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야책당 [도서]

책방을 위한, 책방에 의한, 책방의 이야기. 조병국, <아폴로 책방>
글 입력 2020.12.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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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야식당> 중


 

『아폴로 책방』을 펴고 몇 장 읽기도 전에 유명한 일본의 만화, 『심야식당』 시리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밤마다 식당에 와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심야식당의 인물들처럼 이 소설에도 깊은 과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주야로 책방을 방문한다.

 

책방 주인인 ‘나’의 시선 속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사실만 나열하자면 꽤 자극적이다. 시인이 되고 싶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다니다가 같은 성별에 사랑을 느낌을 깨닫고 결국 중이 되는 무진의 이야기라든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며 절망감에 아내를 때리고 결국은 떠나게 한 한수의 이야기나, 아버지의 절도 사실을 알고 배신감과 복수심에 책방의 책을 한 권씩 훔쳐가는 소녀 지연의 이야기 등 그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사실들로만 나열한다면 아침드라마 혹은 9시 뉴스에나 어울릴 법하다.
 
그러나 큰 거부감 없이 우리가 짧은 열아홉 편의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서술자인 책방 주인의 담담한 말투 덕분일 것이다. 그 문체 덕분에 독자인 우리는 등장인물들을 비난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따스하게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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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_'퇴사준비생의 여행'


 

‘책방’이라는 장소 자체도 그 많은 인물들의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곳이다.

 

책방은 집이 아니다. 그곳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의 대합실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이 머무르다 결국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야 하는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수많은 삶들이 스쳐가는 곳이기에 좀 더 여유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냥 책방도 아닌 ‘헌책’방이었기에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련되거나 정제된 것이 아닌 조금은 아프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들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오늘날 작은 남의 이야기에도 날카롭게 비난하고 판단해버리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민들이 머무르는 ‘꽉 찬 집’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아폴로 책방』은 그들에게 이런 ‘헌책방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저마다의 아픈 과거를 가진 이들에게 책방 주인은 마치 약처럼 책을 처방해준다. 심야식당의 식당 주인이 지친 손님들에게 그들의 처지에 맞는 따스한 음식을 내어 놓듯. 짧은 하나의 이야기 끝에 처방(?)되어 있는 책 한 권을 보자면 꼭 예술적인 마음의 약국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책방에 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들어와 처방된 책 한 권씩을 들고 나선다.
 
이후에 잘 살아가는 이들도, 또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지만 거기까진 약국의 몫이 아닐 터. 다만 그들이 책방에 와서 위로받았음은 틀림없다. ‘사춘기’ 편의 매번 책을 훔쳐가던 지연이, 후에는 오백 원 동전 두 개를 내며 <아버지의 뒷모습>을 사 가던 모습에서 그들이 위안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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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이랄까? 사진 출처는 @redrosebean 인스타그램
 
 
여기까지가 손님들의 이야기라면, 이제부턴 책방 주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작품의 초중반엔 잦은 편두통을 앓고 어쩌다 책방 주인을 맡게 되었단 사실 밖엔 그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심야식당의 마스터 못지않게 미스터리한 인물.
 
그나마 그의 이야기나 문체를 보고 그가 점잖고 섬세하고 약간은 유약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책방 주인과 더불어 ‘다림’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하게 되는데 작품의 중후반이 다 지나도록 어떤 설명도 없어 그 혹은 그녀가 누굴까 하는 의문이 내내 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단편 ‘강수의 사랑’에서야 겨우 베일을 벗는다. 다림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책방을 ‘나’에게 맡기고 떠났고, 다림이 떠난 이유는 아직 모른다는 것. 뭐야? 책이 무슨 이렇게 끝나? 하는 마음에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 자신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상호 이태준 선생의 수필집 <무서록> 초판본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책에선 ’나‘에게 아폴로 책방을 맡기고 사라진 다림이다. 사실 이 단편집은 아직 완결 짓지 못한 장편의 번외 편인 셈이다.’
 
소소한 사색이나 일상을 적어 내려가며 전달하려는 의미나 주제에 치중하지 않으려 한 이태준의 <무서록>. 그 작품이 이 소설의 모티브였다니 그제야 다림과 ‘나’의 모호성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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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의 <무서록>.
책 제목 무서록(無書錄)은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말하는 수필에 해당하는 글이다. (설명 출처_YES24)

 
『아폴로 책방』을 읽는 내내 밤과 낮을 책방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내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방에서의 시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의 삶의 모습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잔뜩 날 서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선물해주는 책. 또 미쳐 풀리지 않은 다림의 이야기를 핑계 삼아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에 가서 직접 이야기들과 마주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도 이 책이 남긴 여운이자 묘미가 아닐까.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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