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아홉, 스물다섯 [사람]

글 입력 2021.01.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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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소복 쌓이는 첫눈처럼 설레는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말들을 전하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조금 더 묵직해진 나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안녕, 초면이네. 꼬리를 똑 떼어 어딘가에 숨겨놓고 싶을 만큼 얄미운 얼굴이다. 스물다섯의 첫겨울이 그렇게 찾아왔다.


매년 겨울이 되면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빠지곤 했다. 어떤 날은 찝찝했고, 어떤 날은 속상했으며, 어떤 날은 새해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전하듯 겨울잠을 잘 때도 있었다.

 

일 년의 끝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나에 대한 기억들은 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지. 나에 대한 실망과 미지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굴하지 않는 전기장판도 이상하게 그를 녹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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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의 나는 그 눈덩이로 거의 집을 지을 지경이었다. 오늘 풀어야 하는 문제집의 양, 죽어도 외워지지 않는 개념과 이 이상은 안될 거라던 선생님의 상담. 얼마 남지 않은 수능과 입시가 가슴을 조여왔다.


그 해의 겨울은 유독 추웠는데, 아마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아직은 어두운 하늘을 등지고 버스를 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한참을 끼어 있다 보면 버스가 멈췄다. 버스에 내려서 한 5분 정도, 정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뒤죽박죽 엉킨 머리를 겨우 들어 시린 하늘 속 창백한 달을 보곤 했다.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서서 나를 맞이하는 달처럼 나도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긴 하겠지 하고 의연한 척하던 그 시간들. 고3의 이름은 그렇게 외로움과 자존심으로 버텼다.


입시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끝이 났는데, 경쟁률 때문에 안될 것이라고 했던 곳에 예상치 못하게 덜컥 붙었기 때문이다. 행복함과 맞았던 열아홉의 12월 31일. 12시가 지나자마자 친구들과 당당히 신분증을 보여주고 술을 마시고 있던 때, 불현듯 내 눈덩이는 다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난 어른이라는 이름이 막막함이 거대했다. 그때는 언제나의 내가 그렇듯 나중에 생각하지 뭐, 하고 넘겨버렸지만. 매해 겨울 같은 고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내 깊은 곳 어딘가에 깊은 가시로 박혀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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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었던 스물, 놀기만 했던 스물하나, 유럽여행에 푹 빠졌던 스물둘, 무기력했던 스물셋.


스물넷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졸업작품까지 내놓았으면서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다시 휴학을 선택한 해? 휴학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고마워진다. 이미 취직을 하거나 열심히 취업 준비로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 불쑥 멈추어 서겠다는 결정은 충동적으로 가볍게 내렸다. 결정이 가벼웠던만큼 이래도 되는 건지 오래 앓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결정은 내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충동이었다. 남들이 살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다리를 찢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더 느린가 보다며 내가 버려두었던 과거를 향해 뒤로 걸어갔다. 그저 지금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해보자고.


코로나가 아니면 어떤 말을 하기도 어렵다는 2020년은 그렇게 내가 살아온 짧은 생애에서 가장 열심히 살려고 했던 시간들이었다. 온종일 집에 있었지만 바쁘게 살았다. 주저하는 마음으로 핑계를 대며 포기해왔던 것들에 돌아가고 하나씩 발자국을 찍었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였는데, 내가 묻어있는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워 한동안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우습게도 내가 숨기고 있는 미숙함과 부족함을 누군가 읽어내면 어쩌나 망설였던 기억은 글이 좋다는 한 마디에 녹아 사라졌다. 가끔은 버겁게 다가오는 마감도 한 주의 즐거운 일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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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의 끝자락에 막막했던 어른이라는 이름은 반 오십에게도 어렵다. 열아홉이라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만 같은데 벌써 스물다섯이란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를 젓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삼십 대인데 아직까지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는 지인과 자긴 어른이 아니라며 우기는 많은 친구들을 보며 세상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열아홉에 가졌던 불안 역시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한 살 한 살 먹으며 오히려 더 살이 쪘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이름으로 살아야 할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어느 대학을 들어갈지 결정하면 되었던 것보다 더 막연하고 공포스러운 질문들이다. 슬그머니 악몽처럼 찾아오는 이 불안들을 이제 그냥 끌어안고 살기로 했다. 고통이 예술의 원천이라는 어떤 예술가처럼 나를 키운 외로움과 불안의 무게를 같이 짊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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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처음 듣는 곡의 제목대로 한 해가 따라간다는 귀여운 미신을 믿어보며 한 곡을 골랐다.

 

12시 카운트다운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래를 틀고 반쯤 따라 부르다가 깨달았다. 그 곡이 아니라 평소에 좋아하던 곡을 골랐다는 것을 말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선물처럼 찾아온 가사를 되새겼다. 아무리 힘들어도 처음을 기억하며 이겨내 곁에 있는 사람과 만족하자는 가사. 아무래도 만족할 만한 일 년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올해의 첫 책으로 어떤 것을 읽을까 고민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읽기로 했다. 무기력했던 스물세 살의 나를 안아준 책의 구절들과 함께 스물다섯의 첫 글을 매듭지으려고 한다.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사랑하는 2021년을 보내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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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김횽지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슷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주현 에디터님도 저도, 2021년도 꾸준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다보면 가득한 행운이 뒤따를거라 믿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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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메리
    • 2021.01.04 01: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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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김횽지글 너머에 같이 마음을 울렁이는 분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것 같아요. 다정한 마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횽지님께도 모나지 않고 데굴데굴 잘 굴러가는 2021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어느 때보다 곁이라는 온기가 적어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함으로 가득한 매일매일이기를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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