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리스마스의 방울소리를 기다리며 [사람]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글 입력 2020.12.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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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3년 겨울쯤으로 기억하는 날이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이는 동네 언니들 그리고 엄마들과 함께 어느 곳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있었다. 딱 그 또래의 아이처럼 쉴 틈 없이 깔깔거리며 앞 좌석 할머니의 머리가 라면처럼 꼬불거린다던지 가요들은 모두 시시한 사랑 이야기만 한다며 그것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배꼽을 부여잡곤 했다.

 

그러다 한 언니가 눈을 반짝이게 굴리며 말을 꺼냈다. “너는 크리스마스 선물 뭐 달라고 소원 빌었어?” 순간 나는 두 가지 경우를 떠올렸다. 언니도 아는가, 모르는가. 그녀의 달뜬 얼굴을 마주한 나는 후자로 마음을 굳히고 그에 따른 대답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7살 아이가 8살 언니의 동심을 지켜주었다고 홀로 뿌듯해하며 말이다.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는 냉혹한 진실로부터.

 

몇 살까지 산타를 믿었냐는 질문에 자신의 순수함 혹은 영리함을 뽐내기도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나의 경우는 딱 저 무렵이었다. 마법 이야기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음에도 왜 산타는 부정했는진 모르겠지만, 진실을 알아버리면 부모님이 선물을 주지 않을까 모르는 척 하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커가며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작은 선물 외에는 딱히 기다려지는 날이 아니었다. 더 이상 선물도 받지 않게 되면서는 더욱 더 말이다.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기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굳이 캐롤을 찾아 듣지도, 크리스마스 영화를 찾아 틀지도 않았다. 빨간 날이라는 즐거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일 뿐이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며칠 뒤 다가오는 나의 생일이라는 더 큰 이벤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그런 것을 즐기지 않던 성격도 한 몫 하고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딱히 기대가 없다-라는 회의적인 마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애인이 크리스마스 날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말해도 아무런 서운함도 없는 정도랄까. 굳이 그날 축복해야 할 종교도, 명분도, 기분도 나에겐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나는 그것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의 숨결이 눈에 보이게 추운 날씨부터 그와 대조되는 따뜻한 트리의 불빛, 고전부터 최신까지 모두를 망라하며 울려 퍼지는 캐롤까지 말이다. 아마도 시작은 그저 기다릴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1년의 마지막까지 나를 억지로라도 이끌어 갈 힘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설렐 수 있는 일상이 필요했다. 나 혼자만의 암시로는 역부족이기에 온 세상에서 끌어당기는 그런 힘이 필요했다. 티비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주변사람들까지도 모두 함께 기다리는 그런 날이 절실했다.

 

그렇게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캐롤이 하나 둘 추가되었다. 추워지는 날씨와 함께 캐롤을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간질였다. 조금씩 의미있어졌고 조금 더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다. 이런 변화가 스스로도 낯설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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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릴 적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동화가 떠올랐다.

 

구연동화로 처음 접한 뒤 후에 나온 애니메이션도 보았던 이야기, <폴라 익스프레스>. 산타를 믿지 않았던 한 소년이 우연히 북극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 후 산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동화이다. 주인공 꼬마는 산타로부터 작은 썰매방울을 선물 받는다. 산타를 믿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썰매 방울이었다.

 

 

친구들은 세월이 가면서 아무도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크리스마스부터 사라도 방울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들린다. 마치 믿는 사람에게는 들리는 것처럼……

 

 

마치 나에게는 오래 전 잃어버린 방울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 하다. 산타보다는 동심을 믿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여겨졌던 마음 한 조각이 얼마나 삶에 부드럽게 녹아드는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어떠한 것도 주지 않는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일을 대신해주지도 않는다. 산타의 선물은 받지 못한지 15년도 넘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내려온다. 걱정 없이 포근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져 일상을 챙기게 된다. 괜히 특별한 요리 레시피를 뒤적거리거나 연말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영화를 검색한다. 내 생일이 다가옴이, 연말이 가까워졌음이, 곧 나이를 올려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이, 그 모든 것이 실감나기 시작하면 그 앞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흔히 기대의 끝에서는 허망함이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 기대가 싫어서 어린 나는 마음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한번 지워버렸던 기대의 후에 다시 피어오른 설렘의 불씨에는 불안함 따위는 없었다. 한번 꺼졌기에 불이 나기에는 조그맣고 그럼에도 어여쁘게 바라보기엔 충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방울소리를 듣지 못한다. 마치 그것이 들리면 어설픈 바보라도 되는 냥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방울소리는 꼭 한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무언가 마음 속에서 반짝임을 느낀다면 그것이 그의 방울소리일 것이다. 길라잡이가 되어주며 반짝이는 북극성처럼, 알기 전에는 찾을 수 없지만 깨달은 후에는 늘 느껴지는 별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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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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