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주 보편적인 노인 이야기 [영화]

내가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영화 <실버택배>에 대해
글 입력 2020.12.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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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오전, 난 지하철에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역 이름을 알리는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노란 꽃다발을 든 할아버지가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신문지로 돌돌 감싼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문득 꽃다발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나는 혼자 상상의 나무를 무럭무럭 키웠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신 걸까?’, ‘아니면 그냥 평범한 날인데 할머니분께 선물을 하시려는 걸까?’

 

그렇게 꽃을 힐끔힐끔 보며 상상의 가지를 뻗치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리던 차였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느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묻기도 전에 꽃다발의 행선지를 밝히셨다.

 

할아버지는 일하는 중이셨다. 꽃다발은 배달 물품이었다. 지하철로 배달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는 소소하지만 짭짭하게 돈을 번다고 하셨다. 집에 있으면 할머니의 눈칫밥을 먹으니 차라리 아침 일찍 나와 일이라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도 배달이 몇 개가 더 있다고 바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대화 상대가 필요하셨는지, 내게 한참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다.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고 이 상황을 기록한 메모조차 없다. 하지만 내 기억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나 보다.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단편영화 <실버택배>를 보니 불쑥 그 기억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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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정숙(변중희)은 지하철 택배원이다. 지하철에 올라탄 정숙의 손엔 꽃다발이 들려 있다. 자신의 것도, 지인의 것도 아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것인 꽃다발 말이다. 정숙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묻고, 상대방은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길을 헤매고 있는 정숙은 골목에서 한 번 더 전화를 건다. 저번 전화 상대와는 목소리가 다르다. 정숙은 다시 어떻게 그곳에 가는지 묻고, 상대는 앙칼지게 누구시냐고, 누가 보냈냐고 따져 묻는다. 별 소득 없는 날 선 대화가 오가고 정숙은 드디어 배달 장소에 도착한다. 유쾌하지 않은 손이 꽃다발을 낚아채고 대문이 닫힌다.

 

이번에는 정숙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고객님 화내시고 난리 났어요. 깜짝 이벤트였는데 선물 받는 사람한테 연락하면 어떡해요? 아무리 길을 몰라도 그렇지…”

 

정숙의 표정엔 실수해서 미안한 기색도, 꾸중을 들어 불편한 기색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겪어 온 일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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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할아버지도 그랬다. 할머니의 잔소리 이야기를 하시며 쓴웃음을 짓기도 하셨지만, 정작 말투와 표정엔 유쾌함도 불쾌함도 들어있지 않았다.

 

정숙은 다시 배달 앱을 열어 업무가 배정되길 기다린다. 정숙은 배달 내용이 적힌 작은 노트를 보며 새로운 전화를 받는다. 회사를 통한 업무가 아니다. 상대방은 높은 금액을 부르며 배달을 부탁한다. 결국 정숙은 지하철 보관함으로 대포통장을 운반한다. 그는 잠시 보관함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정숙. 집에는 난데없이 딸이 있다. 정숙은 딸에게 “왜 너희 집 말고 여기 있냐” 묻는다. 화가 난 말투는 아니고, 불편함과 미안함에 귀찮음이라는 가면을 씌운 말투다. 딸은 집안일을 하며 냄새난다며 환기 좀 자주 시키라고 한다. 정숙은 냄새는 무슨 냄새냐며 하던 거 그만하고 너희 집에나 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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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추억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와 같이 노는 시간이 많았다. 언젠가 할머니는 목련 나무 밑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 맡은 편에 있는 아주 큰 목련 나무였다. 유치원이 끝나면 할머니 손을 잡고 바닥에 떨어진 흰 목련 꽃잎을 밟아 갈색으로 만들며 할머니 집 쪽으로 걸었다.

 

기억에는 꽃향기보다 할머니의 향기가 담겨있다. 궂은일을 많이 한 할머니 손은 거칠고 두꺼웠고, 할머니에게서는 푸근하고도 쾨쾨한 향이 났다. 할머니 집 곳곳에도 그 향이 짙게 배 있었다.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향이었다. 그 향에 둘러싸인 나는 텔레비전을 보던 할머니를 졸라 손 놀이를 했다. 잼잼이나 곤지곤지, ‘계수나무 토끼 한 마리’, 화투 같은 그런 손 놀이.

