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추워지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 [영화]

글 입력 2020.1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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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유독 걸음이 빠른 계절처럼 느껴진다. 그 전후 계절에 비해 끄트머리의 경계가 모호해서일까, 혹은 쾌청한 날씨를 떠나보내기가 아쉬워서일까. 가을과는 매번 이제 떠나나 보다 싶어 작별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기보다는 어느새 다가와 버린 겨울의 존재에 비로소 떠나갔음을 뒤늦게 깨닫는 듯하다.
 
마치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훌쩍 집으로 돌아가 버린 사람처럼. "벌써 갔어?"라고 되물어야 하는 그 속내에는 괜스레 못다 한 인사에 대한 미련과 섭섭함이 짙게 남듯이, 준비가 덜 된 이별이 데려오는 그 쌉싸름한 기분 탓에 매 가을의 끝에 설 때면 아쉬움과 아련함으로 입맛을 다시곤 한다.

김태용 감독이 2010년 선보였던 멜로 영화 '만추'는 시각적 요소를 탁월하게 활용하여 이러한 늦가을의 쓸쓸한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시애틀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와 영화 전체를 뒤덮은 무채색의 톤, 그리고 짙게 낀 안개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스틸컷만 본다 해도 가을을 담고 있는 영화임을 단박에 알 수 있도록 그 분위기와 정서를 자아내는 데에 일조했다.

서사적 요소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 가을의 끝을 배경으로 한 두 남녀가 있다.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명의 수감자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애틀로 향하고, 몸과 사랑을 팔며 생활을 이어가던 남자 훈(현빈)을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들의 만남은 총 사흘로, 감히 사랑이라 칭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짧지만 결코 가볍게 잊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길게 이어지지 못했기에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마치 가을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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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의, 탕웨이를 위한, 탕웨이에 의한'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만추'는 탕웨이가 맡은 애나라는 인물에 중심을 둔 채 진행된다. 애나에 대한 영화의 애정은 카메라가 그녀를 비추는 시선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영화는 그녀에게 강한 연민의 프레임을 씌우고는 내내 따스한 태도로 그녀의 뒤를 따른다.

내면을 깊게 다친 애나는 일관적으로 말이 없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본인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데에 무척이나 서툴다. 장례식에 참석할 거냐는 가족의 물음에도, 예약자로서 이름을 묻는 웨이터의 물음에도 그녀는 침묵만을 길게 늘인다.

훈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세워둔 벽을 손쉽게 부수고 거리를 좁혀오는 그에게 애나는 꽤 오랜 시간 침묵으로 일관한 바 있다. 답을 기다리는 이가 다소 민망해질 타이밍까지 쉽사리 입을 떼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꽤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카메라는 결코 다른 곳으로 전환되거나 멀어지는 법 없이 미디엄 클로즈업 샷을 끈질기게 유지하며 그녀가 입을 뗄 수 있을 때까지 온전히 기다려 준다.
 
이는 많은 대사가 없는 인물 애나의 미세한 표정 변화, 감정의 요동침을 관객이 캐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선사하는 행위로 그녀에게로의 이입을 돕는다. 이러한 작은 배려조차 카메라의 프레임이라는 제한된 시각에 갇혀 바라보아야 하는 관객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훈이 애나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이미 그녀가 영화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의도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무엇이든 창조하고 없앨 수 있는 전지전능한 위치의 감독은 훈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어떻게 사용할까. 그는 훈을 통해 애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 것일까.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는 애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게 되는 초중반부와 달리, 결말에 다다랐을 시점에는 다소 헷갈리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출소하는 날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던, 훈이 제안한 약속 탓이다. 매번 마술처럼 깜짝 나타나 그녀를 놀라게 하던 그는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오지 못했고, 끝내 그의 말은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는다.
 
이러한 훈의 사정은 영화의 막바지 10분에 이르러서야 꽤 급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연인의 행복을 기대하던 관객은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앞에 덩그러니 남겨지게(혹은 버려지게) 된다. 홀로 카페에 앉아 훈을 기다리던 애나가 눈에 아른거리면, 켜켜이 쌓였던 애나에 대한 연민이 작용하여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민다. 어쩌면 훈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칫 지키지 못한 약속을 저지른 훈에 대한 미움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앞서 제기한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감독이 훈이라는 장치를 사용한 방식은 무엇일까. 단순히 새드엔딩을 위한 슬픔, 이루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과 홀로 남겨질 애나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을 선사하려는 의도였을까.

 

Inmate 2537. I'm on my way, back.


한없이 추워 보이는, 그러나 차가워 보이지는 않는 사람. '만추'가 그리는 애나는 마치 비가 내려 축축한 겨울의 새벽녘 같다. 혈색 없는 얼굴로 커피를 붙들고 그 온기를 느끼는 모습은 다소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극 중 애나는 회귀의 인물이다. 영화 내내 그녀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돌아간다.

