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로미술과 카프(KAPF), 한국 근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 [시각예술]

일제강점기의 프롤레타리아 미술과 안석주의 만문만화에 대해
글 입력 2020.11.0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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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를 최초로 운영했던 한성전기회사

 

 

우리나라의 전근대와 근대는 단순히 시기적 구분으로 바라볼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던’이라는 용어와 우리의 근대를 견주어보면 더욱 그렇다. 서구사회의 근대는 산업화나 도시화 등 저마다의 거대한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막을 올렸지만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새로운 시대를 갑작스럽게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소를 불문하고 근대 사회의 특징은, 다소 포괄적이기는 하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이다.

 
우리나라 미술계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들이닥친 낯설고도 부당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원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당시의 우리 미술계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겪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주류가 된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심미주의적이고 나약한 미술이었다. 여러 미술가들은 교묘히 꾸며진 조선미술전람회의 기준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의 국제적 흐름 속에서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이하 카프(KAPF)가 조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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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를 이끌었던 조각가 김복진의 유작 <소년>(1940)
 
 
그리고 이 글에서는 카프의 활동을 탐구하고 그 예시가 되는 작품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그 등장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자. 사회주의 사상은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가 시작되었던 시기에 국내 언론매체를 통해 수용되었다. 형식적으로나마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각종 저작물의 창작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그 공간을 이용해 계급 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신흥예술을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1925년 비로소 카프라는 명칭으로 일어서게 된다.

 

그 초기에는 다양한 사상이 혼재했지만 조직 개편을 거듭하며 좌익 민족주의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이들은 일제와의 항쟁과 우리 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예술이 혁명의 선전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1930년대 일제가 전쟁 준비에 돌입하며 일본과 조선의 좌파세력을 탄압하며 이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고 1935년 공식적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참고자료 - 한정임, 「한국 근대미술에 나타난 리얼리즘적 요소 -1920~1930년대 카프미술을 중심으로-」, 2003,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비록 일제의 공공연한 압제와 감시 하에서 활동을 펼쳐야 했으나 그럼에도 이들의 활동이 작은 물결로 끝났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들의 작업 장르로는 만문만화를 빼놓을 수 없다. 만문만화는 일반적인 만화나 만평처럼 말풍선을 이용하지 않고 제3의 서술자가 그림 속 상황을 설명하거나 풍자하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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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석주, <종로경찰서 대대 확장 이전>, 조선일보 1929년 8월 25일자
 

 

그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한 작품은 1929년 8월 2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안석주의 <종로경찰서 대대 확장 이전>이다. 그림 속 경찰서 창문 밖으로 순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수갑을 늘어뜨리고 있고, 이 모습은 두 차례에 걸쳐 점점 커지고 있다. ‘좀도둑만 잡았으면 이렇게 번창은 아니하였겠지’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갈수록 극심해지는 일제의 감시와 처벌에 대한 풍자로 읽어낼 수 있다. 당시 신문에 기고되는 만화들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당시의 생활상을 비판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그 본질적 원인에 정면으로 돌파했다는 사실이 인상 깊다.
 
 이렇듯 카프 미술은 십 년 남짓한 짧은 활동 기간 안에서도 완고한 정체성을 펼쳤다. 이들의 미술은 이후 해방공간에서 다시 등장하며 보수 계열 단체들과 함께 우리 미술계의 두 가지 흐름 중 하나의 뿌리가 된다. 그 시작이 된 프로미술과 카프를 되돌아보면 다양한 목소리보다는 한 가지의 목표지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초기 단계의 카프는 무정부주의나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등 여러 사상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나 이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사상을 통일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카프로 인해 미술이 드디어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곧 한국 근대미술을 이루는 하나의 축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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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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