 

“여보세요” 전화를 받는 정숙의 목소리는 품위 있게 가다듬어졌다. 경찰서에 진술하러 가서 대답하는 목소리도 그렇다. “없어요.” 정숙은 경찰의 모든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답한다. 회사를 통하지 않고 따로 배달 일을 받은 적도 없고, 대포통장을 운반한 일도 없고, 일하며 법을 위반한 적도 없고.

 

올해 2월까지 살았던 방의 주인 할머니가 생각났다. 셰어하우스도 아니고 하숙도 아닌 애매한 공간. 그곳의 할머니는 언제나 환하고 인자한 웃음으로 날 맞아 주셨다. 가끔 일이 생겨 전화를 걸면, 주인 할머니는 정숙과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누군지 몰라 경계를 하면서도 지적 연륜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인자하게 웃는 얼굴과 그 목소리는 사뭇 달랐다.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지금껏 단단히 다진 내공이 들어있었다. 매일 배달되는 신문과 저녁 뉴스를 챙겨 보시며 쌓은 내공인 것도 같았다. 사건 사고가 가득한 뉴스를 보는 할머니의 현실도 ‘사건 사고가 가득한 곳’이었다. 할머니는 그 시점에서 도무지 일어날 가능성 없는 사고를 걱정하기도 하셨다. 단단함 뒤엔 연약함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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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은 공터에서 불덩이를 보고 있다. 불은 더 이상 불쏘시개가 필요 없다는 듯 타오르고 있다. 정숙은 손에 쥔 종이를 본다. 자신이 따로 한 거래를 모아 놓은 종이다. 범법 행위의 증거물이 자신의 손에 있다. 하지만 이내 종이는 정숙의 손을 떠났고 불 속에 들어가 활활 타오른다. 생명력이 강하고 억센 눈동자가 그 불을 바라본다.

 

조금 사납고 억센 눈빛. 현재 살고 있는 방의 주인집 할머니 눈빛이 떠올랐다. 아빠 말로는 주인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와 동갑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보다 더 정정한 듯 보였고, 어떤 기운으로 가득 찬 듯했다. 욕심인 것도 같았다.

 

그 눈빛과의 인연은 올해 2월에 계약과 함께 시작됐다. 계약할 때만 해도 멀쩡히 보이던 방인데 입주할 땐 여러 생채기가 눈에 띄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잘 보이는 곳에 찢겨 나간 장판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이 정도면 직접 ‘땜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입주 날이 다가오고 장판은 변한 게 없자, 나는 재차 장판에 대해 물었다. 주인 할머니는 곧바로 연장을 들고 와서 색이 다른 장판을 어설프게 붙여 주셨다. 도배는 해줬어도 장판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선연했다. 결국 장판은 직접 사람을 불러 새로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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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택배>는 정숙이 혜택이 좋은 상조보험을 드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정숙의 성격이 드러난다. 다만 상조보험은 혜택이 좋은 만큼 위험도 크다. 심지어 영화는 보험이 ‘사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정숙은 힘들게 조금씩 모은 돈을 한 번에 다 날릴 것이다.

 

허무하고도 안타깝다. 영화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2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문제점부터 해결법까지 담아내기는 불가능하니까. 다만 내가 만났던 것처럼 익숙하고도 보편적인 노인의 모습을 소환한다. 진화하는 기술과 새로운 꾀임이 어르신의 연륜을 이기는 순간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달관한 것처럼 보이며, 쾨쾨한 냄새가 나며, 단단하고도 연약하며, 그간 억센 생명력을 간직해 온 노인. 모두가 살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특히 노인들이 딛고 설 자리가 더 남아있지 않은 것도 같다. 빠르게 이동하는 세상에 자리를 빼앗기고, 현실의 그림자에 짓눌려 존재가 희미해지고.

 

하지만 내게 너무 친숙한 그들이 이 영화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마지막은 비극이 아니기를 바란다. 세상에 대항하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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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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