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튀긴 토마토가 만들어 낸 연대감 -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영화]

타고 있는 오븐에서 친구를 구한 2명의 여인
글 입력 2020.11.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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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오는 밤에는 라디오를 꼭 챙겨듣는다. 그날 DJ는 한 영화평론가가 인터뷰를 통해 했던 답변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인터뷰어는 영화평론가에게 “어떤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영화,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영화, 신선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가 아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주인공들의 삶이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큰 공감을 했다. 나 또한 안부가 궁금해지는 4명의 여성들이 있었고, 그 여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짙은 잔상으로 남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다시 꺼내 재 감상했다.

 

 

 

잇지와 루스 그리고 니니와 애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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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고 판단될 수 있는 50이라는 나이로 살아가는 애블린은, 삶을 건설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인간에게 무기력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애블린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관리가 안 되어 정리되지 못한 살과 스포츠에만 푹 빠져 있는 그의 남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에 생활하는 남편의 외숙모를 위해 성심성의껏 돌보려고 하지만 이것 또한 애블린의 맘처럼 쉽게 따라와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드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외숙모의 얼굴을 다시 보러 간 요양병원에서 또 찬밥 신세를 당하고 터덜터덜 나오는 애블린에게 니니라는 할머니가 다가온다. 니니는 애블린에게 <휘슬 스탑 카페>에서 튀긴 토마토를 팔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갔던 잇지와 루스의 우정 이야기를 들려준다.

 

 

 

Fried Green Tomato : 여성들의 연대


 

잇지는 오랜만에 결혼한 루스의 집에 찾아간다. 루스는 현관에서 잇지를 반겨주지만, 오른쪽 얼굴을 보지 못하게 사선으로 서서 대화를 한다. 루스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치 빠른 잇지는 루스의 오른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모습을 포착한다.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잇지의 친오빠가 너무도 사랑했던 루스가 결혼 생활을 하며 맞고 사는 모습을 보자 잇지는 곧바로 책임감을 가지고 루스를 구출한다.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에, 왈가닥 거리며 다니는 잇지 였지만, 루스를 알뜰살뜰하게 챙기며, 함께 <휘슬 스탑 카페>라는 가게를 차리게 된다. 주메뉴로 튀긴 토마토를 내세우며 도움이 필요한 동네 사람들과 흑인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주인으로써 똑똑히 제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흑인을 아무런 차별 없이 챙겨주는 잇지와 루스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20-30년에는 백인 우월주의가 더 대두되어, 흑인들을 차별하고 막 대하는 세기가 심각하게 강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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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 스탑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잇지와 루스

 

 

주변으로부터 눈총을 사지만, 이 두 여성은 눈치 보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흑인들의 보호처가 되어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큰 사건이 발생된다. 루스의 폭력적인 남편 프랭크가 아이를 되찾기 위해 집에 몰래 침입하는 도중, 가정부 여성 흑인과 실랑이가 벌어져 프랭크가 사망하게 된다.

 

그 후 5년이 지나 프랭크를 죽인 범인이 잇지와 가정부 남성 흑인으로 지목이 되어, 이 둘은 법정에 서게 된다. 범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만 보고 평한 어리석은 생각들이 모여 어쩔 수 없이 조사를 받게 된다.

 

늘 단정한 옷차림에 얌전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평판 받으며 살았던 루스에게 판사는 이렇게 물어본다.

 

 

“도대체 왜 그날 잇지를 따라갔습니까?” 그러자 루스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저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이 바로 이곳 1:27:24초에 나왔다.

 

애블린과 니니, 잇지와 루스의 우정과 여성의 삶을 액자형 구성으로 연출하며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각자의 친구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할머니 니니는 애블린에게 나긋한 대화로 추억 이야기를, 잇지는 왈가닥한 개성적인 성격으로 루스의 손을 이끌며 자신의 친구들이 쉴 수 있는 보호처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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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니의 이야기에 웃음 꽃이 핀 애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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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니에게 직접 튀긴 토마토를 선물하는 애블린

 

 

잇지와 니니가 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검은 먹물로 뒤집어 쓰여 있는 친구의 옷을 벗도록 도와주고 정체성에 알맞은 옷으로 갈아입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함께 힘든 시기를 같이 극복해내는 사부의 역할을 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수천 가지의 성격이 존재하는데, 크게는 일 방향과 쌍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짧은 인연과, 긴 끈으로 연결되는 인연 등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관계의 생김새와 향 그리고 색의 스펙트럼은 참 무수하게 만들어진다.

 

남들이 멀리서 바라봤을 때, ‘둘의 색깔이 안 맞아 보이는데..?’라는 친구 사이를 한 번씩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취향과 나이가 대표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취향이 너무 달라 보이는 잇지와 루스, 30년의 나이 차이가 훌쩍 넘는 니니와 애블린을 친구로 그려 넣으며 건강한 관계의 형태를 정의 내릴 수 있는 해답을 찾아준다. 이처럼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관계, 즉 누구도 떼어낼 수 없는 끈끈한 우정 사이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과 동경이 있어야 한다.

 

이끌린다는 것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 흐르는 기류와 호흡이 같은 템포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차분하고 활동적인 사람은 성향이 확연히 달라 안 맞을 거라고 보편적으로 생각하지만 사람과 사람에게 맞는 분위기와 편안함은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다. 자신에게 들리는 몸의 소리를 잘 들은 루스는 항상 당당한 잇지 옆에 있으며, 위안을 받고 긍정적인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자존감이 한없이 낮았던 애블린은 니니가 풀어내는 과거 추억 이야기를 들으며 삶에 대한 위로를 받고, 행복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잇지와 니니는 가뭄으로 산산 조각나고 건조해진 친구들의 삶에 급하게 물을 드리 붓지 않고, 적당히 그리고 꾸준히 땅을 관리해 주었다. 내면에서 곪아가고 있던 근본의 문제를 하루아침에 드러내도록 하지 않고, 천천히 친구의 삶에 스며가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말해주고 있다. 그러자 시간이 점차 흘러 애블린과 루스의 땅은 수분으로 가득해지고 단단해져 그 땅에서 온전히 혼자 설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이 여운을 그대로 녹여 내리고 싶어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떠오르는 친구가 생각나며, 그 친구에게 ‘어떤 역할의 친구일까?’라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내 친구에게 잇지와 니니같이 안정감을 주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날이 점차 추워지는 11월, 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따뜻한 차와 토마토를 직접 튀겨 먹으며 이 영화를 함께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아무 말 없이 영화 안에 있는 대사를 공유하기만 해도 우정의 연대감은 한층 더 단단해질 것이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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