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린 여전히 함께지만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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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는 전염병은 사람들의 집합을 완전히 해체했다.
‘지금, 여기, 함께’라는 개념이 더는 물리적 범주에 한정되지 않고 ‘시간의 동시성’ 정도로 느슨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확인되었다. 대학로에서 제대로 앉기도 불편한 자리에 빽빽이 들어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모습은 이제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문화 예술계는 ‘생존’을 위해 대중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했을 테다.
이전에는 간혹 온·오프라인을 병행했던 공연이나 전시가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상영회, 대담회 등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트렌드에 민감한 음악, 패션 관련 분야에서는 가상·증강 현실 등의 미디어 기술이 적극적이며 빠르게 도입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예술을 향유할 때 꼭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에 같은 플랫폼(가상의 공간) 내에서 시청각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경험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전시
필자는 현재 시각디자인과에 재학 중이며, 과 특성상 매 학기 두어 번씩 전시를 진행해왔다. 전시는 한 학기의 작업을 공간 속에 드러내 보이는 중요한 경험이자 기회였고, 사진, 영상, 책, 포스터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웹사이트에 대한 갈증을 느낀 적은 없었다. 전시는 내게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필수로 전제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3월부터 6월까지는 지난 3년의 경험을 뒤흔들 만큼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강이 미뤄지다 결국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었고, 대면 전시가 불가능해지며 웹사이트 제작으로 작업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되었다.
가상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은 낯설었고, 필자의 낯섦이 관람자에겐 어설픔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모든 과정을 진행했던 경험은 달갑지 않았으나, 전시에 요구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생각해볼 유의미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공간.
그러나, 필자에겐 여전히 실제 공간에서의 체험에 대한 갈증이 너무 강하다. 작품에 따라 변하는 공간, 그 공간에 녹아드는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그곳에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잊을 만큼 진한 잔상을 남기기 때문이다(이와 반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닌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시장 입구의 파사드, 공연장 바닥의 붉은 벽돌, 착석한 의자의 견고함과 몸 위로 흩어진 조명을 느끼고 그 경이로운 체험을 함께한 이들과 열띤 대화로 공유하는 즐거움은 그곳에 찾아간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따라서 공간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덧붙여 무언갈 만지고, 느끼며 직접 경험하는 행위의 힘이 쉽게 대체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문화 예술적 경험에서 기존 형태나 관습을 고수하는 태도는 작가와 관람자에게 긍정적 효과를 미치지는 않을 테다. 이와 관련해, 건축신문 <건축, 전시, 큐레이팅>의 글 일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근대가 만들었던 인쇄 매체의 시대, 책의 시대는 저물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체험의 영역이 넓어지겠지만, 아날로그 양식과 직접적인 신체의 체험들은 여전히 전시 문화에서 중요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와 융합, 공존하면서 새로운 체험 양식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배형민, 전시 시대의 감각, 사유와 수행, 건축신문> 중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아날로그적 양식과 체험이 디지털 매체나 새로운 기술과 조화된 상태의 총체적 경험으로서 ‘공간적 체험’이야말로 사람들이 직접 공간을 찾도록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공간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창조적 산물을 체험하고, 우리와 함께 공간을 벗어난 체험의 기억이 각자의 일상에서 또 다른 영감을 일으키는 조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시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채로운 가상 공간의 경험 이면엔 물리적 단절이라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공존하고 있다. 언젠가, 인간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버린다면 직접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직접 보고 느꼈던 것들을 잃지 않도록, 부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으로서 공간 속에서 ‘직접’ 경험하며 함께 경험하는 이들과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김현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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