보는 이를 숨죽이게 만들던 오프닝의 애나는 도망쳐 나왔다는 표현이 적합할 행색으로 터덜터덜 비탈길을 내려오다, 이내 마음을 돌리고는 떠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숨겨야 하는 편지들을 먹어 없애려 하지만 다급하게 입에 쑤셔 넣기는커녕 깊은 상념에 빠진 채 빠르지 않은 속도로 편지를 씹는 모습은 무언가를 없애려는 의지보다는 마치 그것을 곱씹으며 돌이켜보는 행위처럼 보인다.

남편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 중인 그녀는 짧게 주어진 72시간이라는 자유가 끝나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다. 또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매일 감옥으로부터 그녀의 위치를 확인하며 돌아올 것을 채근하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그녀는 수화기에 대답한다. "2537번, 돌아가는 중입니다." 이렇듯 '돌아간다'라는 행위는 그녀의 정체성과 가깝다.

그런 애나가 결코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곳이 있었다. 바로 자신을 감옥에 가게 했던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건이다. 어떤 의중에 깔려있든 간에 애나는 그것을 되새기고 억울해하는 대신 덮어버리는 편을 택했고, 왕징(김준성) 과의 어색한 재회에서도 이미 지난 일이라며 단호히 말머리를 자른다.

그에 수반한 결과로 그녀의 시간은 그곳에 멈춘 채 흐르지 않고 있었다.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욕구는 분명 존재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채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의 내적 갈등은 여러 씬에서 나타난다. 쇼윈도의 옷을 그대로 사 입다가도 문득 본인의 상황을 체감하고는 곧바로 환복하는 장면과, 다시 감옥으로 혹은 다른 어딘가로 떠나려 버스표를 사려다 끝내 목적지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장면은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는 애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표소 직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며 되려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회귀가 가능해질 수 있도록 막혀있던 물꼬를 터주는 것은, 바로 다음 씬에서 허락도 없이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던 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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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은 애나와 달리 떠나는 사람으로 일컬을 수 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에도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다 막무가내로 버스에 올라탄 모습이었고, 두 사람의 마지막 역시 그가 애나의 곁을 떠나며 마무리된다. 애나에게 걸려오던 전화가 귀소를 독촉하려는 목적이었다면 훈이 받던 연락은 계속해서 어딘가로 떠날 것을 종용하는 전화들이었다.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그들의 대화는 종종 끊어지기 마련이었고, 결국 각자의 전화들이 불러온 결과대로 끝내 두 사람은 함께하지 못한 채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원하는 걸 다 맞춰준다는,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건 당신이 처음이라는 훈. 여기서 밝혀둘 것은 그가 K-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내가 싫다고 한 건 네가 처음이야.", 혹은 "뭘 원하는지 도저히 몰라서 궁금해." 식의 남자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물론 지인과의 통화에서 "슬슬 다른 여자 손님도 좀 만나보려고."라 말하며 옆자리의 애나에게 시선을 던지던 초반부 장면을 고려하면 어쩌면 시작은 본인의 예비 손님 정도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애나에게 또렷한 방점을 찍은 이 영화에서 어디까지가 그의 호기심이고, 어디부터가 진지한 감정이었는지는 아마도 중요치 않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훈의 끈기와 배려를 가지고 그만의 방식으로 애나와 함께 걸었다는 점이다.

흔쾌히 '같이 있어 주겠다'라고 말하던 그는 철저한 이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챙기기에 바쁜 그녀의 가족, 책임을 회피하던 옛사랑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곁에 서 준다. 그는 걸음을 떼기 어려운 그녀에게 끊임없이 묻고, 다가오기를 반복한다. 정적인 애나에게 어떻게든 역동적으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싶은 관객의 마음이 투영된 캐릭터인 셈이다. 시시콜콜한 옛 사정을 다 알지 못한대도 무슨 상관인가, 맞장구인 하오(好), 화이(坏)의 용법이 우스꽝스럽게 틀려도 뭐 어떤가. 훈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영화의 시작 이래 처음으로 그녀를 웃게 해주었다는 점일 테다.
 
