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관심이 필요한 때 -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

글 입력 2020.12.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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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성냥팔이 소녀 동화는 당시 유치원생이던 내게는 가히 충격적인 동화였다. 늘 행복한 결말을 맞던 책들만 읽다 난생 처음 읽어본 비극적 결말의 동화였으니까. 동화의 끝에는 한 겨울 성냥을 태우다 결국 얼어 죽은 소녀와 그런 소녀를 보고 성냥을 사주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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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내가 자라면서 느낀 사실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는 동화 속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뉴스와 신문, 인터넷으로 소외된 이웃들의 소식이 들려 왔고 그저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물론 사회 속 온정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내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한 이 시기 속에서 내가 정말로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주는 책이었다.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머릿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을 연다.

 

 

소외란 늘 이런 식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처참한 속살이 드러났을 즈음 그저 양심의 가책으로 끝나는 …. 그래서 근본적 해결 없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더불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동반한다고 덧붙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불편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도 말한다. 나는 이것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배려가 아닌 의무라 생각한다. 얼마전 논란이 된 시각장애인 안내견 거부 문제가 떠올랐다.

 

논란이 된 기업 측에서는 사과문을 냈다. 그때 본 사과문의 단어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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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주님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며…
 

 

안내견 출입 거부에 관한 논란은 배려차원의 문제가 아닌 의무이자 준법행위를 지키지 못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안내견과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여실히 보이는 문장이었다.

 

안내견 거부 문제는 이제야 수면위로 올라온 사실이었고 원래는 늘상 발생해 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은 개인의 선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관심이 아니어야만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향한 관심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배려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이러한 문제를 야기시킨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도 됐다.

 

사실은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관심은 의무여야만 한다라고 종종 그리고 추상적으로 혼자 생각해왔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말을 입밖으로 꺼냈을 때 그리고 누군가는 왜 그것이 의무냐 내게 물을 때, 나 또한 정확하게 이유를 덧붙여가며 반박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자신 있게 근거를 설명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주장이었다.

 

이 책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는 여기서 또 한번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준다. 아래와 같은 저자의 말 덕분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던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완전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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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연민의 감정에서 출발된다. 연민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사람 사는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보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연민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권의 문제이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노동권 같은 기본 인권에 속하는 문제이다.

 

노숙인의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인권의 문제는 개인의 느낌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

 

 

저자의 말처럼 노숙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문제는 동정의 시선이 아닌 보편적 기본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지만, 환경에 따라서 누구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인권 문제, 나아가 저들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책은 노숙자, 의료 빈민, 도시 빈민, 이주 노동자 그리고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차별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그 이야기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살겠다는 모토를 지니고 의료활동을 펼쳐온 저자의 행보를 함께 느낄 수 있다.

 

*

 

그 행보에는 저자말고도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개신교 전도사이면서 사회복지사이자, 쪽방 상담소에서 팀장을 맡고있다는 저자의 지인 이야기가 나에겐 특별히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저자가 그 지인과 함께 부산역을 둘러보게 된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 또한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한 때 일이 생겨 부산역을 자주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역 앞 노숙자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들른 부산역에서의 노숙인들은 마음을 더 참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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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한채 쓰레기통 속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뒤적이고 있거나 쌀쌀한 날씨 속 계단 뒤에 웅크려 목도리로 코와 입을 막은 노숙인들을 볼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사태가 지속되면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저자의 지인이 하시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부산역 근처에서 쪽잠을 자는 노숙자들이 안녕하신지 확인하는 것이라 했다. 저자 또한 그 날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 우리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내가 부산역 앞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채 서성이는 노숙자들을 볼 때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의 감정을 연민과 동정이라고만 치부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나름의 생각만을 가진 채 무언의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처하는 상황이 피부로 와닿자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이후에도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끝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

 

그렇지만 단지 무력감, 안타까움, 동정, 연민에 그치는 수준에서 책 읽기를 끝내고 싶지는 않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같다고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연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사랑을 실천하자는 말이 그 뜻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마무리하고 먼저 노숙인 마스크 기부사업과 관련해 알아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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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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