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떠나온 이유 [여행]

글 입력 2020.11.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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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기말고사가 끝났다. 서둘러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에 한가득 쌓인 짐들을 바라만 봤다. 하필 연말이었고, 온갖 모임에서의 술자리와 송년회를 다니느라 머릿속이 알코올로 꽉 채워졌다. 출발 직전일, 긴 여행을 위한 짐을 다시 챙겼다. 나는 이미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본가로 떠나왔는데, 이번엔 아주 먼 나라로 떠나야 했다.


새벽 다섯 시, 두어 시간을 채 자지 못한 나는 말 그대로 ‘멍’한 상태였다. 비몽사몽 캐리어를 끌고, 목도리를 칭칭 두르던 나에게 까치집이 오십 개는 지은 아빠가 다가왔다. “가자.” 아빠는 늘 졸린 눈을 비비며 나의 비행길에 함께했다. 말없이 캐리어를 옮겨 주었고, 캐리어에 채운 자물쇠가 튼튼한지 꼭 한 번은 확인해야 했고, 평소보다 조심조심 운전해야 했으며, 체크인을 한 후 탑승장에 들어갈 때까지 물끄러미 내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제주도에 가든 여수에 가든, 부산에 가든, 일본에 가든 늘 한결같이 그래야 했다. ‘아빠 머리 이상해,’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그러면, 멋쩍게 허허 웃기만 했다. 다섯 번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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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가족, 그도 아니라면 가족처럼 가까운 친구와 함께였다. 이번엔 달랐다. 같은 학교라는 것 빼고는 접점도 없는 다섯 명의 친구들. 나이도, 사는 곳도, 살아온 결도 다른 사람들과 비행기에 올랐다. 어색함을 없애려 애써 농담을 하고 책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들먹이다 잠에 들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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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기가 파리구나. 그런데 공항은 공사장 같아, 그치.

 

잠이 덜 깬 우리는 횡설수설 첫 감상을 늘여놓으며 캐리어를 직직 끌었다. 남자 일행들은 흩어졌고, 여자인 우리 셋은 같은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스쳐가는 도로는 비슷했지만 겨울 냄새는 달랐다. 조금 더 퀴퀴한 것도 같고, 눅눅한 것도 같고. 지나가는 우리를 붙잡는 것처럼 진득한 것도 같았다.


도착한 지 이틀째가 되어서야 우린 정신을 차렸다. 처음 시차를 겪은 친구는 새벽에 잤다가, 낮에 잤다가, 저녁에 또 잤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잠이 제멋대로 찾아와 힘든 상태였는데, 그날은 꼭 나와야 했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우린 아직 조금 덜 익은 관계였다. 애써 학교 얘기를 주고받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바빴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 낯선 사람이 말을 붙였다. “너 불어 할 줄 알아?”를 영어로 말하던 그는 누가 봐도 수상한 모양새였다. 어제 막 친해진 나의 일행이 내 옷자락 끝을 잡아끌었다. “누나, 가자.” 우린 함께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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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을 처음 본 우리는 무작정 뛰었다. 미쳤나 봐! 같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추운 날, 이렇게 따듯한 빛들을 볼 수 있다니. 왼쪽 너머엔 에펠탑이 있었고, 맞은편엔 개선문이 내뿜는 빛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파리 사이사이에 우리가 있었다. 개선문에서 카운트다운을 한다는 걸 알아차렸고, 무작정 그 빛을 따라 걸어갔다. 이대로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간다고 해도 가능할 것 같았다. 배가 불러서인지, 어제 만난 나의 일행들이 생각보다 든든하고 좋은 사람이어서인지, 파리의 첫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생긴 용기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집에서 보내는 신년 이벤트를 파리 개선문에서 보내다니. 한 시간 반을 걷고 또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 지쳤을 때쯤 카운트가 시작됐다. 우리는 목이 허락한 대로 소리를 질렀다. 정말 행복하겠지, 반가워. 올해는 괜찮겠지? 늘 비는 사람만 있고 들어주는 이는 없는 듯한 소원도 빌었다. 불꽃이 터지는 순간은 아주 느렸지만,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 특유의 화한 냄새와 함께 거리에 있던 이들이 흩어졌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 서로의 축복을 외쳤다. 난생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난 한 달 반을 더 타지에 머물렀다. 첫 삼 주는 친구들과 함께 지냈고, 나머지 삼 주는 혼자 여행했다. 태풍이 온 스페인 거리를 우산도 없이 쏘다녔으며, 레스토랑 서버와 친해져 함께 맥주 몇 잔을 마시기도 했다. 라이언킹 뮤지컬을 보며 주책맞게 훌쩍이는 시간, 대낮부터 포르토 와인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에 돌아오던 순간까지 모두 내 것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나의 마지막 여행일지 모를 유럽 여행이 끝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마스크를 써야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김없이 아빠가 김 서린 안경을 쓱쓱 닦으며 실눈을 뜨고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출국장에서 한달음에 달려가 “아빠!” 하면 언제나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로 “딸!” 하며 팔을 벌린다. 무뚝뚝한 부녀 사이에 포옹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우린 왜 떠나왔을까? 왜 술만 마시면, 새벽 세 시만 되면 “여행 가고 싶어 죽겠어.”를 연발하는 걸까. 그저 돈을 펑펑 쓰고 싶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나의 감정에 따르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싶어질 때 여행을 떠난다.

 

타지에 있으면, 특히 혼자가 되면, 고질적인 외로움과 서먹한 생각들을 떠안게 된다. 한국에 가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엄마랑 영화 보러 가야지. 아빠랑 낚시를 가 보자고 해야지. 몇 년간 안 만났던 친구를 만나야지. 생각의 환기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 새삼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한참 미리 겪어보는 것. 나는 그래서 여행을 한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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