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뻔한 이야기에서 온기가 느껴질 때 [영화]

상업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삼진그룹영어토익반>
글 입력 2020.11.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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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1000만 영화가 한 편씩은 나오는 듯한 이 시대,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향유하는 인구가 늘어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찍어내는' 영화가 줄줄이 스크린에 걸린다고 느끼고 이런 영화들이 흥행하는 상황을 유쾌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영화를 '찍어낸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영화의 클리셰란 간단하게 말해 예술에서의 진부한 형식을 일컫는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이 '클리셰' 자체를 기피하게 된 원인은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내가 만 원 내고 감상할 영화가 그 이상으로 수준이 높기를 바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감상을 내놓을 수 있는 관객으로서 존중받고자 하는 종류의 자존심 말이다.

 

우리는 틀에 박힌 가르침을 주입당하려고, 혹은 정해진 수순에 맞추어 울고 웃는 제작자의 꼭두각시를 자처하려고 영화관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이런 상업영화에서 기대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삼진그룹토익반> 역시 어찌 됐든 이익 창출을 위해 상영관에 등장한 상업영화로서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했다. 큰 서사의 결론은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점에서, 결국 선한 약자들이 강한 악인들과 싸워 승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독창성은 그 자체로 칭찬받을 요소이지만, 어느 정도의 진부함이 그 자체로 비난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관을 찾을 때 뻔한 각본과 연출에 조종당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듯이, 상영 내내 영화가 내 예상을 빗나가기만을 기다리며 감시하는 눈으로 앉아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따라서 나는 앞서 서술한,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했다', 라는 문장을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정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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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클리셰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클리셰에 온도를 부여하는 진정성이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받겠지만, 그만큼의 무언가를 주겠다는 진정성. 그리고 진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관객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설명과 그것과 별개로 그 영화만이 가진 고유한 정서이다.

 

영화가 주로 주장하는 정서는 스토리에 달렸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리고 그런 명제가 아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의외로 이런 정서는 스토리 자체와 더불어 영화의 표현 방식과 색에서도 묻어나온다. '넌 어제의 너보다 성장했다'라는 대사의 유쾌한 듯 장난스러운 대사톤과 연출, 복고라는 배경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웃음과 따뜻함, 한 치 앞도 모르는 처지의 주인공이 자기보다 작은 금붕어를 챙기려 매달리는 모습 등은 그동안 약자로 분류되었던 여성 캐릭터 삼인방의 출현, 미생들의 연대 장면 등의 주된 서사를 보여주는 러닝타임 동안 생기는 공백을 촘촘히 메꾸며<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고유한 정서로 사람들을 조용히 끌어간다.

 

씨네21의 김혜리 평론가가 <머니볼>에 대한 글에서 <머니볼>과 같은 영화는 감동은 없더라도 우리에게 감흥을 준다고 말한 것과 정반대로, 이런 영화는 우리에게 큰 감흥은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작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의 끝에서 처음까지 시종일관 이어지는 영상의 색감인 브라운톤이 주는 익숙한 편안함을 닮았다.

 

도입부에서 상업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지 질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클리셰를 가진 상업영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바는(물론 그 지루함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런 온기가 아닐까, 하는 나름의 답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비록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 다른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문법을 따르고 있는 영화라 하더라도, 가장되지 않은 온기를 가진 이야기여서 관람하는 내내의 시간이 즐겁고 따뜻했다. 어찌 보면 서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비슷비슷한 우리들이 일상의 어느 시점에서 가끔, 우리와 비슷하지만 손길이 유독 다정한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김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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