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어나기도 전 노래를 들을 이유: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예능]

글 입력 2021.01.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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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노래를 ‘좋아해’보고자 노력했을 때 마주쳤던 관문은 무엇부터 들을 것인가였다. 이전까지 음악은 나에게 듣기 위한 것, 시간을 덜 지루하게 보내기 위한 것처럼 일종의 수단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기 위해선, 반대로 음악을 위해서 무언가를 소비해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든, 어떤 콘텐츠이든 간에.

 

TV에는 지겨워할 새도 없이 음악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특정 연령대만은 타겟팅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가수들과 내 동생이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만 들어봤던 옛날 가수와 부모님이 좋아하는 가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프로그램 안에 등장한다. 종종 익숙한 이름의 가수들은 내가 알지 못하거나 제목만 들어봤던 음악들을 선곡한다. 패널들은, 가끔은 우리 엄마 아빠까지 감상에 젖은 눈으로 전주를 듣지만 나는 모르는 노래다. 그런 프로그램들 안에도 묘하게 단절은 존재한다.


고백하자면 예전의 음악들에 관해 관심을 거의 둔 적이 없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새 음악들에 귀 기울이기에도 벅찼다. 남들에게 뒤처져 보이지 않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은 아마도 새로운 것들을 섭렵하는 것이다. 요즘의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 아마도 일 순위, 그 외의 것들은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뭉뚱그려서 한쪽으로 치우쳐 놓으면 그만이다.


기록과 역사라는 것은 한가한 시간에 켠 TV 프로그램에서 보기에 조금 지루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이것을 소재로 택한 프로그램이 있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는 아무도 주목하려 하지 않았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낯설고 어려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내고자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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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을 갔을 때, 외국인 친구에게 너도 K-pop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었다. 이 뻔한 질문에 정작 나는 대답을 하기가 좀 어렵다고 생각했다. 네가 말하는 K-pop이라는 건 아마도 아이돌 음악을 이야기한 거겠지? 그렇지만 한국에는 아이돌 음악 말고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음악들도 좋아하고 뭐 이것저것 좋아해. 이런 어정쩡한 대답으로 말을 이어 나가다가 결국은 나도 알고 친구도 알 법한 해외 뮤지션들도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조금 의문은 생겼다. K-pop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한국 외의 나라에서 한국의 대중가요를 일컫는 말이다. - 두산백과

 

K-Pop은 보통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정도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지만, 현재 K-Pop으로 불리는 노래가 한국의 댄스음악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K-Pop은 글로벌 시장에서 대중적 인기가 있는 한국의 댄스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친구의 질문 의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주류로 소비되고 있는 음악이 아이돌 음악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나온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 뻔한 질문이 나로서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 음악을 듣긴 듣는데, 이걸 K-pop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의미 전달이 정확하게 되는가?’로 이어졌다. 그래서 묻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한국에도 밴드 음악이나 힙합처럼 다양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고,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이런 부연 설명 들을 붙여가며 설명을 했다.


쉬운 질문에도 답변이 어설펐던 건, 정작 나 역시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매일 같이 듣는 이 음악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너무 익숙해서 설명할 필요도 못 느꼈던 소재였을지도 모른다.

 

 

 

#발라드_가장 익숙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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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홈페이지


 

프로그램은 한국의 대중음악을 기록하기 위한 첫 번째 주제로 발라드를 선택했다. 발라드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꾸준히 사랑받아왔던 장르이다. 그러나 정작 나와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기도 하다. 나와 내 주변에는 발라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발라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는 음악 정도? 특유의 절절한 분위기와 가사는 가끔 부담스러웠다. 솔직하고 처절한 감정표현을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상인데, 정작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는 건 그런 진지한 노래들이라는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라드의 시작은 가장 세련된 음악이었다고 한다. 트로트와 비트로트의 구분만이 있었던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팝에서만 들을 수 있던 세련된 멜로디를 사용하는 음악. 풍부한 멜로디 속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가사를 더해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음악이었다.


오늘까지도 이런 음악이 사랑받는 건,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감성을 매만질 수 있었던 정서가 이 장르 안에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조금씩 달라져 왔겠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으로 발라드가 존재한다. 그렇게 듣고 보니 이전까지 굳이 찾아 듣지 않았던 음악들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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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홈페이지

 

 

나는 이 프로그램을 내가 들을 노래의 저변을 넓히는 수단으로 삼을 예정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편견과 오만함으로 등 돌려 버리는 것들이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런 것들을 최대한 줄여나가자는 것이 매번 하는 다짐 중 하나인데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쉽지 않고, 나의 게으름을 매번 확인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그저 안방에 누워서 TV를 트는 것으로 게으름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면, 새로움을 떠먹여 주는 환경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앞으로 프로그램이 점차 고민해나가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음악 예능들은 무대를 보여줄 때, 여기에서밖에 볼 수 없는 특별한 무대들로 승부를 걸어왔다. 그리고 요즘은 이러한 무대들이 따로 편집되어 유튜브를 떠돌아다니며 이 프로그램을 보아야 할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상기시켜주는 효자 같은 존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기록’이다. 과거의 무대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기록의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과거의 무대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비슷한 무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과 동영상 플랫폼이 있는 시대에서, 기록의 현장을 관전하는 것이 의미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음악에 대해 알고 싶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을 기록한다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기 위해서는 무엇이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다양하게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프로그램을 풀어나갈지가 정말 궁금한, 새로운 기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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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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