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마음의 약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글 입력 2020.11.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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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나에게 와서 나를 살린 이 시들에게 머리 조아려 간절히 주문합니다. 그들에게 가서 그들도 살려달라고.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책머리에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걸까.


길게는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하지만 짧으면 세 줄 만에 끝나는 문학작품. 중고등학생 시절 배운 시는 행을 해체하듯 분석한 내용이었고 수능에서 국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난 시를 이해하는 데 유독 약한 학생이었다.


시를 싫어한 건 아니다. 시인들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문맥의 빈칸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나의 역량이 부족할 뿐이다. 시는 언제나 나에게 신비로운 작품이었다. 완벽히 이해하는 건 어려워도 가끔 불연속적인 감정을 뛰어넘어 시인의 마음이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주 드물게 연속적이지 않은 시의 흐름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생각의 여백과 맞을 때, 시는 나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준다. 그 시들은 평소에는 미약하게 내 마음에 머물다가 삶 속에서 무너지려는 순간 다시 힘을 발휘한다.

 

쓰러져 있지 말라고 다시 일어나라고 다시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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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는 나태주 시인이 뽑은 국내 명시 114편을 엮은 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엮은이로 소개되는 나태주 시인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꽃>이 선정될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부끄럽지만 시 <꽃>을 처음 접했을 때, 20대 젊은 시인의 작품인 줄 알았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이 가지런히 제자리를 찾은 듯 시가 어렵지 않게 읽혀서, 나와 비슷한 시기를 함께 자라온 20대 시인의 작품이라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첫인상이 된 그 기억 이후 이번에는 그분이 좋아했던 시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표지를 넘기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시처럼 제목이 붙어있는데 각 문장을 한 장을 읽는 동안 되새겨보면, 같은 정서를 이루는 시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마다 다른 정서를 다루고 있지만 모든 시는 하나의 공통적인 마음, 다시 일어나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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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아끼는 명시 114편을 그냥 엮지만은 않았다. 하나의 시에 하나의 소감, 전하지 못한 마음을 덧붙여 엮었고 시인이 살아온 인생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앞서 나는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고 소개했다. 나태주 시인의 새로운 시선을 알고 싶어 펼쳐 든 책이었지만, 막상 시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만약 나처럼 시 문해력이 자신이 없다면 시가 끝난 후에 보이는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신) 나태주 시인의 짧은 글이 반가울 것이다. 시인은 현재 교직 생활을 마쳤지만, 책 속에서나마 부족한 학생의 보충학습을 도와주는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


나태주 시인의 생각을 따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같은 시를 읽은 다른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시의 어떤 부분이 위로가 되었고 감동이 되었는지를 다시 보게 하고, 그렇게 조금씩 시를 보는 나만의 시선이 생겨난다. 시 위에서 흔들리던 눈동자는 나태주 시인 글의 안내를 받아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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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시 한 편이 구성되는 방식이 '제목, 본문, 시인' 순이라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제목, 시인, 본문'과는 다른 형식이었다.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윤동주, 이육사, 김소월 시인처럼 그분들의 작품을 다 알지는 못해도 이름 석 자는 아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본능처럼 아는 이름이 나오면 더 주목해서 읽게 된다.


시 구성 방식이 달라지니 시인의 인지도보다 제목과 본문 내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인을 모른 채 읽어내려간 시들은 조용히 내 마음을 훔쳤다. 내가 모르는 명시의 주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교과서로 배운 시인들만 알고 있던 나는 어느새 홀로 반성하고 있었다.

 

새 책을 읽을 때면 필사 노트를 꺼내 들어 내가 닮고 싶은 문장들을 소중히 담고 있다. 이번 책을 다 필사하고 나면 아무래도 새 노트를 사야겠다. 아름다운 시와 사랑을 꾹꾹 눌러 적은 나태주 시인의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참 좋은 서정, 좋은 문장은 사람을 울리고 사람 마음을 멀리,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나는 그걸 믿는다. 처음부터 믿고 지금도 믿는다.

- p.151(나태주, <시월>(황동규) 중에서)


이 글은 빼어난 산문시다. 결코, 시인이 감정 과잉을 하지 않았는데도 글을 읽고 나면 저절로 감정 과잉이 된다. 눈물이 핑 돈다.

- p.169(나태주, <길>(김기림) 중에서)


좋은 시는 모름지기 좋은 영혼에서 나온 문장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에게 통한다. 구차한 설명 없이, 징검다리 없이 곧바로 가슴과 가슴을 연결한다.

- p.249(나태주, <저녁에>(김광섭) 중에서)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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