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이 주는 환상과 현실 [사람]

글 입력 2020.12.1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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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침실 벽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그러다 갑자기 펑펑 울었다. 손에 들려 있던 <보건교사 안은영>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몰입해서? 읽던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 흑역사가 떠올라서? 전부 아니다.

 

당시 ‘감성 황무지’였던 나를 울린 범인은, 바로 어느 가족의 화목한 대화 소리였다.


내가 사는 동네 구조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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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지만, 혼란만 가중한 걸까...



승용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마주 보고 서있다.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은 TV를 틀어놓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기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서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한 가족의 대화가 들렸다.

 

 

아이 (5~7살 추정) : 아, 아빠! 머리카락 당기지 말라고오~

남성 : 하하하하 미안해~ 여보 드라이기 좀 준비해주라

여성 : 00이 수건으로 잘 닦아줘~

 


일일드라마나 영화 속의 그 ‘화목한’ 가족의 대화가 아니다. 맞은편에 사는 ‘어느 가족’의 실제 대화다. 사랑 넘치는 대화를 듣고 나는 대체 '왜' 울었을까.

 

 

 

‘서울’에 대한 환상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 비슷한 감정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해준,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같은 '캐치프레이즈'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17살, 인생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았고 고개를 드니 광화문의 마천루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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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시의회

 

 

“그래! 이게 서울이지”


환상과 실제가 일치하는 순간, ‘서울에 와야겠다.’ 다짐했다. 마침내 2년 뒤,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나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 ‘수도’ 살이!

 


 

‘서울’의 현실



어딜 가나 반전이 가장 재미있는 법... 서울은 ‘현실’이었다. 서울에 산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6번을 이사했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다양한 지역구에 살아보면서 나도 ‘서울 토박이’ 비슷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잠깐 머물다 가야 하는 지역에도 흥미를 둘 수 없었다. 단골 가게를 만들고 싶어도, 어차피 떠나야 하는걸. '부산'이 싫어서 '서울'로 왔지만 없던 향수병이 생겼다. '부산'의 ‘집’이 그리웠고, 진짜 ‘집’이 있었으면 했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리고 조금씩 지쳐갈 때쯤, 맞은편 가족의 따뜻한 대화를 들은 것이다. 그때 갑자기 드는 생각. ‘나는 이곳의 ’이방인‘인 건 아닐까?’


서울에는 보금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항상 불안정했다.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에. 그토록 원하던 이곳, 서울에.

 

 


영화 <먼 훗날 우리> 그리고 나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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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며 애틋한 사랑을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굴복한 남녀의 이야기.

 

영화 <먼 훗날 우리>는 가족과 연인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갈등을 만들어내는 ‘베이징’이라는 공간이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악역은 ‘베이징’이라는 공간인 것만 같았고, 영화 속 베이징은 나에게 '서울'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결국 인물 중 한 명은 베이징에서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무채색’이된다. 회색과 검정색.


고난이 있으면 교훈도 있는 법! 이제는 ‘서울살이’를 받아들이고, 이 공간에 어떻게 녹아들지,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이방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연구 중이다.


또다시 어딘가로 이사를 가야하지만, 지금 사는 동네에 정을 붙여보고, 맞은 편 가족들이 가끔 던져 주는 웃음소리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는 것이 나의 결말이다. 애증의 서울을 더 사랑해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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