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픔과 조우하는 이야기 - 슬픔이여 안녕 [문학]

글 입력 2020.11.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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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불안감은 여전히 생경하다. 안느는 주인공 쎄실에게 있어서 자유를 옥죄는 감옥인 동시에 그녀를 보호해주는 울타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느가 떠나는 장면은 주인공에게 갑작스러운 절망이었다. 나는 안느가 떠나는 장면에 다다라서야 안느가 어린 소녀 쎄실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였음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 쎄실은 감각이 예민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관계가 끝나는 순간 그 관계가 가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러질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사건의 의미는 ― 세상에 정말로 의미라는 게 있긴 하다면 ― 관계가 끝나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다시 포착되는 것 같다. 『슬픔이여 안녕』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린 것도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는다. 주인공의 불안감은 마치 전염력이라도 가진 양 독자인 나를 온통 뒤덮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의 무대,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이 비대칭적으로 뒤틀려 있고, 그로 인해 나의 현실 공간도 같이 뒤틀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프랑수아즈 사강은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문장에 고스란히 담는 능력이 있다. 그녀의 문장을 읽고 나면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와닿는다. 글이나 논리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정들이 독자를 순식간에 집어 삼킨다.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서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의미있어서 타인에게 너무나도 추천하고 싶지만, 그런 일을 나의 글로는 차마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한동안 들었었다. 물론 지금은 『슬픔이여 안녕』을 읽은 직후의 감정과 감동은 그다지 생생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슬픔이여 안녕.jpg



열일곱 살 소녀 쎄실은 아버지 레이몽,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친구인 엘자와 함께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낸다. 레이몽는 건장하고 쾌활한 스타일인데 늘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쎄실에게 소개해주고, 쎄실은 육 개월마다 바뀌는 아버지의 여자친구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함께 휴양을 온 것인데, 어느 날 그들의 숙소에 안느가 찾아온다. 안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오랜 친구이고 생활력이 강한 중년 여성으로 그간 레이몽의 여자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 인물이다. 시간이 지나며 레이몽은 안느에게로 마음이 기울고 엘자는 이 공간을 떠난다. 그리고 쎄실은 규칙적이고 다소간 규율적인 안느의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며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불행하게 생각한다.


쎄실은 안느와 아버지를 떼어놓을 계획을 세운다. 휴양지에서 만난 자신의 연인인 씨릴과 엘자를 포섭하여 아버지 레이몽의 질투심을 유발하고 자신 역시 엘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공부를 뒤로하고 씨릴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미래와 관련해 안느와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 뒤에 안느는 결국 좌절하며 떠난다. 그리고 쎄실은 그 순간 자신의 미래가 불행해질 것을 깊이 예감한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장면은 안느가 떠나는 장면이다. 안느라는 우아하고 세련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 일순간 감정이 무너지면서 눈물을 흘린다. 쎄실과 레이몽을 뒤로하고 불안한 걸음으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떠난다.


 

그때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내가 어떤 관념적 실체가 아니라 살아 있고 느낄 수 있는 인간에게 도전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약간 신비로운 소녀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 다음 처녀가 되고 여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40대였다. 고독했다.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했다.(『슬픔이여 안녕』 범우사 本, p179)

 


이 장면이 충격적인 이유는, 안느가 이 장면 전까지 한번도 불안한 인간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쎄실은 안느로 인해 아버지와 자신의 낭만적인 생활이 무너졌다고 생각을 해왔지만, 사실은 오히려 안느를 통해 그들의 생활이 일종의 평형에 도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레이몽과 쎄실은 내일이 없는 삶, 당장에 쾌락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안느는 그들에게 한계선을 제시해주었다. 쎄실의 어리광과 안느의 규율이 타협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안정적으로 지켜졌는지도 모른다.


프랑수아즈 사강 특유의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굳게 있어줄 것 같은 인물이 끝내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항상 충격적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폴의 진정한 사랑이 되어주려 도전하던 시몽이 결국 좌절하고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운다. 이십 대 중반의 젊고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한 남성은 사랑에 좌절하는 순간, 그 모든 매력이 사라진 한 명의 어린 아이가 되어 흐느끼며 운다. 『슬픔이여 안녕』에서는 안느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 언제나 굳건할 것 같던 안느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영원히 함께 해줄 것 같은 대상에서 영원성을 파괴해버리고 그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 장면은 너무 그럴듯해서 독자들까지 불안감에 빠뜨린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그 관계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 좋은 관계, 혹은 좋지 않은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관계에 집착하거나 관계를 정리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며 안느의 엄격함과 안전함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서술자 쎄실의 발화와 함께하며 안느의 견고함을 믿었고, 안느가 떠나는 순간 나 역시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소설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나의 현실 세계에까지 전이되는 압도적인 불안감.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슬픔이여 안녕』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오래 기억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 소설의 제목이자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작별 인사의 안녕(adieu)이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bonjour)에 해당한다. 슬픔과 작별하는 이야기라 막연하게 예상하며 이 책을 집어 들었던 나로서는 이 마지막 문장 ― 정확하게는 마지막 문장의 ‘안녕’에 달려 있던 주석 “이것은 헤어질 때의 인사가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입니다.” ―을 읽고 또 한 번의 좌절을 느꼈다. 『슬픔이여 안녕』은 슬픔과 조우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견고한 시스템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실상 연약한 인간을 뿐임을 알려주는 이야기. 그래서 독자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더더욱 생각하고 배려하고 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불안이라는 한 가지 희망을 비로소 떠올리게 된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첨언하고자 한다. 『슬픔이여 안녕』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던 중 백유진 에디터의 글을 보았다. 백유진 에디터는 주인공 쎄실의 내면적 고민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다루었다. 해당 오피니언을 읽은 것이 이 훌륭한 소설을 다루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이 글을 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슬픔이여 안녕』 내에서 다루고 싶은 장면은 서로 달랐지만, 백유진 에디터의 글이 없었더라면 이 글을 쉽게 쓰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들이 『슬픔이여 안녕』을 재미있게 읽는 데 나의 글이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관심 있는 독자들은 백유진 에디터의 글도 찾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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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픔이여 안녕>의 장면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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