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한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낭독공연 '지육' [공연예술]

글 입력 2020.12.11 21: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낯설다는 감각을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냄새를 통해서가 아닐까. 비행기를 타고 이국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 풍겨오는 낯선 냄새는 많은 여행자들이 내가 다른 곳에 왔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일 것이다. 어느 음식점에서 만난 톡 쏘는 향신료 냄새도. 스치며 지나간 누군가의 낯설지만 좋은 냄새도. 코 끝을 맴도는 냄새들은 꽤 오래 기억에 고여있어 자꾸 킁킁대게 만든다. 냄새로 기억이 맡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종종 낭독 공연을 보러 가곤 하는데, 낭독 공연은 다른 연출은 최소화한 상태로 배우들이 대본을 낭독해주는 형식의 공연이다. 보통은 지문을 읽어주는 나레이터와 배우들, 대본이 전부다.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에 관객들의 반응을 피드백하기 위해 리딩 공연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낭독극 형식 자체가 본 공연인 경우도 있다.


내가 낭독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채워지지 않은 여백에 있다. 목소리만으로 흘러가는 서사를 따라가는 것은 귀로 꾸는 꿈과 같다. 절제된 연출 너머의 지점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은 배우들의 목소리, 그리고 내 상상력이다. 대본의 텍스트를 무대 가장 위에 올리기 때문에 보다 이야기의 목소리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냄새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낭독극을 꺼내 든 이유는 최근에 본 낭독극의 피비린내가 아직도 내 코를 스치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는 낯섦에 대해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지만 가장 쉽게 익숙해지기도 한다. 내 체취를 다른 사람들은 알아도 나는 인지할 수 없듯이, 나와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냄새들은 쉽게 맡아지지 않는다.

 

오늘 소개할 연극 '지육'의 낭독 공연은 내 상상력을 모두 피비린내로 채웠다. 인간과 동물, 육식과 폭력에 대해 묵직한 냄새로 가득했다.


 

 

나한테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지육 포스터.jpg

 

 

이곳은 소와 돼지를 식육으로 가공하는 '화성SH육가공센터'. 설형수와 홍명호는 별관에서 특별한 고기를 전담하고 있다.

 

 

돼지 도축을 업으로 하는 설형수와 홍명호가 휴게실에서 밥을 먹는 장면으로부터 연극은 시작된다. 설형수가 먹는 짜파게티의 냄새가 퍼진다. 홍명호는 힐끗 그를 쳐다보다 왜 매일 라면만 먹냐고 묻는다. 설형수는 일을 하고 나면 자기에게 동물들의 피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벌써 이 일을 한지 십여 년이 넘게 흘렀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의 진한 냄새는 그 피 냄새를 조금이라도 덮어주지 않을까.


그는 이내 초등학생인 아들이 최근 자기를 피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내뱉는다. 왜, 냄새 때문에? 설형수는 정확히 말을 하지 않지만 그런 것 같다며 긍정한다. 홍명호는 과장스럽게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밥을 먹는 두 사람 사이로 소고기 파트 팀장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울린다. 품질 검사에 꼭 필요한 소의 연수(광우병 검사에 필요한 뇌조직)가 사라졌단다. 밥을 먹은 후에 와서 찾는 것을 도우라는 것이다. 연수는 소고기를 출하할 때 꼭 필요한 것이라 연수가 없으면 출하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 나이 든 직원들에 대해 구조조정이 있던 뒤로 몇 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설형수는 이게 다 회사가 오래된 베테랑들을 잘랐기 때문이라며 불평한다.


갑자기 휴게실에 처음 보는 직원 하나가 들어와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사장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서요. 쭈뼛쭈뼛 들어온 그의 이름은 이상돈, 거래처의 신입사원이다. 홍명호는 연수 찾는 것을 돕기 위해 일단 밖으로 나가고, 설형수는 이상돈이 탐탁지 않지만 무시하지는 않는다. 짐짓 도축을 야만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적당히 넘어간다.


서른이 될 때까지 일은 해본 적 없이 놀기만 했다는 이상돈에게 인생에 대해 논하던 설형수는 어느새부터인가 말을 놓았다. 그러나 이상돈의 정체가 밝혀지고, 발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다. 굽신거린다.


