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시 감수성'을 간직한 예술 작품들 -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미술/전시]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정서, 그리고 예술
글 입력 2021.01.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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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은 그의 글 ‘대도시와 정신적 삶’에서 외롭고 고립된 개인, 강한 사회적 유대를 상실한 장소로 거대 도시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짐멜은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인류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도시인들은 도시 감수성이란, 거대 도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된 문화 현상 중 하나를 말한다. 과거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도시와 함께 삶을 살아온 새로운 세대들에게 고향과 그리움의 대상은 더 이상 자연이나 시골의 풍경이 아니다. 대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화려한 네온사인, 대중교통 수단과 같은 오브제를 향수의 대상으로 느낀다.


예컨대 아래 이미지를 보자. 헤드폰을 끼고 공책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소녀.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창가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등을 보인 채 엎드려 있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위 같은 이미지를 썸네일로 하는 음악 플레이스트 영상들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로파이 전문 유튜브 채널인 ‘Chilledcow’가 그렇다. 이 채널은 공부나 일 등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 틀어 놓기 좋은 ‘로우파이’ 음악들을 24시간 내내 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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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lledcow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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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Pablo Machado X Chilledcow, < Chilledcow >.

 

 

이 유명한 이미지의 원본은 콘도 요시 후미의 애니메이션 작품 <귀를 기울이면>의 한 장면을 가져온 것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다 창밖에 시선을 보내는 소녀는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한 번씩 멍을 때리거나 상념에 잠기는 도시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일상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게 일렁이는 감정을 전해주는 로우파이 음악들과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전시(~2/14)는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감수성’에 집중한다. 시티팝이나 네오-레트로와 같은 문화가 지금의 세대에게 유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막연하고도 아련한 그리움에 있다. 작품 속  도시의 오브제들은 건물, 아스팔트, 음식, 지하철, 아파트, 반려동물 등 일상적인 것들로, 전시를 관람하며 우리는 예술적 시선에서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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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은, < look in >2017.

 

 

전시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정재은의 작품에서 한 여인은 거울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지만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작가는 이러한 낯섦이 문득 거울을 보다 얼굴에서 언제 생긴 지 모를 주름을 발견하듯 노화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도 있고, 표정이나 인상에서 느껴지는, 정리되지 않은 지난 감정들에 대한 도피심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 역시 본인의 모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그림을 보며 우리는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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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지, <1:27pm>, 2020 / <3:06pm>, 2020 / <붉은 바람Ⅰ>, 2018.


 

다음으로 박윤지 작가는 일상에서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았다. 작가는 빛과 그림자의 색과 모양, 바람, 살갗에 닿은 온도와 같은 사소함이 주는 완벽한 순간들이 있다고 말한다.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는 날 블라인드에 비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는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무형의 것들이 맞물리는 순간으로, 어떠한 인위적인 효과나 작용 없이 자연이 빚어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쉽게 잊히는 도시의 삶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잔잔하지만 귀중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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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윤, <아버지의 사랑 Ⅴ>, 2015 / <아빠와 함께 Ⅱ>, 2015.

 

 

정소윤 작가의 작품은 재봉틀로 실을 엮으며 가족과 사람들을 추모하고 동시에 복원한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도시로 오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말한다.

 

섬세한 실 드로잉 기법이 사용된 작품들에서는 단순히 실제와 가까운 수준으로 작품을 복원하는 기교의 차원을 넘어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손길, 누군가의 품, 가족들의 얼굴 등을 안정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소재를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엮어낸 작가의 작품은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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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울, < Subway2 >, 2018.


 

김서울 작가는 도시의 과도한 밀집 생활과 통제 시스템에 의한 사람의 사물화, 그리고 이로 비롯된 일상 속의 아이러니를 작가 특유의 유머와 세밀함으로 재현한다. 두 작품이 하나의 짝을 이루는 시리즈에서는, 첫 제작 시기인 2017년과 코로나 감염사태 이후인 2020년의 차이를 사람의 부재를 통해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담아낸다. 2017년 제작된 작품에서 지하철 속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면 2020년의 작품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한 칸씩 띄운 채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이외에도 바쁜 도시 생활 속 지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는 반려동물을 그린 작품, 텔레비전 주사선을 연상시키는 가로의 선들을 켜켜이 중첩시켜 도심의 생활을 이미지화하는 작품, sns에 중독된 20대 여성의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영상 작품 등 다양한 시선에서 도시인의 생활을 관찰하고 그려낸 작품들이 많다. 전시를 보며 한 명의 도시인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전시 제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전시를 다녀오고 나서도 이 제목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검색해보니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1990) 제목에서 따온 듯하다. 전시의 내용과 큰 관련은 없는 듯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실내생활이 늘면서 우리가 맺는 다양한 인간관계에는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직접 만나기보다는 카카오톡이나 SNS, 화상 채팅 등 온라인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고 내적 친밀감을 유지한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사람을 직접 만나고 사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이처럼 사람과의 연결이 느슨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필자를 포함해 도시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이나 우울감, 고독과 같은 감정을 이전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느낀다. 타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소통할 여유가 부족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긴장을 풀고 본연의 자아로 돌아가는 듯하다. 전시된 작품들에서 근원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양가적인 정서와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건강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에 지쳐 있거나 바쁜 일상 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본 전시회에 방문해보길 권하고 싶다.


참고로 전시가 끝난 뒤 미술관 3층 통로로 나가면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사랑한 별장 '석파정'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또 서울미술관이 소재한 부암동은 빠름을 미학으로 하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력적인 동네다. 전시와 함께 석파정과 부암동 거리 곳곳을 돌아보는 것도 바쁜 도시인의 삶 속에서 여유를 누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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