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설(說)이 열(悅) 해야 한다. -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어야 할까

말은 듣는 상대가 기뻐야 한다. (說),(悅)
글 입력 2020.11.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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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촘촘히 둘려 쌓여져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 그래서 꽉 막힌 답답함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도, 행복감도 타인에 의해 감정이 좌지우지된다.

 

그러나, 수없이 요동치는 이 감정은 큰 사건과 사고에 의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경우보다 사소한 ‘말’한마디와 ‘단어’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담론>에서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귀곡자의 말 중 “설(設)이 열(悅)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풀어보면 말은 하는 사람이 후련하게, 속 시원하게 내뱉는 것이 아니라 듣는 상대가 기뻐야 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말은 의미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듣는 사람이 찝찝하고 기분이 상한다면 말의 뜻은 이미 물 건너갔고, 감정에 대한 불화는 물에 서서히 떠올라 계속 쳐다보게 된다. 바로 이 시점이 인간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바의 의도를 잘 전달하고 싶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화 활동을 제대로 시작한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어렸을 때는 친구와 사이가 잠깐 틀어져도 금방 다시 붙게 되지만, 머리가 크고 나면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여지기 굉장히 어렵고 까다롭다.”

 

그래서 나는 꽤나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말의 톤은 어느 정도가 듣기 적절한지, 말의 수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길이는 어디일지, 상대에 대한 리액션의 진심을 전달할 때, 동반되는 비언어적인 행동은 어떤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촉을 뾰족하게 세웠다. 수많은 시간을 내가 내뱉는 말, 행동에 각을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익숙했다.

 

그러나 오랜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 앞에서도 꽉 막힌 예의와 존중을 극적이게 지키려다 보니, 마음의 무게가 점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저체중이었다. 혹여나 내가 무심코 한 말과 행동에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기 싫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만들었다고 자책할 게 싫어서 늘 긴장을 하며 상대를 대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인간다움’은 사라지고 마치 로봇인 것 마냥 인위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야 했다.

 

내 안에는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라, 이 막힌 에너지를 풀리게 하는 활동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니 나만의 의미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오로지 ‘나’로써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이 공간은 장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걸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 끝에,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나’에 대한 정답을 하나씩 풀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조금 벗어나는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 성향을 조금 더, 아니 많이. 아주 많이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나는 정말 단단한 사람이었고, 왜 그동안 내 입으로 “나는 멘탈이 약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될 정도로 스트레스를 적당히 즐기면서 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주변 사람들 말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성향이었으며, 내가 독기를 품고 잘 해내고 싶다는 무언가가 있으면 빠져드는 사람이었으며,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그 일과 관련된 일을 빨리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꽤나,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좋아했으며 활자나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무언가를 습득하는 걸 좋아했고, 부모님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을 정말 사랑하고, 별 이벤트 없이 잔잔히 하루가 지나가는 삶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적당한 신앙심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에 안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 일기, 2020년 11월 25일

 

 

일기를 쓰다 보니, 수녀님이 72p에서 “인간다움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비롯되며 자신이 머무는 장소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한 말씀이 한 번 더 깊이 각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관계에 힘을 쓰는 시간과 힘을 조금은 내려놓고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과 힘을 나의 공간을 찾는 것에 투자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평생을 관계 속에서 서툴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고, 괜찮아질 사람들이다. 로봇이 완벽한 이유는 두려움을 느끼고 흥분하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서두르지도 않고 페이스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에 대한 감정적인 ‘사랑’을 품고 살아가기에, 평생을 완벽하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나이 들수록 어렵고, 더디고, 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의 ‘공간’ ‘장소’를 찾아서 쉬어가는 시간을 필수로 만들어야 하며, 또다시 관계 속에 헤엄치며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부딪힐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을 머물지 않고,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감정이 있기에 타인에게 실망을 주고, 실망을 받고. 또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고. 그래서 또 타인으로 인해 위로를 받고 위로를 주면서 공생한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관계와 더불어 나를 지킬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을 찬찬히 탐색해 보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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