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영화]

죽음에 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글 입력 2020.12.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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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k Johnson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30년 종사한 딸, 커스틴 존슨이 아버지 딕 존슨의 죽음을 다양하게 연출하며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픽션(Fiction)과 논픽션 (Nonfiction)을 오가며 촬영된 영상은 아버지의 죽음, 더 나아가 '죽음'이 가져온 남은 자들의 상실과 아픔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속 딕 존슨은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길을 걷다 누군가가 떨어트린 모니터에 머리를 맞아 죽거나, 공사장 인부가 휘두른 자재에 맞아 피 흘리며 죽는다. 그 외에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고, 자전거에서 떨어지거나, 심장마비로 죽는다. 이렇듯 죽음은 늘 예기치 못하게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커스틴이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는 알츠하이머로 떠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커스틴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찍은 짧은 영상만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큰 후회를 했다. 그녀는 죽음이 주는 상실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속 딕 존슨 또한 점차 기억을 잃는 일이 잦아진 것을 커스틴은 깨닫게 된다.

 

이제는 죽음이 주는 상실의 아픔에 덜 괴로울 수 있도록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딕 존슨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 연습하기 영상은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면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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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집안은 예로부터 안식교를 믿었다. 안식교에서는 술, 춤, 영화를 금지한다. 그러나 딕 존슨은 안식교의 규율을 거부하고 자녀와 <영 프랑켄슈타인>을 보러 가는 등, 그에게 천국은 아이들과 함께 이 땅에 있는 것일 뿐 안식교에서의 규율은 중요하지 않았다.

 

딕 존슨은 자녀들을 아끼고 주변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알츠하이머의 전조가 보인 일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알츠하이머는 자신을 점점 잃게 만들고 주변 사람도 하나씩 잃어간다. 나를 구성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제가 남편이 죽었을 때도 딕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어요. 근데 마음이 아팠던 게 며칠 후에 딕을 만나 절 따뜻하게 안아주셨는데 5분 후에 저에게 남편의 안부를 물어보셨어요. 전 그게 또 다른 상실임을 알았어요. 기억 상실이죠.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한 딕의 기억은 제 안에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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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속 연출된 장면들은 죽음에 대비하는 연습의 과정을 담아냈다. 딕 존슨이 죽고 나서 가게 될 천국을 연출하거나 딕의 친구들을 만나 죽음을 이야기하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딕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은 엄중하고 슬픈 분위기로 가득하다. 친구는 추모사를 읊으며 슬픈 눈물을 흘리며 그를 추억한다. 그러나 딕은 장례식이 열린 교회 강당의 문밖에서 그 상황을 보고 웃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딕의 가짜 장례식이다.

 

딕은 추모사가 끝난 장례식장의 문을 열고 자신을 추모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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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습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준비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프고 무서웠던 기억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여유를 덧대어 준다. 물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딕 존슨의 죽음’은 언젠가 일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커스틴 존슨은 벽장에 들어가 핸드폰에 한 문장을 반복해서 녹음한다. “딕 존슨은 죽었습니다.” 한 문장을 계속 되뇌며 커스틴은 딕 존슨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녹음을 마친 뒤 벽장 문을 열고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닉 존슨을 끌어안으며 다큐멘터리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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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죽음이란 단어는 쉽게 꺼내는 주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죽음은 정말 무서운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느꼈다. 누군가에게 죽음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기억은 없다. 그저 어른들은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길 꺼렸으며 터부시했다.

 

영화, 소설, 드라마, 책 다양한 매체에서도 죽음은 ‘나’라는 존재의 상실이자 끝이었다. 또한,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아픔을 가져 왔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죽음은 최대한 피해야 하고 말하면 안 되는 금기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후회로 가득하다. 죽은 자에 대한 제대로 된 배웅을 하지 못해 후회하고, 죽은 자신에 대한 위로를 건네지 못해 후회한다. 나의 죽음만이 아닌 타인의 죽음, 우리는 죽음 연습이 필요하다. 죽음은 누구나 단 한 번 겪는다. 누구든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죽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연출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모든 아픔과 후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아픔과 상실 또한 삶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덜 아플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유년기가 죽으면 청년기가 오고, 청년기가 죽으면 노년기가 오고, 어제가 죽으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죽으면 내일이 온다.” 몽테뉴의 얘기처럼 삶은 그 자체로 죽음의 연속이며, 처음부터 삶 안에는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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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지 않을까? 그래서 딕은 기억은 점점 잃어가지만, 딸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지금을 천국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을 마주 보았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 보며 딕은 연출된 자신의 죽음을 보며 천국이 그려진 세트장을 보며 웃는다. 이 웃음이야말로 딕 존슨이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천국에서 만난 아내와 이소룡과 버스터 키튼, 프리다 칼로와 함께 있는 힘껏 웃고 즐기면서 말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만 준다면 참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면 서로를 잃는 고통도 마주해야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우린 서로 꼭 껴안는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짧은 기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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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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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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