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곳에서 여러 음악을: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공연]

글 입력 2020.11.2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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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클래식은 ‘노동요’였다. 급한 마감이 있을 때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며 다급하게 타자를 치고는 했다. 클래식만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반 가요는 가사가 많아 글을 쓸 때 집중하기 어려웠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았다가는 작업이 끝날 때면 그 노래에 질려 있었다.

 

좋아하는 곡을 알람으로 설정했다가 다시는 듣기 싫었던 것처럼. 나는 클래식 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선호했다. 유독 어떤 선율이 감미롭다는 것보다는 그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들으면 마치 내가 천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감을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아한 감상을 꿈꾸며 야심차게 LP 플레이어를 샀지만, 마감에 시달릴 때 겨우 들을 뿐이다. 누군가 내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 클래식 마니아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난 당장 눈앞의 마감에 집중하여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도 금방 잊었다. 때문에 아무런 일 없이 클래식을 들으면 나는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좋은 곡을 정신없이 흘려들었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이었다.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는 나의 묘한 죄책감을 씻겨 주었다. 애초에 아무런 일 없이 음악 감상만을 위해 클래식을 듣는 것은 손에 꼽히는 일이었다. ‘혹시 모르는 음악이 나오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애초에 예민한 청각은 아닌지라 괜찮았다. 일단 롯데콘서트홀에서 클래식을 듣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30-라메르에릴 스트링스.jpg

 

 

이번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러시아 작곡가 아렌스키의 '차이코프스키 주제에 의한 변주곡', 라흐마니노프의 가곡,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 등 러시아 음악이 연주되었다.

 

또한 작곡가 이영조의 광복 제75주년 기념 '소프라노와 현악앙상블을 위한 환희'와 작곡가 임준희의 '소프라노, 대금, 해금과 현악3중주를 위한 독도환타지'를 연주했다. 이 공연에는 음악감독/리더 박준영, 소프라노 한경성, 대금 박경민, 해금 이승희 그리고 라메르에릴 챔버오케스트라가 함께 했다.

 

러시아와 한국의 음악이 함께 진행된 이번 음악회는 상당히 흥미롭다. 아렌스키,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한국의 독도 환타지가 함께 울렸다. 러시아 거장의 음악과 소프라노와 대금, 해금, 현악 3중주를 위한 독도환타지가 한 공연에서 진행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나 또한 이번 음악회에 가기 전까지는 묘한 우려가 있었다. 러시아 클래식과 함께 이어가는 독도라니. 그러나 음악 앞에서 어떤 분류를 나누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음악은 자연스레 이어졌고, 이는 이번 공연이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이자 독도사랑축제였기에 가능했다.

 

 

2-월전미술관(20.5.23).JPG

 

 

이번 음악회를 개최한 라메르에릴은 2019년 11월 한러대화 러시아 측 조정위원장(크로파체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니벌홀에서 초청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독도서화전'에 김경신 작가의 독도 연작 그림을 전시하고, 축하 공연을 개최해 러시아에서 독도를 알린바 있다.

 

비영리공익법인인 라메르에릴은 K-클래식조직위원회가 선정한 K-클래식 대표단체로서 문화예술을 통한 '독도사랑축제'를 국내외에서 연중 개최해 2013년부터 15회의 국내공연을 개최하였고, 2016년 이후 프랑스, 독일, 체코, 네덜란드, 싱가포르, 호주, 중국, 캐나다, 미국, 러시아 등 10개국 14개 주요 도시에서 14회의 순회/초청공연을 열어 동해와 독도를 알려왔다.

 

분명한 것은, 이번 음악회는 클래식을 듣는 한 사람이자 독도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두 가지의 흥미를 충분히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들은 환상적인 음악은 30주년을 넘어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할 것이다.

 

 

독도오감도(2020.8.16).jpg

 

   

Program


A. Arensky (1861-1906)
Variations on a Theme by Tchaikovsky, Op. 35a
 
S. Rachmaninoff (1873-1943)
Ne poy, krasavitsa, pri mne
 
임준희 (1959~ )
소프라노, 대금, 해금과
현악3중주를 위한 독도환타지
(Dokdo Fantasie for Soprano, Daegeum,
Haegeum and String Trio)
 
Intermission
 
이영조 (1943~ )
소프라노와 현악앙상블을 위한 환희
(Jubilate for Soprano and String Ensemble)
 
P. I. Tchaikovsky (1840-1893)
Souvenir de Florence, Op. 70
(String Orchestra Version)


포스터.jpg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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