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출판은 실존이다: 출판저널 520호 [도서]

출판저널 520호
글 입력 2021.01.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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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 수 있는 공간이 집으로 한정된 작년, 2020. 집에서 혼자 시간을 때워야 했으니 영상물은 말할 것도 없고 책 소비도 늘었으리라, 흔히들 생각한다. 나는 정확히 반대였다. 자발적으로 읽은 책의 수가 한 손에 꼽았다.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콘텐츠를 즐기느라 손댈 틈이 없던 건 아니다. 책은 늘 필요했다. 하지만 도서관이 닫히고, 종이책은 멀어졌다.


나는 일명 '책세권'에 살고 있다. 집 앞 신호등만 건너면 바로 도서관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심리적 거리도 가까웠다. 한마디로 쉽게, 자주, 들락날락했다. 읽고 싶은 책의 분류번호를 미리 찾아두고서 한참 미루다 마감 시간 10분 전에 갑자기 빌려오기도 하고, 책등만 구경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책을 빌리고 한 두 페이지 넘기다가 얼결에 그 자리에서 다 읽기도 했다.


주로 책을 빌리러 가긴 했지만, '책이 있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두 번째 수험생활을 보낸 책상이, 도시락을 먹던 휴게실이, 보건증을 급히 전해주던 팩스기가 그곳에 있다. 과제가 하기 싫은 날은 괜히 도서관 컴퓨터를 찾았다. 공원쯤으로 비교하면 적당하겠다.

 

해가 바뀌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던 비대면 예약 대출 서비스를 처음 이용했다. 선착순으로 도서 예약을 받고, 신청자가 다음날 정해진 시간에 예약 도서를 찾으러 가는 방식이었다. 도서관 옆 출입구에서 건네받았던 책 두 권. 잃었던 공간의 일부를 만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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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립열린도서관의 독서토론 프로그램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책+톡'이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도서관의 변화가 느껴졌다.

 

운영방식은 이렇다. 먼저 연령 제한 없이 참여 신청을 받는다. 진행자는 신청자 개개인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신청자는 책을 읽고, 구글독스로 질문디스커션을 진행한다. 그 후 맞춤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고, 카카오톡으로 1:1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구글독스, 카카오톡, 유튜브 등 진행 과정에 최적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했다.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뉴노멀 시대에 발맞춰 여러 플랫폼을 이용했고 둘째, 개인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후 진행된 프로그램은 토론에 가까웠다. 연령/독서 수준이 비슷한 인원이 모여, 집에서 가상 회의 공간을 경험한다. 여기서 출판물로서의 책이 지닌 힘이 드러난다. 참고자료나 함께 토론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 머물러도 손에 쥔 책은 오롯이 실체를 지녔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의 공간에 실존하는 책이 다른 공간의 누군가에게도 있다. 화면 너머 낯선 이처럼 보여도 같은 실존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닿을 수 있음'이 주는 안도감은 어색함과 낯섦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출판은 곧 실존이고, 실존의 힘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빛날 것이다. 현재 콘텐츠를 주도하는 트렌드는 영상, 즉 유튜브다. 유튜브에서는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진다. 주식, 영화, 드라마, 일상, 인테리어, 동물, 리뷰, IT, 음악, 게임, 연예. 카테고리만 열거해도 끝이 없다. 그런데 유튜버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자주 언급하는 것이 '출간'이다. 온라인에서 여러 가지를 뻗어 나가면서도 그 끝에는 가장 온라인과 거리가 먼 종이책으로 귀결된다.


책은 영상으로 떠도는 낱개 혹은 전부를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양적으로 많다는 게 아니다. 영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긴 이야기를 풀 수 있다는 의미다. 유튜브 속 영상들은 시청각의 집합이어야 한다. 소비자의 시청 목적에 재미가 들어가는 순간, 생산자는 눈과 귀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얘기가 늘어지면 화면을 전환하거나 효과음을 넣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잘라내고, 중간중간 화면 크기를 바꾸는 등 모션을 넣는다. 겉치장하면서 본론 중의 본론만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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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영상이 열등하고 책이 우월하다는 결론이 아니다. 영상은 영상의 강점이, 종이책은 종이책만의 강점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생 관계라는 점이다. 책문화생태계 특집좌담에서 박세현 만화비평가가 말했듯 '전통출판의 영역인 출판과 디지털콘텐츠 영역'이 '서로 도와서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 앞서 말한 영상뿐 아니라 웹툰, 일러스트레이션 등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콘텐츠의 발전이 마냥 전통출판을 향한 위협은 아니다.


그럼 이 둘의 조화로운 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콘텐츠 생산자에게 최소한의 대우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웹툰을 예로 들자면, 현재 9천 명이 넘는 웹툰 작가가 데뷔했으나, 그중 2천5백 명만이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장벽이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작가의 생계와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구현해내기는 어렵다. 웹툰은 한 사람이 캐릭터, 배경, 설정, 스토리, 대사 등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를 나누거나 채색 어시스트를 따로 두어 이 부담을 줄이기도 하나, 이 또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작가들 혹은 서로 마음 맞는 작가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결국 작가가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유튜브에서는 트레져헌터, 샌드박스 등의 MCN 소속사가 유튜버의 관리를 돕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프로그램 관리와 지원에 머물러 있어, 디지털 콘텐츠 전체를 아우르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출판 자체의 독자적인 지위를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지위의 획득, 바로 학문화이다. 출판학과. 이름이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내에 4년 과정으로 출판을 배우는 학과가 없다. 아마 출판을 단순히 '종이를 활용한 출판'에 초점을 맞추면서, 출판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고 본다.

 

하지만 책으로 출판하는 일이 콘텐츠 크리에이터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 독립출판도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까지 포괄한다면 '출판학'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전통적인 이름으로도 앞으로 변화할 시대와 함께할 수 있던 셈이다.


*


폭증하는 디지털 콘텐츠와 늘어나는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하지만 이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이 현실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누구나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흔적을 남겨야 할 테다. 현실을 세세하게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아직, 여전히, 출판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실존의 힘을 여실히 느꼈다. 앞으로도 그 힘이 이어지길 바라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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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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