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플을 다는 사람들 (feat, 허지웅 작가의 악플을 대하는 자세) [사람]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든 것일까?
글 입력 2020.12.21 14:4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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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허지웅 작가님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익명의 누군가에게서 온 메시지 사진이었다.

 

그걸 읽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따위 말을 익명이라고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작가님의 답장을 읽고서 다시 내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작가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답변을 하신 건지, 그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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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답변에서 연민과 존중을 느꼈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무시하는 '연민'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의 아픔과 분노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악랄한 모습 또한 자연스러운 인간다움이라는걸, 작가님은 잘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그래서 입에 담기에도 더러운 말을 하는 사람에게, 존중과 예의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더 넓은 이해심으로, 나와 다른 생각과 입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악성 댓글을 보고 끓어올랐던 분노를 서서히 가라앉히며,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졌다.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든 걸까? 무엇이 그 사람들을 이토록 화나게 만든 걸까? 도대체 상대방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댓글을 달지 않으면 안 됐던 걸까? 그리고 어떻게 허지웅 작가는 저 댓글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 나름의 고민끝에 내린 생각을 글에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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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아픔, 그리고 결핍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 너무나 다양한 취향, 색깔, 가치관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이 좁은 세상에서 복작거리며 살아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다르므로, 너와 내가 가진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며, 취향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정반대의 견해를 취할 수도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삶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왜 그럴까?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상처와 결핍을 한두가지씩 갖고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이나 글이 내 상처, 내 결핍, 내 마음의 아픔을 건드리면, 그 순간 우리는 분노, 짜증, 슬픔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때로는 그 글이나 말이 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럴 의도와 목적이 전혀 없었음에도, 욱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전하는 방식이 잘못되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감정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의 말과 글에는 긴장과 흥분이 더해진다. 점차 감정이 고조될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감정에 사로잡히면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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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격렬한 감정은 몸과 마음을 잡아먹고, "내 감정, 내 생각, 내 의견이 옳아!!! 넌 틀렸어!!! 내 생각이 더 중요해!!! 감히 네가 어떻게 그따위 말을 하는 거야!!!"라는 아집과 고집이 악성 댓글로 만들어진다. 내가 가진 아픔에 이성은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노와 짜증이라는 감정만 남아, 존중의 자세를 잃어버린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은 채 나의 분노가 식을 때까지, 기어코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혀야만 싸움은 끝이 난다. 이러한 아집과 고집의 이면에는, 격렬한 혐오와 강렬한 분노의 이면에는, 사실 그 사람이 가진 '상처와 아픔, 그리고 결핍'이 숨겨져 있다.


'상처와 아픔, 그리고 결핍'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트라우마와 같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경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열등감이자 질투심이며, 때로는 우월의식이며, 때로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혹은 관심받고 싶다는 갈망이기도 하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났다'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멸시하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형태는 모두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남들보다 잘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채우지 못한 자존감의 구멍에서 생긴 것이기에, 하나의 결핍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핍에서 무수히 많은 악성 댓글이 만들어진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속에서도 일어나는 악성 댓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떠도는 소문만 듣고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멸시한 적은 없는가? 가까운 친구에 대해서도, 그 친구의 속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보이는 것만으로 친구를 헐뜯거나 비난한 적은 없는가? 아마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심히 내뱉은 뒷담화 혹은 비난의 말이 그 친구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 말은 하나의 악성 댓글이 되어 친구를 상처입힌다.

 

이처럼, 악플은 단지 인터넷상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심하게 내뱉은 비난의 말일 수도 있고, 이유 없이 미워지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일 수도 있다. 악플의 근원은 내가 잘 모르는 대상 혹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결여될 때 만들어진다. 그래서 악플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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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악성 댓글이란,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 온다. 상대방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는 경솔함에서 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악플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오늘 만난 직장 동료, 대학 동기,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없이 함부로 말을 꺼냈다면, 그 말은 언제나 악성 댓글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절대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 기본 예의이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도 된다'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닥치고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가 내 생각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이 현실이며, 세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세상에는 모두가 성숙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플을 쓰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악랄한 살인마 혹은 범죄자 같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안달 난 나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 연예인이 악성 댓글을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여 직접 만나보니, 평범한 고등학생, 직장인, 대학교수, 사회적으로 지극히 멀쩡한 사람들 뿐이었다.

 

저들은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방금 전 커피를 사기 위해 들렸던 카페의 종업원일 수도 있고,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때의 담임 선생님일 수도 있다. 정말 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허지웅 작가의 악플을 대하는 자세


 

아마도, 허지웅 작가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악플을 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그 사람 자체가 나쁘기보다 아픈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질투, 열등감,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관심받고 싶은 갈망과 같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혹은 자신의 상처에서 만들어진 분노를 감당할 수 없어서, 저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작가님 눈에는 아프다고 소리치는 거로 보이셨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대와 같은 분노와 멸시가 아닌, 연민과 존중을 담은 말로 답변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결코 그 행동은 옳지 않다.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면 반드시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저런 무례한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악플과 같은 말을 경솔하게 내뱉은 적은 없는가. 자기 자신을 먼저 돌이켜보고 싶었다. 분노와 무례한 말에,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또 다른 상처와 분노, 무례함을 낳을 뿐이니까. 그렇게 되면, 진흙탕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님의 대응 방식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저런 악플을 보면, 저 사람이 너무 밉고 싫고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그마저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임을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리고 싶다. 아직은 친구가 나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할 때도, 욱하는 감정에 화가 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게 지금 나의 수준이지만, 언젠가 허허 웃으며 넘기는 내가 되고 싶다. 호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마음으로 타인의 무례한 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되, 나의 의견을 단호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그 사람의 말을 잘 못 이해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의 글을 잘 못 읽을 수도 있다. 때로는 내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 생긴고집과 아집으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멸시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말을 내뱉기보다 신중하게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취향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다. 또한 서로 너무나 다른 시간을 살아온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다양한 견해와 생각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고서, 세상에 많은 사람이 '다름'을 존중하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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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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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유시연
    • 화면뒤에 숨어서 타자 몇번으로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 나락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이제는 악플과 혐오표현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꺠끗한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러한 목소리를 내주신 작가닙께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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