평소처럼 흘러가는 하루가 될 것 같던 그 날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연수 소동은 갈수록 붙잡을 수 없을 만큼 회사를 뒤흔들고, 그에 못지않은 홍명호와 이상돈의 싸움 사이에 설형수의 등이 터진다.


그저 처자식을 위해 먹고 살 정도로 일을 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설형수. 그의 한 마디가 무대에 툭 가라앉는다. 어쩌면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고.

 

 


지육; 도축으로 다른 부위를 잘라내고 몸통만 남은 고기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같지만 사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의 극은 아니다. 중간중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세 명의 인물이 주고받는 것은 말이다. 핑퐁 거리며 지속되는 대화는 아이러니와 어이없음 사이에서 가벼워진다. 심각한 장면이 나올 때 그를 중화시키는 듯 돌발 행동이 나온다. 마치 설형수가 먹던 짜파게티 냄새 같다. 그 밑으로는 진한 피비린내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극이 전개되면서 세 명의 인물들은 일종의 지육의 과정을 거친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지육이란, 가축을 도축할 때 머리, 내장, 다리, 꼬리를 잘라 낸 상태의 고기이다. (지육에서 뼈와 다른 지방을 제거한 고기가 바로 정육이다.) 완벽히 가공되지 않았지만 이미 해체되기 시작한 시점. 대화가 길어질수록 조각조각 해체되어 캐릭터들은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지육배우소개.png

 

 

의리와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막무가내로 사고를 치는 홍명호, 정상적이게 보였던 설형수가 결국 보여주는 폭력성, 고기는 잘 먹지만 자기 농가의 돼지를 잔인하게 도축하는 것은 안된다는 이상돈. 이 세 인물이 그리는 인간상은 나와 무관한 모습이 아니다.


특히 이상돈의 대사들은 나를 콕콕 찌르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 농가 돼지들을 상품이 아니라 생명으로 소중히 대해야 한다며, 왜 그러지 않냐는 거였다. 홍명호는 그에게 한 마리씩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하느냐 대꾸한다.

 

이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이상돈의 대사인데, 도축 과정을 보러 온 그는 조심스레 설형수에게 묻는다. 오늘 도축되는 돼지가 자기 농가의 돼지냐고. 내로남불의 태도에 실소가 나온다. 하지만 내가 속 편히 웃을 수 있는 입장인가?


생태계는 결국 약육강식으로 돌아가기에 잡식동물인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육'도 육식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육식과 폭력, 계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오래전부터 고기는 권력을 쥔 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도축을 둘러싼 인간상을 표면으로 흘러가지만 내부에는 다양한 층위의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강자와 약자에 대해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도태되는 노인들, 회사와 갑을 관계, 부자와 소시민, 지역감정, 신체적인 폭력, 육식의 계승까지. 여상한 듯 지나가는 일상적인 대사마다 비릿한 냄새가 넘실거린다.

 

이야기가 지육의 긴 과정을 끝내고 마무리가 될 때까지 그 냄새는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 도달해서도 '지육'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KakaoTalk_20201211_212817763.png

 


육식을 한다는 것이 곧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인간 역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육식을 하기 위해 살인을 하고 폭력을 시작하며 너무도 당연해져 버린 부산물들이 있다. 피라미드와도 같은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 우리가 고기를 좋아해도 고기를 도축하는 과정은 괴로워서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지육'은 그런 것들을 슬쩍 나에게 비추어주었다.

 

설형수가 첫 장면에서 아들이 냄새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던 부분은 엔딩에서 역전이 되어 설형수의 아들 역시 이러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편입될 것임을 암시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어오던 약육강식이라는 이름 아래 거행되는 폭력들은 아마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 역시 대다수의 것들은 묵인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냄새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익숙해져 버렸거나, 외면하고 싶다며 다른 냄새로 마구 덮어버렸다. 설형수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고 찝찝해하는 것이 생각이 나 나도 집에 가는 길에 조심스럽게 내 옷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우리는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이것이 피비린내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최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