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각대로 사는 법을 아는 이의 기록 - 시간 블렌딩

글 입력 2020.11.0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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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 코로나로 집콕을 하던 때에도 단단히 무장을 하곤 카페에 갔다. 처음엔 어떻게든 아침잠을 깨보고자 시작한 모닝커피가 지금은 하루를 시작하는 리추얼이 되어버려 바쁘지 않은 날에도 카페로 향하곤 한다. 습관처럼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와 카페에 도착한다. 더운 날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습하고 추운 날에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시킨다. 잠시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할 일을 하기도 하고 분주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한다. 매일 하는 일은 습관처럼 자연스럽지만 그만큼 생각 없이 하기에 좋다. 나에게 카페를 간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이런 나와는 정반대로 카페와 커피를 향유한 기록이 '어제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시간 블렌딩'이다. 이 책을 처음 펼쳐보며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에선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가 오늘인 것처럼, 오늘은 또 내일인 것처럼 반복되는 하루들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잊는다.

 

아침마다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가 달달한 지 쌉싸름하거나 산미가 강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면, 생각대로 사는 삶은 모든 순간이 생각으로 차있다. 카페를 가득 채운 커피향과 빵 냄새,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달콤 쌉싸름한 음료의 맛. 모든 것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책엔 생각하며 사는 법을 아는 저자 영진의 생각들이 잘 담겨 있다.


한 손에 잡히는 자그마한 외관과 얇고 반짝거리는 종이 재질,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진과 일러스트 때문에 처음엔 마치 작은 잡지 한 권을 받은 기분이었다. 자몽파인에이드로 월요일을 시작해 아포가토로 한 주를 마무리하는 목차를 보곤 음료에 대한 설명이려나 지레짐작했다.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한 만큼 카페와 커피에 대해 설명하는 책도 늘어나고 있으니깐.

 

그런데 의외로 글이 매우 짧았다. 에세이보단 시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작은 노트나 카페 휴지 조각에 기록해둔 그날의 생각들을 옮겨둔 것 같았다. 월요일에 자몽파인에이드를 마시며, 어떤 날에는 따뜻한 카페모카를 마시며 들었던 생각들의 기록을 보니 나의 경험이 떠오르기도 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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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11시, 스벅


촘촘한 설렘, 오늘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하는 작은 기대감. 

한 주간 접혀 있던 정서들이 펼쳐지듯, 아침의 스타벅스는 활기를 가져다주지만 오늘은 마치 양치를 하듯 습관화된 기분. 양치하듯 바라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자신이 있는 공간, 먹는 음식, 그런 것들이 최고라는 생각 뒤엔 무엇이 따라오는가. 아 그 무엇이 궁금해. 티비 속에 있는 먹음직한 스테이크는 먹음직한 만큼 판타지의 크기. 


스테이크보다 맛은 덜하지만 내 앞에 김치가 있다면 김치가 최고라는 말 속에 행복이 담겨 있지 않을까.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게 최고는 아니지만 담백해서 좋고, 

내가 보는 게 가장 근사한 것은 아니지만 재밌으며,

내가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청량감 있지.


토요일 오전 11시, 스타벅스. 고맙습니다.


 

토요일 늦은 오전의 스타벅스는 다른 날들과 사뭇 다르다. 평일엔 직장인들로, 일요일엔 교회가 끝난 후 모여드는 단체 손님으로 북적이는 시간대지만 토요일은 한 주간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접혀있던 정서들'을 펼치곤 미뤄두었던 일들을 느릿느릿 즐기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날이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오븐에 데운 크루아상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점심을 대신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처럼 '양치하듯 습관화된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직장과 학교에 얽매여 있던 평일이 끝나고 주말이 찾아오면 무엇인가 끝내주는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들 때, 그리고 그 기대와 다르게 권태로운 주말을 보낼 때 이런 기분을 느낀다. 왠지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특별한 주말을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맛있게 느껴지던 크루아상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밀가루 덩어리에 쓴 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카페의 분주함은 나를 현실로 되돌려 준다. 현재 상태를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판타지와 더불어 생겨난 권태, 질투 등의 감정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얼른 씻어낼 수 있다. 글의 끝맺음을 스타벅스에 대한 감사로 끝낸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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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굴곡 앞에서 초연한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소설책에나 나올법한 얘기지만, 부족한 덕으로 가끔은 분노도 생떼도 내보며 나를 달랜 모습에 반쯤은 부끄러움도 있긴 해. 나름대로 맛있게 마신 것 같아. 같다. 라는 마침표를 딛고, 입속에 잔향을 음미. 


잔향은 모든 시간이 제자리를 찾도록 인도.


그때는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다행스럽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어제는 어제,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그때. 


이게 다야.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 있고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이었다.


태풍처럼 급변하는 일들 속에 서 있을 땐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태풍에 무너지지 않고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온몸으로 버티느라 살펴볼 정신이 없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남은 잔해 속에서 전날들을 복기할 때 부족한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 오기도 한다. 커피의 강렬한 향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잔향으로 날 따라오는 것처럼 전날에 대한 감정들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때론 이런 잔향이 고통스러워 어제를 어제로, 그때를 그때로 보지 못하고 오래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잔향 속에서 우리는 점차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시간은 어떻게든 흐른다는 법칙과 망각이라는 축복 덕분에 그때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잔향처럼 따라오는 부끄러움도, 만족스러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그날을 그날로 바라볼 수 있다. 오래도록 뭉근하게 졸인 기억이 나름 먹을만해진다. 버거웠던 상황도, 미숙해 부끄러웠던 나의 모습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며 나름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리고 그런 날이 왔을 때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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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생각하기를 게을리한 지 꽤 되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했던 생각들을 차곡차곡 기록해 둔 <시간 블렌딩>을 보며 나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돌아보니 기억나는 게 많지 않다. 벗어남과 나감, 출발 중에 난 출발을 선택하려고 한다. 남은 2020년의 두 달은 한동안 게을리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하고 부지런히 생각을 기록해 보아야겠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좋은 티타임이었습니다!  

 



 
 
<책 소개>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나간 어제를 커피 한 잔처럼 맛있게 마실 여유가 아닐까. 문득 어제, 오늘, 내일 사이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길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시계는 한치도 틀림없이 제시간에 맞게 가고 있는데, 내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일상 속에 파란 선인장처럼 다가올 글과 그림. 버거운 하루를 견디기 어려울 때, 이 책을 권한다. 
 
*
 
시간 블렌딩
 

지은이 : 영진

출판사 : 메이드인

분야
그림/사진 에세이

규격
152*225

쪽 수 : 192쪽

발행일
2020년 10월 01일

정가 : 13,000원

ISBN
979-11-90545-06-8 (03810)

정가 : 13,000원

ISBN
979-11-90545-06-8 (03810)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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