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맞대면 [시각예술]

2019 제 20회 이인상 미술상 수상자 조덕현 작가의 개인전 'to thee 그대에게'를 관람하며 과거를 마주하다.
글 입력 2020.11.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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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문화 예술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 중 전시, 특히 회화전시와 관련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보려 한다.

 

지난 주에 디지털 매체의 발전과 직면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문화 예술계의 동향, 그리고 전시에서 공간적 예술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한 글과 느슨히 연결할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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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질문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다른 문장으로 질문을 바꿔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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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조덕현 작가의 개인전 'to thee 그대에게'를 관람하며 위 질문을 떠올렸고, 전시 관람을 끝낸 후엔 ‘가능하다’라는 경험적 확신을 얻었다.

 

더불어 정성 들여 기록해 보고픈 강렬한 열망까지 얻어 글을 쓰게 되었고,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이긴 하나, 함께 해준다면 각자에게 유의미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작가 조덕현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다


 

조덕현 작가는 다매체나 복합매체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현대미술계에서 평면 작업을 꾸준히 해오던 작가 중 한 명이며, 특히 흑백사진과 연필, 콩테 등을 주로 사용하는 사실주의적 회화작가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전시를 관람할 때까지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는데,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은 근래 미술 전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수놓아진 ‘풍경’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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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대구 1-8_2020 Acrylic, mixed media on linen_112.1x145.5cm 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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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꿈, 2018, 582x390cm, pencil on paper, acrylic
 

 

마치 암실 속 라이트 박스에 올려진 필름 사진 같았던 작품들. 어두운 공간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형상은 다가갈수록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의 섬세한 이미지는(사실 아직도 무엇이 그림이었는지, 무엇이 사진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혼합 작업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의 장터, 익명의 초상, 강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대형 판넬에는 폐허와 조난당한 배 위로 절규하는 이들, 휘황찬란한 중국 어느 거리의 풍경 곳곳에 이질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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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상하이, 2018, 582x390cm, pencil on paper, acrylic

 



익명의 초상


 

그중에서도 거대한 박스 안에 차곡히 포개진 초상화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사진을 그대로 옮긴 듯한 그림은 유심히 보니 초상화뿐만 아니라 결혼식 풍경이나 교복을 입은 학생 등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을 법한, 어디선가 본 듯한 누군가의 얼굴들이 다양한 판형의 프레임 속에 자리해 있었다.

 

어떤 이는 이마만 보이고, 어떤 이는 얼굴이 가려진 채 몸만 보이는 등 포개어진 그림은 보이는 얼굴보다 가려진 얼굴에 몰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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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도 같은 상상이었다.

 

가려진 얼굴은 누구였을까. 보이는 얼굴 보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상상하려 하니 보이는 얼굴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순간 ‘어.. 그러고 보니 이 얼굴들은 모두 잘 차려입고 반질반질한 얼굴로 화면 속에 자리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더니, 익명의 얼굴들이 렌즈를 바라보던 순간 전후의 시간이 떠오른다.

 

찍히는 행위가 익숙지 않은 이들의 모습은 평면 속 어딘가로 필자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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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그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했으나, 필자에게는 모두가 ‘과거’라는 하나의 거대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앞의 이미지와 과거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전쟁, 변화와 맞물린 일상의 풍경이 머리를 스치고 멜랑콜리한 감정이 점점 부풀어 속을 울렁이게 한 그때, 과거는 시간의 장벽을 허물고 현재의 ‘나’에게 다가왔다.


 

잊혀진 기억이다. 거대한 역사의 점 하나에 가려진 수많은 이야기다. 내게 다가온 것은, 익명의 누군가가 보낸 시간이다. 과거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맞대면, 그들이 살았던 시간이 마치 나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왠지 마음이 텁텁함을 느끼고 고요한 공간 속을 통과하다 마주한 것은 거대한 흙 기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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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_2020 Specific object, sand from Naesungcheon, mirror, steel structure_Variable installation

 


이 거대한 흙덩이는 끝에 붙은 거울로 인해 두 배 더 길어 보이는데, 그 화면 속엔 필자의 모습도 함께 담겼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대지가 지닌 기억이 뻗어나와 관람자와 나란히 담기는 이 거울 속 화면이 필자에겐 최선의 마침표로 느껴졌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의 함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평면을 관통하는 시간의 서사


 

필자는 조덕현 작가의 작업이 평면의 단일 축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축을 뚫어 익명의 서사를 경험하도록 이끄는데, 이 관통이 아주 치밀하고 환상적이기에 관람하는 이의 마음을 울렁이게 할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굳이 3D 혹은 4D 세상으로 꺼내올 필요 없이, 관람자를 평면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게 더 적절했던 게 아니었을까. 더욱이 사진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사실적인 소묘 능력은 환상적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진과 회화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전시 내내 회화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곱씹게 했다.

 

이토록 꽉 찬 전시는 오랜만이었다. 단순히 작품 수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 하나에 담긴 몇 겹의 이야기 사이를 유영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자, 이제 여기까지 함께한 당신에게 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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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능하며, 직접 경험했을 때 몸으로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혹여나 시간이 된다면 전시장에 방문해보길 바란다. 작가가 이끄는 대로, 혹은 가고픈 대로 과거의 어딘가를 관통해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전시는 2021년 1월 17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계속된다.

 

 

 

김현나.jpg

 

 

[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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