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영화]

글 입력 2020.12.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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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막막하다. 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엔 난 그들의 상황을 100% 다 알지도 못하며, 그들에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함부로 말하기엔 난 그들의 기분도 100%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사정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괜찮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그러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사는 거야' 와 같은 시답잖은 위로 멘트를 건네고, '냉정하게 말하는데~'와 같은 말로 괜히 이성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이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듬어 주기보다는, 상대방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대로 지휘하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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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인>의 주인공은 거인이 아닌, 몸과 마음도 아직 덜 자란 '소년' 영재다.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는 영재는 격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부모를 직접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보육원에서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다. 영재를 품어주려 하지 않고, 영재가 '다 컸으니' 혼자서 자신을 보살피고 사회로 나아가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영재는 빨리 철이 들어야만 했고, 힘들고 외로운 건 내색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의젓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써야만 했다.

 

그런 영재가 기댈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하느님은 강제로 영재의 성장이라는 절벽으로 떠밀지 않기 때문에, 기도를 할 때 비로소 영재는 순수하게 고등학생 어린 영재가 되어 꿈을 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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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기만 한다고 다 부모일까. 영재의 아버지는 영재와 영재 동생을 키울 의지도 없고, 돈을 벌 생각도 없고, 대신 영재에게 동생도 맡기고, 영재를 이용하여 '공짜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리고 영재가 답답한 자신의 상황에 화를 내면 돌아오는 말들은 "철이 없다"로, 부모는 그들의 무책임을 영재의 '미성숙'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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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돌아가? 나는 누가 책임져?"

 

- 영화 <거인> 중 영재의 대사

 

 

보육원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너만 힘든 것 아니다"라는 말로 영재의 모든 상처와 방황을 한낱 사춘기 소년의 어리광으로 치부해버린다. 영재가 아직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제 알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며 영재의 아픔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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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홀로 남겨진 영재는 십자가 앞에서 펑펑 운다. 비록 얕은 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이가 갈라진 보육원 친구를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한다. 영재가 무슨 심정으로 기도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영재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신부가 되었는지도, 멋진 어른이 되었는지도, 그래서 정말 동생과 집에서 나와 행복하게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영재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거인>을 본 많은 어른들은 현실적으로 그려낸 청소년 영재의 "성장 영화"라고 호평을 남겼다. 그런데 정말 영재는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다 지나갈 거라고,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성장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어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어린 영재에게 떠넘기며 '거인'이 되라고 몰아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성장영화가 아닙니다. 일종의 재난영화입니다. 

 

- 영화 평론가 이동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위로의 멘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아프다는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것 대신에, 내가 아파하는 것이 비정상이며 이걸 견뎌내는 자가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휘청거리는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게 만든다.

 

영재 주변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육에 무책임한 부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재를 둘러싼 세상을 만들었던 어른들은 영재의 성장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성장을 무너뜨렸다.

 

'성장', 아픔을 딛고 성장? 청소년이 올바르게 자신을 다독이고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기 위해선 진짜 어른들의 지도와 격려, 가르침이 필요하지만 그걸 간과한 채 그저 혼자서 '성장'하라고 방치했다.

 

영재의 선생님이었던 윤미의 어머니가 영재에게 차려줬던 고기반찬의 밥 한 끼보다도 못했던 영재 주변 어른들의 위로를 가장한 외면 속에서 영재는 절대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없고, 그들이 말하는 '세상살이'를 이겨낼 수 없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가?

 

해결책도, 어쭙잖은 공감도 필요 없다. 억지로 모든 걸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에 있는 영재들을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면 된다. 다시 일어나 이 세상 속 거인이 될 수 있게.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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