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친 모래사장과 조개껍데기 하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도서]

글 입력 2020.11.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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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좋아한다.

 

이 해변이나 저 해변이나 다 거기에서 거기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변은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해변은 액체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운 모래가 발을 감싸지만 어떤 해변은 맨발로 걷는 게 지옥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칠기도 하다.

 

이번 독서를 통해 접한 찰스 부코스키의 글은 마른 산호초와 부서진 조개껍데기가 만든 거친 해변을 떠오르게 했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_도서이미지_도서출판잔.jpg

 

 

 

거친 모래 같지만 그 안에 조개껍데기 하나


 

찰스 부코스키의 글은 매우 거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봤는데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에서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쾌쾌한 지하의 곰팡이 냄새와 매캐한 담배 냄새까지 연상된다. 술과 섹스, 현실에 대한 냉소와 신랄한 풍자. 대부분의 글은 어둡고 냉소적이며 때론 읽기 불편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혐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별로라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의 글은 부서진 산호초와 깨진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처럼 거칠고 따갑다. 하지만 그런 모래사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오묘한 색의 조개껍데기가 있듯이 그의 글에도 수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생각들이 이따금 보인다.

 

 

"테이블의 커다란 와인병에 술이 좀 남았기를 바라며 내 방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 거란 기대는 안한다. 나는 특정 인간 군상의 일대기를 너무나 잘 보여 주는 존재 아닌가. 음흉함, 비현실적인 망상, 억압된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 말이다." (43p. 긴 거절 편지의 여파 중)


 

책의 첫 단편인 "긴 거절 편지의 여파"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찰스 부코스키 스스로도 자신의 글이 지닌 거침과 그것이 주는 거북함을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 독자들에게 이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긴 거절 편지의 여파"에서 부코스키는 출간을 위해 보냈던 원고를 거절하는 편지를 받는다. 이후 자신의 하숙집에 찾아온 남자를 그 편지를 보냈던 편집자로 착각해 벌어진 일과 그가 느낀 감정들에 대해 담고 있다.


표현들이 거칠지만 아주 솔직하다.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내밀한 마음까지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럴싸한 직업과 지성을 내세우며 위선적으로 사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표현하는 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음흉함, 비현실적인 망상, 억압된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이라 이야기했으나 그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위선 떨며 사는 삶보다 어두운 면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나는 움직이고 말하고 이름도 있고 자부심과 집착도 있는 죽은 사람들의 거리를 걷는데 그들은 정말로 죽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얼굴이 공포스럽다. 사악하고 삐쩍 마르고 변기 같은 얼굴들...... 그런 행렬을 보고 나면 정신이 아찔한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이 죽은 자의 세상에서 내가 살아왔고 평생 이렇게 살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죽은 사람들로 일워진 부서의 죽은 관점, 낭비되는 종이들! 구태의연한 생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낡은 말장난, 미와 회화 용어에 따른 차려입기. 실제로 그들은 항상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뻑은 집어치우고 나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일까? 난 실질적으로 죽음과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고 있는데 그들은 창가에서 컵케이크 따위나 이야기하다니! (78-79p.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끼적인 글)

 

 

 

공격적 vs 풍자, 그에 대한 평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렇게 궁금한 책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고흐를 '순수, 열정, 솜씨가 전부 결여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거라 예상한다'는 내용도,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도구 정도로나 표현한 것들 등 현실에 대한 냉소와 풍자보단 혐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언뜻 공감 가는 내용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전체를 두고 보면 책장을 더디게 넘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물론, 그가 활발하게 글을 쓰던 시기는 1900년대 중후반이기에 따라오는 세대적 격차일 수도 있고,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참상에 의한 시대적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들이 로스앤젤레스 프리 프레스나 노트 프럼 언더그라운 등의 지역신문 등에 꾸준히 기고되었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의 비관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공감과 흥미를 충분히 이끌어냈다는 증명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품에서 꾸준히 관찰되는 그의 냉소와 비관이 그가 비난했던 '위선적인 사람'들보다 나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의문스러웠다. 위선을 떨며 살아가는 삶이나 더 나아질 수 없다는 비관에 빠진 삶이나 현실에 순응하고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 점은 같지 않은가 고민해 보았다.

 

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찾아보니 몇몇 비평가들은 찰스 부코스키의 스타일에 대해 공격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일각에서는 섹스와 알코올 중독, 폭력'을 이용이 오히려 '남성중심주의(Machismo)'를 풍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회의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는 '퇴폐적 현실주의'의 선두주자라는 평도 있었다.

 

개인적인 견해는 전자에 가깝지만 후자에 가까운 다른 사람들도 있을지 궁금해 책을 읽을수록 글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전례 없는 독특한 작가임은 분명한 듯하다.


 

 

작가 소개


 

1920년 8월 16일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갔고 로스앤젤레스에서 평생을 살았다. 로스앤젤레스시티컬리지를 2년 만에 중퇴하고 독학으로 작가 훈련을 했다. 스물네 살 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한 이후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우편 분류와 배달 직원으로 12년간 일하며 시를 쓴다.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해고 직전에 있을 때, 전업으로 글을 쓰면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에서 전 세계 독자들이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최고의 작가가 된 찰스 부코스키. 그의 작품은 그의 분신인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가 이끌어 간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이라는 명성만큼 수많은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생 60여 권의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으며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미키 루크 주연의 《술고래(Barfly)》(1987)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과 인생을 다룬 1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마지막 장편소설 《펄프》를 완성하고 1994년 3월 9일 캘리포니아주 산페드로에서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묘비명은 "애쓰지 마라(Don't Try)."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분류

에세이 / 외국에세이

미국에세이, 문학 / 세계문학 / 미국문학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공민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페이지

400쪽

 

정가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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