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향유한 문화를 기억하는 방식 [문화 전반]

다이어리와 티켓북, 스크랩북을 이용한 기록
글 입력 2020.12.1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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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워낙 깊고 방대해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말인즉슨, 우리는 누구나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친구와 전시회에 가서 예술작품을 즐기는 것부터 집에서 넷플릭스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까지, 전부 문화를 향유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와 단절된 삶을 살기가 더 힘든 지금, 우리는 문화를 어떻게 기억할까? 웬만큼 강렬한 기억이 아닌 이상 단순히 머릿속에서의 생각은 쉽게 잊힌다. 간단한 테스트를 하나 해보자. 최근에 본 영화 다섯 개를 순서대로 말해보라. 아마 가장 최근에 본 한 개나 두 개까지는 잘 생각이 날지 몰라도, 다섯 개를 곧바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출난 기억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누구나 마찬가지다. 재밌게 봤던 영화라도 몇 년이 지나면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아예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아무리 재밌게 봤더라도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매우 놀란 부분은 기억하고 있으니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다시 느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나 뮤지컬, 전시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책이나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친구나 가족, 애인처럼 친밀한 누군가와 함께 즐겼다면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기억을 꺼내올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시 떠올리기는 특별한 계기 없이 어렵다. 포스터나 배우를 자주 접한 오래된 영화라면 내가 직접 봤는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기 마련이니,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위한 기록을 간단하게나마 하고 있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문화를 즐겼던 그 순간의 기분을 나중에서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기록이다. 머릿속 생각을 눈에 보이게 적어내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됐는데 막상 써보니 횡설수설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한, 기록과 함께 보관도 중요하다. 쓰기는 썼는데 나중에 찾을 수가 없다면 안 쓰느니만 못하다.


내가 쓰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오늘부터라도 시작해보길 바란다.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일이 힘들지, 정작 시작하는 건 쉽다. 쓰다 남은 공책 한 권과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내용이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매일 쓰는 다이어리: 날짜에 맞춰 제목만이라도 적는다.


 

한 페이지에 4일을 쓸 수 있는 a5 크기의 다이어리다. 날마다 상황에 맞춰 일과를 키워드로 짧게 정리하거나 길게 묘사하거나 하는데, 그날 했던 문화생활이 있다면 제목만이라도 기록해둔다. 전시회를 갔다면 전시회의 이름, 영화를 봤다면 영화의 제목을 적는다.


이렇게 짧게 적어두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나중에 정리 하려고 볼 때 의외로 중요하다. 아무 단서도 없다면 막막하고 막연하기만 하지만, 적어도 날짜와 제목이 있다면 나머지는 검색을 통해서라도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면 적힌 내용을 보면 반드시 어느 정도 떠오르는 게 있다.


11/24 날짜에 적힌 ‘삼진영어토익반’을 보면 그때가 불현듯 기억난다. ‘맞아, 이때 거실에서 가족들이랑 VOD로 이 영화를 봤었지. 검객을 볼까 고민하다가 가볍고 신나는 거 보고 싶어서 선택했었어. 평점도 좋았고. 13,000원으로 비싼 가격이었으니 다들 집중해서 보기로 했었는데. 하지만 토익은 무슨 갑자기 기업 비리가 나와서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에 다들 당황했었지….’


날짜가 적힌 만년형 다이어리를 하나 사서, 구체적인 일과를 적진 않더라도 본 영화나 드라마, 둘러본 전시회가 있다면 제목만이라도 간단하게 적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이 지난 후 읽었을 때 생각보다는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맛볼 수 있다.

 

 


티켓북: 전시회, 영화, 뮤지컬 등의 티켓을 수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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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티켓을 모아는 놨지만 티켓북의 필요성을 느낀 지는 얼마 안 됐다. 안 그래도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는 문화생활에서 티켓은 그날을 추억하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된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예쁜 틴케이스에 모아놨는데, 티켓 하나 찾으려면 전부 꺼내 살펴 봐야했다. 날짜에 맞게 한 눈에 보면 좋겠다 싶어 티켓북을 찾게 됐다.


티켓북을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까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되겠다. 나는 텐바이텐에서 비온뒤(Be on :D) 티켓북을 샀다. 한 페이지에 위아래로 두 개씩 들어가고, 옆에 별점과 함께 짧은 감상평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접착식이 아니라 언제든 넣었다 뺐다 정리가 가능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양한 디자인과 종류가 있으니 천천히 비교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것을 사면 된다.


물론 옆에 평점과 함께 자신의 감상을 두어 줄이라도 짧게 적으면 좋겠지만, 나는 우선 티켓을 날짜별로 꽂아놔 사진 앨범처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 가끔 티켓북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티켓이 없었으면 아마 잊었을 날들을, 내가 직접 향유한 문화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 좋다.


내가 티켓북에 꽂은 티켓의 종류는 다양하다. 요새는 영수증처럼 나와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존재에 의의를 두는 영화표, 전시회, 뮤지컬, 비행기 표, 놀이공원의 코끼리 열차 탑승권, 미술관, 음악회, 박물관, 고궁 입장권, 가요무대 입장권까지…. 티켓이기만 하면 일단 넣는다. 분명 다녀왔는데 티켓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메모지에 손으로 그려 넣기도 한다.


쓰는 게 귀찮다면, 나가서 문화를 즐기고 온 뒤 따라오는 티켓을 버리지 말고 모아놓기라도 하는 건 어떨까. 나중에 보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스크랩북: 집에서 본 영화, 드라마를 직접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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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스트리밍의 시대다. 넷플릭스와 왓챠를 필두로 온갖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고,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보다 집에서 보는 영화의 수가 더 많다. 그런데 이렇게 본 영화를 어디에 기록하기가 애매한 거다. 티켓으로 만들어 티켓북에 보관하자니 양이 너무 많아 티켓북이 아깝고, 그냥 일기에 쓰고 말기에는 양이 꽤 된다.


그래서 나는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예쁜 메모지에 집에서 본 영화를 기록해 나만의 티켓을 만든 다음, 그걸 스크랩북에 붙이고 간단하게 꾸몄다. 영화에 맞는 스티커가 있다면 오려 붙이고, 없다면 집에 사진 인화기를 이용해 간단하게 출력하기도 했다. 이도 저도 귀찮다면 그냥 티켓만 붙이고 끝내는 방법도 있다.


영화의 제목, 장르, 러닝타임, 별점, 감독, 출연진, 별점, 간단한 평가를 적으면 별 건 아니지만 뿌듯하다. 특히 출연한 배우를 적다 보면 영화를 보면서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클루리스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앤트맨이었다니! 페어런트 트랩에 나온 쌍둥이가 사실은 한 명이고 그게 퀸카로 살아남는 법 여자주인공이었다니! 만약 출연배우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사실이다.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집중해서 향유했던 문화마저 전부 잊히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조금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어떨까. 꼭 나처럼 여러 개로 나눠 이것저것 할 필요도 없다. 간단하게 공책 하나에 티켓을 붙이고 연필로 적기만 해도 된다.


글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면 오늘부터라도 시작하는 건 어떨까. 당신이 가장 최근에 향유한 문화는 무엇인가?

 

 

 

에디터 안우빈.jpg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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