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라스트 콜이 울리면 [도서]

글 입력 2020.12.0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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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의 작가 이시다 이라는 일곱 개의 단편 속에서 벼랑 끝에 선 인간을 어둡고 냉혹하게 그렸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했거나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중 「라스트 콜」은 텔레폰 클럽을 배경으로 자아를 상실한 메구미와 윤리 의식이 부족한 카즈유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구미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부터 성매매를 시작했다. ‘통화만 했는데도 용돈을 주는 아저씨’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메구미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성매매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였다.

 

메구미와 마찬가지로 실제 미성년 혹은 20대 초반의 성매매 여성(이하 성 노동자로 지칭)들은 적확한 인지와 자의로 성매매를 시작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경우 포주가 연인을 가장해 접근한 뒤 폭력과 협박으로 성 노동을 강요한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몸이 뚱뚱했어요. 별명이 지방질이었을 정도니까요. 놀림을 많이 받았죠. 지방질, 이 리 좀 와봐, 하고. (중략) 등을 돌리고 있었더니 뾰족한 캠퍼스하고 연필 깎는 칼이 막 날아왔어요. 등에 하 나, 어깨에 둘, 목과 머리에 셋. 인간 다트 놀이를 한 거죠.”

“섹스라면 난 괜찮아요. 그놈은 나를 때렸어요. 시커먼 주먹으로 온몸을 때리는 거예요. 눈, 코, 입, 가슴, 배, 거기, 부드럽고 젖은 부분을 때려야 하는 변태였던 거죠. 그게 서지 않아서 섹스는 못 하는 것 같았어요.”
 

 

메구미에게 성매매는 괴롭힘보다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하기 싫었던 이상한 남자들은 있었다. 메구미의 이야기에는 정말 괴상하고 역겨운 취향의 손님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입에 방뇨를 요구하거나 야외에서의 섹스를 요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둥 남자들은 취향을 빌미로 메구미의 인권을 유린한다.

 

성 노동자와 구매자 사이의 권력 관계는 뚜렷하다. 신고가 어려운 성매매 환경의 특성상 그곳은 무법지대와 다름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최약자는 당연히 성 노동자인 여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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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여성의 자유의지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선택한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성매매는 사기, 협박, 폭력, 강간 등에 의해 시작한다.

 

미디어 속에서 대상화된 ‘텐프로 언니’의 화려한 모습과 달리 성이 아닌 인권 그 자체를 사고파는 성 노동자의 현실은 초라하다. 결국 자유의지 여부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이러한 성매매 구조, 특히 포주(성 판매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성 노동 담론에서 성매매 여성을 성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가시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버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 ‘예쁜 얼굴을 권력으로 돈을 버는 여성’으로 변화하고 그렇게 성매매 문제에 있어 절대 악은 성 노동자가 된다. 이와 함께 미디어는 성매매 여성들의 사치스럽고 화려한 모습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혐오를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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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의 공급과 수요에 있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비유는 명백하게 틀린 비유다. 성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 죄는 인권을 착취하는 성 구매자에게 향해야 마땅하다.

 

특히 메구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화가 제대로 된 성인은 미성년인 메구미가 사랑을 갈구해도 성적으로 착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성인이 사회에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도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성 구매자들은 ‘어쩔 수 없는 욕구’를 방패 삼아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골적으로 성 노동자인 여성에게만 향하는 화살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굴절 혐오를 보여주고 있다.

 

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라스트 콜」은 메구미 인생의 마지막 콜이기도 하지만 그가 사회에 울리는 마지막 경고이기도 하다.

 

혐오 속에 가려진 약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우리는 더 이상 ‘메구미들’의 라스트 콜을 놓쳐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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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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