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세계 [TV/드라마]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글 입력 2020.11.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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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영화 ‘미쓰 홍당무’, ‘페르소나’의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정유미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은 개봉전부터 그 셋이 만들어낼 시너지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만큼이나, 정세랑 작가 특유의 이상하지만 유쾌한 문장은 이경미 감독과 정유미 배우를 만나 더욱 더 이상하고 유쾌하게 재탄생했다.


드라마의 배경은 목련 고등학교다. 새로 부임한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은 그 평범한 이름과는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그녀는 목련고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함께 이를 해결한다.


 

"처음에는 얼마나 헷갈렸는지 모른다

혹시 나에겐 눈꺼풀이 하나 더 있는 건 아닐까?

 

나한테만 보이는 또 한 겹의 세상


(중략)


엄마는 내가 끝까지 모르길 바랐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젤리를 만든다는 걸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죽고 나서도 젤리는 남아 머물지만

대게는 해로운 존재가 되기 전에 천천히 죽는다

 

달팽이가 지나가는 곳에 점액이 남듯이

그것은 욕망의 흔적"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고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를 몇 개 꼽아보자면,

 

 


1. 히어로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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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히어로의 등장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교의 평화를 지키는 여전사다. 작가 정세랑은 안은영을 ‘섹시 여전사’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각본에 참여했다고 하더라. 역시 지금껏 미디어가 소비하던 방식의 여성 히어로와 안은영은 다르다.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를 풀어헤치고 달리는 가냘프고 어딘가 조금 이상한 보건 선생님. 배우 정유미가 영화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라던 끊임없는 욕설들은 약간의 광기까지 느껴진다.

 

은영은 타 히어로들이 갖춘 완벽한 인간성이나 정의감 때문에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마치 매일같이 회사에 관두고 싶어하는 우리처럼 욕설을 내뱉고 울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늘 회의감을 느끼지만 끝내 세상을 돕고마는 안은영이 그래서 더 고맙게 느껴진다.

 

  


2.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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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보는 젤리의 종류는 다양하다. 학교 벽에 찰싹 붙어 있는 무해한 젤리, 학교를 수호하는 흰수염고래 젤리,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으로 세상을 망치려는 괴물 젤리들까지.

 

나쁜 젤리들은 보건교사 안은영이 해치워야 할 몫이다. 안은영은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젤리 괴물들을 반짝이는 비비탄 총과 빛나는 광선검으로 퇴치한다. 젤리 괴물을 해치우는 것은 피가 튀기는 잔인한 ‘퇴마’의 과정이 아니다. 은영이 '퇴마'에 성공하면 알록달록 수많은 젤리가 펑 터져서 마치 비처럼 내린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출은 오늘도 수고한 안은영을 위한 약간의 보상이라고.

 

이렇게나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종종 등장하는 현실적인 부분들도 눈길을 끈다. 귀신을 쫓기 위해 주기적으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등의 한국적인 디테일의 독특함은 웃음을 유발한다.

 

 

 

3.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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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라 (박혜은 분)

 

 

그 유쾌함과 이상함, 심지어 약간의 기괴함이 극 전체를 감싼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다양한 배우들의 얼굴이 그렇다. 주연인 정유미와 남주혁을 제외하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신인 배우다. 거의 민낯인 그들의 얼굴은 감정과 표정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 생소하고 다채로운 얼굴들이 만드는 과장된 표정은 캐릭터의 특성을 더 유쾌하게 살리는 동시에 너무 과장되어 위화감을 준다.


중독적인 배경 음악도 몰입도를 높인다. 밴드 ‘이날치’의 베이스이자, 영화 ‘전우치’의 음악감독인 장영규 감독 배경 음악을 맡았다. 그러니 얼마나 신나고 중독적인 ost를 가졌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

 

“보건 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 죽게 생겼다 잽싸게 도망가자”

 

위 가사는 무려 도망가는 젤리의 시점에서 불리는 노래다. 이처럼 귀엽고 유쾌하며, 반복적인 노래들은 적재적소에 웃음을 주고 때로는 긴장감을 준다.

 

*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사실 공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세상을 도와야하는 아주 끔찍한 미션을 가진 주인공이다. 그러나 안은영은 몇마디 욕을 내뱉고 펑펑 울다가 끝내 해버린다. 그 나쁜 젤리들이 세상을 집어삼키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니 그 덕에 이 세계에는 절망만이 남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친절이 우리를 붙잡아주니까.


웰컴 투 정세랑 월드.


 

정세랑이 그리는 세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데 세상이 망해가는 와중에도 어딘가에는 나를 꼭 붙잡아 줄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세계에

 

- 작가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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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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