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길티와 길티 플레져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도서]

글 입력 2020.11.17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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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대부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다닌다.

 

그러나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을 내뱉지 않고 최대한 여과하여 말한다. 그 여과기를 없앤 것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이 길티 플레져를 대신 말해준다면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누리며 타인의 은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임성순 작가의 소설 『자기 개발의 정석』을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전립선염에 걸린 중년 남성은 때늦은 쾌감에 빠져버린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에 우리는 몰입하고 만다.

 

그렇다면, 중년을 넘어 ‘음탕한 늙은이’의 이야기는 어떨까? 여과 없이 욕망만이 담긴 늙은이의 ‘비망록’에 우리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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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아버지를 죽였어요

댁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못 들어 봤어요?

당연히.

그럼 갑시다. 버스 터미널로.

 

 

신은 위대하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신은 공평하다. 그러나 문득 의문이다. 신이 있다면, 왜 불행한 인간이 있고 세상은 공평하지 않을까.

 

당장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인간에게 신을 믿는다는 건 어쩌면 사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을 원망하는 말을 뱉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누군가는 신을 믿고 신앙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서는 이에 관한 의견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내가 예수를 죽였다.’ ‘그게 왜?’라는식이다. 신을 죽였다는 건 그들에게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그들은 빠르게 일상에 돌아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들어보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저 자신의 목적지인 ‘버스 터미널’로 가자고 할 뿐이다. 수많은 신 예찬 속에서의 찰스 부코스키의 신성모독은 발칙하다. 신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신성모독을 유쾌하게 느낀다.

 

죽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죽음’은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죽음 이후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을 믿으면 사후세계에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혹은 ‘이데아’에 갈 수 있다고. 찰스 부코스키는 그 신앙을 가볍게 부정한다.

  

 

세상에, 맙소사!

죽은 걸 누가 신경이나 쓸까?

배터리라면 모를까?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워하기보다, 당장 배터리가 닳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타국에 이름도 모르는 아무개 씨가 죽는 것보다 당장 내 노트북과 휴대폰 배터리를 걱정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찰스 부코스키는 그 사실을 단 세 마디로 정리했다. 우리는 모든 죽음을 알 수 없다. ‘잘 가셨다.’, ‘신을 믿었기에 신의 세상으로 갈 것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아무도 죽음 이후의 이어질 삶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보다 당장 눈앞에 사소한 잃음이 더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누군가가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농담 삼아 가볍게 던져버린다.

 

 

“네 인생의 다른 장들을 전부 채웠어. 난 이미 네 마지막 장을 썼고.”

“계속해 봐요.” 그가 명쾌하게 말했다. “쓰라고요.”

이걸로 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작가는 한 인물을 빌려 삶을 “계속해 봐요.”라고 말한다. 이미 누군가가 결말을 냈다고, 마지막 장을 썼다고 한들 상관없다. 삶의 주체가 계속 한다고 하면 삶은 이어진다. 그걸로 “끝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저돌적이면서도 여과 없는 서술이 공격적이게 느껴지면서도 은근한 기쁨을 느낀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NOTES OF A DIRTY OLD MAN -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외국에세이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 14,200원

ISBN
979-11-90234-09-2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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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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