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러면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 숨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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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봄날, 거짓말이다. 어느 특징 없는 하루, 거짓말은 아니다. 아니야, 거짓말이지, 특징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생각해보자. 아무튼 어느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하는 길목은 금요일 밤마다 지독하게 막혔다. 가을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여름이나 겨울은 아니었다. 봄 학기이거나 가을 학기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학기 초반이었던 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주일마다 해가 조금씩 짧아졌던 것 같아, 그러면 가을학기였겠군, 그러면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들, 이었다.

 

한유주 「private barking」, 『숨』 p.13

 

 

자신이 내뱉은 말의 진위를 점검하고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서 완성되는 소설. 이것이 오늘 소개할 작품, 한유주 작가의 연작소설집 『숨』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은 그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가치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특징 없는 하루”라는 말을 마주치면 우리는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특징 없는 일상의 나날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내온 하루하루는 항상 다른 날들과 구별되어 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매일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을 이유로 그 각각의 날들을 특징 없는 일상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은 누구나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클리셰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 말 역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상투적인 이미지로 독자를 데려다 놓을 뿐, 독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정성스레 제시하지 못한다. 한유주 작가는 이러한 이 평범한 표현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있다. 그리고 연작소설집 『숨』 속에서 그 원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유주 작가는 2003년 《문학과 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특유의 전위적인 소설들을 통해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소설가이다. 아무래도 일상과 현실의 세계에 머무는 작가도 아니거니와 평범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마저 독자적인 작품세계 속에서 재구성해내는 탓에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문단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장편 소설 『불가능한 동화』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해외 각국에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번역가로서도 활동하며 해외의 의미 있는 문학 작품들을 발굴하여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문학은 국내 문학과 해외 문학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한유주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 사회에 낯선 화두들을 새롭게 던져 주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할 연작소설집 『숨』 역시 한유주 작가 특유의 색채를 안고 있다. 『숨』은 「private barking」, 「개와 걔」, 「유령 개」의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아지의 사망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각각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과거에 키웠던 개의 죽음과 유사한 이미지를 풍기며, 현재의 사건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평행하게 서술된다.

 

「private barking」에서는 자살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향하는 길에 비둘기의 사체가 보이고, 이는 과거에 죽은 개를 화장하던 자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개와 걔」에서는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이제 강아지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화자의 마음속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하고 있는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유령 개」에서는 주인공이 미국의 유기견 이동 봉사에 나서게 되어 그 여정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키우던 개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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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집의 각 작품들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각 단편소설에서 일부 등장인물이나 강아지들(등장견?이라 해야 할까)이 공유되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private barking」의 장면과 문체가 그로테스크한 편이라면, 「개와 걔」와 「유령 개」에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매력이 조금 더 부각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작품 속에서 전위적인 이미지와 문체, 일상적인 이미지와 문체가 혼재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하나의 연작소설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글의 소재 측면에서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개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자의 다리를 무는 백구(「private barking」)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화자가 키웠던 개에 대한 기억 또는 길에서 보이는 타인의 개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작은 주황색 포메라니안부터 커다란 대형견의 모습들까지 자세하게 등장하는데, 반려견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소한 매력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소설 전반의 주제나 분위기와 무관하게 한 마리 한 마리의 강아지들이 등장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습들이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는 강아지와 사람이 관계를 맺는/맺은 사건과 경험, 기억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이지만, 이들이 서로 감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면들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반려견이 부재하게 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의 판단과 감정에 과거 반려견과의 기억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습들은 연인과 이별한 이후의 일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private barking」에서는 죽은 비둘기와 죽은 개, 죽은 고등학교 친구의 이야기가 섞여 제시되며, 어떤 죽음이 더 말하기 힘겨운 죽음인가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등장한다. 한유주 특유의 문체 속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에 대한 사유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것이다.


*

 

한유주 작가의 문체는 특이하고 문제적이다. 일상적이고 낭만적인 현대 소설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접근하기 힘든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은 문체와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문단에 있어서 소설의 내용은, 여성 서사나 퀴어 서사, SF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도와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꽤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반해 소설의 형식과 문체의 측면에 있어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대중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단어나 문장, 문장 부호의 해체는 물론이고, 시점과 서술상의 교체 등 유럽언어권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연구되고 있는 기법들이 한국의 제도권 문학에는 아직 정착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유주 작가의 작품들은 내용 자체의 참신성과 그 기저의 의미들에 있어서도 가치가 있지만, 이러한 것은 어쩌면 한유주 특유의 문체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체와 관련해서는 한유주 작가의 단편 소설 「식물의 이름」에 대한 오피니언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데, 해당 오피니언이 한유주 작가의 표현과 이미지들을 접하는데 조금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Opinion] 삶은 소설보다 우연적이라서 - 식물의 이름 [문학])

 

국내 독자들이 한유주 작가의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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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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