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9.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

글 입력 2021.01.04 21:2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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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09.JPG

 

 

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아홉 번째 에피소드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어갑니다.

 

*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는 인생의 큰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이사이며 둘째는 졸업이며 셋째는 취업이다. 앞선 에세이에서 이미 이사와 졸업은 다뤘기 때문에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앞이 캄캄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됐던 연기는 버리기엔 아깝고 갖고 있기엔 사실상 쓸모 없는 유행이 지나버린 옷 같았다.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하더라도 고난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지만 이이상 잘하고 싶지 않았다. 연기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너무 어려운데도 '이만하면 됐지' 싶어 감정으로만 밀어 붙이는 연기를 했다. 그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재능은 노력하는 마음이니까.

 

그러고 나니까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방황했다. 방황하느라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차선으로 생각했던 승무원을 준비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1인분의 삶을 살고자 독립했기에 어느 회사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토익스피킹과 토익, 포토샵과 인디자인 등 취업에 필요할 것 같은 자격증을 닥치는 대로 알아보고 땄다. 와중에 졸업논문을 썼고 에어컨 상담원으로 인턴십을 했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일주일에 이틀은 쿠팡에 아르바이트를 가고, 갔다 와서는 자소서를 썼다.

 

자소서를 쓰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나를 소개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몇 년간 꾸준히 긴 글을 써왔는데도 나의 언어를 보여주는 게 마이너스가 될지 플러스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두려웠다. 자소서는 최대한 많이 써서 넣으라는데 대강 써서 냈다가 탈락하고 이 다음에 지원할 때 다시는 뽑아주지 않을까 무서웠다. 단어 하나로, 문장 하나로 합격불합격이 갈릴까봐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런데도 탈락했다.

 

계속되는 서류탈락에 대학이 문제인 건지, 심지어 블라인드로 뽑는 곳에서는 토익을 더 올려야 하는지 자격증을 더 따야 하는지 그렇게까지 내가 글을 못 쓰는 건지 답을 알 수 없어 괴로웠다. 서류탈락은 있던 에너지도 다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단어이기에 더는 쓰기 싫을 때는 딱 한 문장만 쓰고 그림을 그렸다. 취준생의 진짜 안 좋은 점은 길게 보면 유익한 일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건강한 사고를 유지하게 해주는 문화생활)을 할 때 죄책감을 들게 한다는 거다.

 

그다음 괴로웠던 것은 친구들을 만날 때다. 물론 내 친구들 중 아직 취업을 안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중 취업을 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친구들이 일 얘기를 하거나 월급 얘기를 할 때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무표정하게 있는 건가? 입꼬리를 내려야 할지 올려두어야 할지 신경 쓰였다.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때도 그랬다. 돈이 없어서 맛있는 걸 못 먹거나 브랜드 옷을 못 사는 건 억울하지 않은데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건 억울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등불 하나 없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을 때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요약하자면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인데, 인터뷰에서 이동진은 하루가 늘 아쉬움은 남겠지만 되돌아가도 그보다 특별히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을 정도의 성실함 정도로는 살고자 한댔다. 영화를 좋아하는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 한 말이라 믿음이 갔다. 이후로도 황망한 마음이 들 때 그 말을 떠올렸다.

 

그런 나날들을 거쳐 지금은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게 됐다. 이 사실은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리고 기쁘다. 매일 좌절하고 아침이면 힘주어 일어났던 날들의 끝에 쥐게 된 일이라 더욱더 그렇다. 자소서가 정말 쓰기 싫은 날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기업의 공고를 보자마자 휘리릭 써서 냈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서류에 붙었고 전화 면접에 붙었고 최종 면접에 붙었다. 나에게 맞는 기업이 있을 거라는 말을 과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고 말해왔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으며 그것이 좋은 방향이었으면 한다고. 배우를 꿈꿨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운 좋게도 마케터의 길로 들어왔다. 지금 일하는 곳에는 다양하고 멋진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나는 멋진 걸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멋지게 글로 포장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한다. 어렵고도 좋은 일이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멈칫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 이 인턴의 끝에서는 업무에 관해 길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직 멀게만 느껴지지지만.

 

*

 

지금은 좋아하는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아직 인턴이라 고용이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것에는 조금 근력이 있는 편이라(독학 재수할 때 다져놓았습니다) 많이 배운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배우면서 돈도 벌고요.

 

글을 쓰면서 해가 넘어갔네요. 원래는 12월 31일에 발행하려고 했는데 조금 게을렀습니다. 재작년에 본 해넘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커버 사진이기도 한데요. 해넘이를 보러 간 게 처음이라 기억에 남네요. 해가 넘어가는 순간을 보면서 12월 31일, 1월 1일의 해만 특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모든 날이 이렇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루하루마다 어제와는 다른 해가 뜨고 넘어간다는 것을 여러분도 저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TMBP 마지막 편이 될 것 같습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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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  
  • 성지
    • 1등!
      자기전에 훌훌 읽고 혼비를 생각하며 잠들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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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상
    • 이글 너무 편안하게 읽고 스며드는 글 근데 댓글에 왜 비밀댓글은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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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CM
    • 취준생의 마음은 다 같은가봐요.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하면 또다시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나 싶어져요. 그러면 또 아무것도 못하게 돼요. 돈을 벌고 싶으면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돈이 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저도 화이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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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수
    • 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고 말해왔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으며 그것이 좋은 방향이었으면 한다고.

      성공하셨네여..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니깐요.
      당신의 행보가, 당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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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정
    • 지금 내게 필요한 글인듯 ,, ㅜ ㅜ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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