통해 고발한 '그 사회'는 여전히 우리를 끝없이 조인 채 자리하고 있다. 모두의 노력으로 남성뿐만 아니라 결여되었던 여성 인권의 부분까지도 존중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어디에선가는 일어나고 있다. 저자가 본 서적에 제시함으로써 무시당하고 낮게 취급되었던 캔버스 속 여성과 여성 예술가에 주목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것과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현시대의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물음을 이어나가는 작업까지 행해야만 한다. 그게 저자의 의도이기도 하다.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 <안경을 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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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 <안경을 쓴 자화상>, 1777 캔버스에 유채.

 

 

마지막 챕터인 <여성, 우리는 우리 자신이다>에서는 시대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재능을 뽐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중 프로이센 베를린 출신의 화가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는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날렸던 신동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궁정화가로서의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테르부슈는 성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은발과 주름살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채 책을 읽다 잠시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한 인물의 담대한 자화상을 그렸다. 이 담대하고 당당한 자화상은 보편적인 미(美)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색의 사용과 배치를 통해 교양과 지성을 구체화하여 시선을 확 끌어들인다.

 

당시 애교와 교태 대신 지성을 연마하는 여성이 지탄의 대상으로 여겨졌는데도 테르부슈는 굴하지 않고 본인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해나갔는데, 그런 태도가 그녀를 성공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도록 방해꾼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당최 이해할 순 없지만, 테르부슈는 그 점을 감수하고도 거짓 없는 진실한 여성의 이미지를 그려내려 부단히 노력했다.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다룬 자료를 읽다가 이마를 여러 번 짚었다. 한참 그들의 재능에 대해 언급하다가 뜬금없이 외모 평가가 끼어드는 기록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8~1984)에 대해 미술사학자 게일 레빈(Gail Lev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크래스너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녀의 사망 후 몇몇 지인과 작가들은 크래스너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강조하곤 했다.

 

크래스너의 학창 시절 동료는 그녀가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스타일은 우아했다고 말했다.” 크래스너의 남편이자 ‘액션 페인팅’의 대가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을 언급할 때는 “탈모가 있었지만, 야성적인 매력이 넘쳤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성 예술가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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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아이리스의 빛>, 1924 캔버스에 유채.

 

 

이 밖에도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는 우리가 몰랐던, 어쩌면 알 수 없었던 그림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채로이 자리한다. 그런 이야기를 함께하는 발자취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이 캔버스에 어떻게 드러났고 시간이 흐른 뒤 현대의 예술가들은 그런 삶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냈는지에 관한 흐름까지도 파악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과거를 과거로만, 현재를 현재로만 좁힌 채 편협한 시선을 끌어내고자 하지 않았던 본 서적의 집필 의도에서도 가치 있음을 느끼곤 했다. 남성 캔버스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을 조명함으로써 시대에 따른 여성의 모습, 그와 관련한 문제의식, 개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속속들이 고찰할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예술'로 시대의 젠더 문제를 바라보고 통찰해볼 수 있었기에 색달랐을 뿐 아니라 그렇게 무겁지도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진지한 논의를 자연스레 건네받아 저자와 소통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서도 오늘날로 이어지는 이슈를 다각도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서적이라 생각되기에 추천하고 싶다.

 

 

재능이 넘치는 여자들이 구태여 ‘남자 행세’를 했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만 해도 그렇다. (…) 상드가 처음부터 남성 필명 ‘조르주’가 아닌 ‘오로르 뒤팽’이라는 본명으로 데뷔했다면 어땠을까? 여성에 대한 편견이 공고한 문단에서 상드는 애초에 소설가로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역사에 여자가 없었던 적은 없다. (…) 남성의 언어로 이루어진 단어가 성중립적인 단어로 바뀌고 있듯이, 이제 그녀들의 본래 얼굴도 되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_책 본문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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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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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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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유리

 

출판사 : 한겨레출판

 

쪽 수 : 296쪽

 

판형 : 135*195mm

 

발행일

2020년 12월 16일

 

정가 : 16,000원

 

분야

예술 > 미술 > 미술 이야기

사회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ISBN : 979-11-6040-449-4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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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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