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극 중 극 중 극 - 연극 '작가 The Writer'

미래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올까 봐 무섭지?
글 입력 2020.12.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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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he Writer》는 기존 형식에 거절한다고 말하면서 표출하는 형식 자체도 파격적인 작품이다. 1장이 끝나고 관객석 조명이 켜지며 갑자기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가 하면 10분간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무대 뒤에서 독백으로 이끌어가는 장면도 있다. 같은 상황을 헤테로 커플이 한 번, 레즈비언 커플이 한 번 연기한다. 그리고 극을 가로지르는 남성의 질문이 있다. “이런 연극이 성공할 수 있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더 근본적으로는

 

“이게 연극이야?”

 

하지만 ‘연극’조차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언어는 권위에 도전하고 문학의 형태를 넘어선다. 운문, 산문, 극문학, 소설 등등 모든 형식을 거절한다.

 

 

펜을 종이에 댔을 때 여성이 처음 깨달은 건 아마 그녀가 사용하도록 미리 준비된 공통의 문장이 없다는 사실일 거예요.

 

표현의 자유와 풍부함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므로, 그러한 전통의 부재 혹은 도구의 결핍과 부족은 틀림없이 여성의 글쓰기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 그런데 이러한 형태조차 남자들의 필요와 용도에 맞추어 만든 것뿐이에요. 여성이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서사시와 시극도 못 쓸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여성이 처음 작가가 되었을 무렵, 오래된 문학 형식들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어요. 여성의 손으로 주무를 수 있을 만큼 어리고 부드러운 형식은 소설뿐이었는데 그게 아마 여성 작가들이 소설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일 거예요. 그렇지만 모든 문학 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한 ‘소설’이 정말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면 물론 그녀는 소설 형식을 두드려서 자기에게 잘 맞는 형태로 고치겠지요. 또 꼭 시가 아니더라도 그녀 안의 시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마련하겠지요. 아직도 여성에게 시는 꽉 막힌 표현 수단이니까요.

 

| 버지니아 『자기만의 방』, 문예 출판사

 

 

연극을 보는 내내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건 사실 배우도, 무대도, 조명도 아닌 웬 중년 남성이었다. 뒤에 앉은 남성 둘이 “음음” “큼큼” “컹컹” 하는 소리를 꾸준히 내며 감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편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상황은 무엇인가. 나를 위한 고도의 퍼포먼스인가? 실제로 내 오른쪽엔 관객석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앉아있었기 때문에 퍽 가능성 있는 추측이긴 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을 서사의 중심으로 데려왔을 때 기존 글쓰기와 다른 형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새롭진 않다. 《작가 The Writer》의 연극 서문에 쓰여있듯, “어쩌면 여성적 글쓰기가 새로운 글쓰기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식은 여전히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멈추는 효과적인 구속이다. 형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은 이미 권위를 획득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의 주장을 약화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스물네 살 여성 문학도와 남성 연출가의 다이얼로그로 채워진 1장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장면에서 남성 연출가는 여성 작가에게 “이건 아직 연극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아직 연극이 아닌 이 작품을 비평해달라 권위를 넘긴다.

 

그의 마이크를 넘겨받는 건 나른하게 몸을 젖히고 연극 내내 여성의 집중을 방해하는 중년 남성 관객이다. 그는 남성 없는 컬트 조직에서 자유를 경험했다는 주인공의 독백에 서론이 너무 길다 소리내 불평하고 난 집중을 잃는다.

 

말하자면 나는 극 중 극 중 극을 경험했던 셈이다. 극 중 극 중 극에선 여성 문학도가 남성 연출가에게 농락당하고 극 중 극에서는 여성 작가가 남성 연출가에게 무시당하고 본 극에서는 내가 집중해 보고 있는 연극이 “음음” “큼큼”거리는 중년 남성 관객 때문에 방해받는 세상.

 

《작가 The Writer》의 시의성은 이 상황을 연극에 편입시킨다. “서론이 너무 기네.”를 듣고 답이라도 하듯 다음 장면에 여성 작가, 주인공이 말한다.


 

미래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올까 봐 무섭지?

 

《작가 The Writer》 극 중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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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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