고객이 원하는 이가 되어주는 일을 하는 훈은 직업적 통찰력으로 애나를 꿰뚫어 본 듯하다.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차가운 언행, 자신이 제안했던 잠자리를 되레 매몰차게 거부하는 행동에서 그는 황당해하거나 그 차가움에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그것들을 단서로 삼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간파했다. 훈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최측근으로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 대신, 거리 두기라는 본인만의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애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 시작은 이름을 묻는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그가 타인의 입을 빌려 이름을 알아내던 방식은 기발하면서도 배려가 묻어나는, 못내 사랑스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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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꼽을 범퍼카 씬은 훈의 거리 두기 방식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나게 범퍼카를 타다 갑작스레 멈추고는 우울한 얼굴로 상념에 젖는 애나. 그녀가 궁금하지만 훈은 '괜찮아요?', 혹은 '왜 그래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주차한 뒤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때 갑작스레 빛이 들어오고, 공사 인부들이 경계 펜스를 걷어가 그들의 시야 속 남은 건 영화관 스크린을 꼭 닮은 직사각형의 프레임 속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 연인이다. 그 광경을 골똘히 바라보던 훈은, 곧 제멋대로 그들의 대화를 더빙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훈이 애나에게 처음으로 목소리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마치 극장 안에 있는 듯한 구조와 제멋대로의 더빙은 마치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듯한 거리감을 그녀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 얘기'라는 얕은수 아래에서 꺼내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내내 수동적으로 대화에 임하던 애나는 처음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하고 싶었던 말들을 연인의 이야기인 양 내뱉기 시작한다. 그 말들이 왕징과의 대화일지, 혹은 남편과의 대화일지는 모르지만 관객은 그녀의 단호하고도 깊은 눈빛을 통해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영화 '라라랜드(2016)'의 보랏빛 노을 아래 탭댄스 못지않게 로맨틱한 무도가 이어진 후, 훈의 대사 "Wait!"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조금 전 관람했던 영화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앞서 뛰는 애나를 훈이 따라잡는 이 장면은 비로소 두 사람의 영화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범퍼카 씬이 실습이었다면, 이어지는 포크 씬은 실전과 같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애나의 책망에 훈은 이 사람이 자신의 포크를 썼다며 변명하는데, 이것은 훈이 또 한 번 애나에게 선물하는 거리감이다. 우스꽝스러운 면목을 빌려 그녀가 입을 열고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꾸민 배려인 것이다. 그녀는 왜 이 사람의 포크를 썼냐는 말 아래에 몸을 숨긴 채 7년 만에 처음으로 왕징을 질책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연인의 대화에 목소리를 입히며 우는소리를 흉내 내던 애나는 비로소 자신의 눈물을 흘린다.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오열에 왕징 역시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는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미가 아닌 진정 어린 사과를 건네고, 오직 두 사람만이 그 의미와 무게를 알고 있을 사과에 다른 이들은 그저 숨죽인 채 바라볼 뿐이다.

그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어로만, 또 죽은 이에게만 자신의 진짜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그녀는 훈이 만들어 준 포크라는 명목하에 지금껏 닳고 닳았던 내면을 처음으로 밖에 꺼내놓는다. 비로소 묻어두었던 상처를 직면하고 그때의 기억으로 회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영화가 많은 이의 마음에 명작으로 남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만추'는 비록 두 인물의 로맨스를 안타깝게 마무리 지었으나, 끝까지 애나라는 한 인물의 불행에 책임감을 갖고 애정과 연민의 태도를 이어나간다. 새드엔딩이라는 명목하에 훈이라는 장치를 소모적으로 사용하지도, 애나라는 인물의 불행을 괄시한 채 무참히 짓밟지도 않는다.

엔딩에서 애나는 지켜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신반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흘러갔던 시간만큼 돌아가 그를 추억하던 그녀는 "안녕, 참 오랜만이에요."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그와 했던 역할극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온전히 회귀할 수 있게 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헤어살롱을 열고 싶다던 원래의 삶으로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어설 자리를 허락한다.

따라서 영화 '만추'는 단순히 관객에게 슬픈 여운을 남기고 감정을 짜내 인상 깊은 영화로 남고자 하는 얕은 새드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엔딩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또다시 찾아온 사랑의 실패로 절망할 애나가 아니다. 영화의 방점은 훈 덕분에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애나의 미래에 선명히 찍혀있다. 훈의 부재는 깊은 슬픔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비로소 애나의 홀로서기를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훈은 또 다른 상처가 아닌, 선물로서 간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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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창밖에서 손을 흔들고, 여자는 바라보지 않는다.

여자는 일부러 고개를 더욱 빳빳이 굳힌다. 그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지만 끈질기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만약 한 번 더 바라본다면, 그의 잔상은 그만큼 짙어지리라.

남자 역시 계속해서 손만 흔들 뿐이다. 이미 출발한 버스의 차체도 쾅쾅 잘만 두드리던 남자는 정작 여자의 창문에는 손끝도 대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서 있다.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은 간절함과, 동시에 그를 두려워하는 두 사람의 이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안타까운 정서를 자아낸다.

이러한 정서를 폭발시키는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신은 1분이 넘도록 사운드트랙 하나 없이 이어진다. 두 사람은 마치 온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입술을 맞대는 부드러운 키스보다는 나의 뺨을 당신의 뺨에 부비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모양새이다.
 
가을의 끝에 선 채, 곧 다가올 가장 추울 계절을 앞두고 더는 추워지고 싶지 않아 마지막 온기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그 처절한 몸부림. 다시 안개가 끼기 전에 마지막 햇살을 즐기려는 두 사람의 절박한 키스는 관객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유발한다. 가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 사랑의 끝을 목도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며, 영화는 관객에게 늦가을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길 것을 권하고 있다. 더욱더 추워질 것이 두려워 안갯속으로 숨지 말라고. 찰나를 비추는 햇볕일지라도 한껏 느끼며 절박하게 매달리라고. 그 짧은 온기가 당신에게 기나긴 겨울을 견딜 수 있을 용기를 허락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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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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