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흘러가는 매일 속에 남은 삶의 편린들: 도서 '시간 블렌딩'

글 입력 2020.10.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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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제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의내리고 활용하기 시작한 것일까? 현존하는 수많은 개념과 현상들 중에서도 시간만큼 오묘한 개념이 없다. 시간은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이 가능한 개념이다. 시간을 세는 방법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표기하는 태양력과 태음력처럼 시간은 인간의 자연과학적인 사고력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동시에 시간은 아주 순수하게 인문학적인 의문을 심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제이기도 하다. 시간의 방향성은 고정되어 있더라도, 인간의 사고는 시간을 넘나들며 그 모든 시간의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시간이라는 것은 인류가 인지한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제대로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발전적인 계획으로 가득 채우고 그것을 성실하게 달성해나가는 생활을 꾸준하게 해 나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예 안하거나, 적당히 했지만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물론 모두가 그런 성실한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누구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 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의 시간활용에 대해 항상 자문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문조차도 버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내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어버리는 순간이, 분명 인생에 한 번쯤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땐 진정한 여유가 필요하다. 지나간 것을 자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수 있는 그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 영진은 도서 "시간 블렌딩"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책갈피를 끼웠던 순간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 책 소개 >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나간 어제를 커피 한 잔처럼 

맛있게 마실 여유가 아닐까


문득 어제, 오늘, 내일 사이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길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시계는 한치도 틀림없이 제시간에 맞게 가고 있는데, 내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일상 속에 파란 선인장처럼 다가올 글과 그림. 

버거운 하루를 견디기 어려울 때, 이 책을 권한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사실은 커피 한 잔을 맛있게 마신다는 표현에 공감하지 못했다. 커피는 항상 쓰고, 속을 쓰리게 만들고, 또 내 잠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한 잔 마셔 본 커피의 소감은 '맛없다'였다. 도대체 이걸 왜 먹지? 얼굴 찌푸리는 나에게 맞은 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너도 좀 더 크면 다 먹게 될 거라고 말했다. 아직 어른이 덜 되었다고 말이다. 그럼 나는 아직도 애인가보다. 대학 졸업한지는 이미 오래 됐고 회사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는 지금도 커피를 거부하는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않은 셈이다.


수많은 기호식품 중에서도 커피만큼 사람들이 사랑하는 게 있을까? 아침에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커피는 중독성이 정말 강한 것 같아보인다. 맛있지 않은 걸 계속 먹다보니 맛있게 느끼게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꽤 많은 걸 보면 커피는 정말 잠을 깨게 하는 것, 마시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채워주고 있나보다. 그렇게 매일같이 찾게되는 무언가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궁금하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대로 남아있고 싶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맛있는 것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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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커피를 비롯한 음식을 통해 하루하루의 편린들을 남긴 것을 보니, 나도 내가 카페에서 먹었던 맛있는 것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마실 것과 함께 시키는 디저트는 언제나 내 기분을 환기시키는 좋은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외국에 가도 꼭 로컬 카페를 찾아가보곤 했다. 물론 외국에선 티 종류조차 없이 커피 종류만 팔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커피를 시키는 경우들도 왕왕 있었지만, 디저트를 먹으면 그 소태같은 커피도 조금이나마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카페 문화가 정말 많이 발달한 것 같다. 카페 점포의 수도 많을 뿐더러 한 매장에서 파는 음료도 커피 외에 다양한 음료들과 디저트들을 함께 팔고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한국사회에 커피 한 잔을 즐길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 조금 서글프게도 그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바빠서 다른 여가를 즐길 새가 없기 때문에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 수다 떨며 환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커피를 마신다는 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카페를 가는 건 이제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다. 친구를 만날 때건 애인을 만날 때건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카페를 간다. 약속일 때에만 카페를 가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 산책 나갔다가 돌아올 때, 혼자서 공부하고 싶을 때에도 우리는 카페를 간다. 이젠 하도 카페를 많이 다니고 하다보니 홈카페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커피머신을 집에 들이고, 멋들어진 잔을 사모으고, 예쁘게 플레이팅해가며 자기 자신에게 맛있고 좋은 것을 대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젠 커피가 음료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에게 사교코드가 되었고, 자가재충전의 기제가 된 것이다.


블로그에서 시작해서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수많은 SNS들이 이런 변화를 부채질했다. 커피는 재충전의 시간이나 사교의 코드 외에도 이제는 힙스터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까지했다. 원래의 힙스터는 대중문화를 따르지 않고 고유한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의 힙스터는 최신 유행을 잘 알고 좇는 사람을 말하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공간의 분위기, 주어지는 음료와 디저트의 화려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맛까지 갖추어져 있다면 그런 카페에 열광하는 힙스터들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처럼 커피 한 잔은 우리에게 음료 그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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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저자 진영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에 그려진 자신의 생각들을 책으로 엮어낸 것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대목이다. 음료를 마실 때면, 누구나 그 음료를 자연스럽게 넘겨보내기 위해 하던 행동을 잠시 멈추게 된다. 그 잠깐의 시간, 찰나같은 순간들을 쌓으면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피워낼 수 있고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먹을 것으로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방식 역시 참 재미있다. 무엇을 먹느냐의 여부는 아주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보편타당한 것이다. 누구나 하는 행위로부터 컨텐츠를 발굴해나가는 것은, 적어도 그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확보한 듯한 느낌이다. 거기에 그것이 커피라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내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지? 그러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알면서도, 나는 그 시간을 건설적인 계획으로 꽉 채우기보다는 대략적인 계획만을 세우는 데에 그쳤고 심지어 그 계획을 매번 다 이행하지도 못하며 지내왔다. 시간을 주체적으로 세워서 보내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나를 보내는대로 부유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늘 프레스토로 살 수는 없다. 교향곡에서도 느긋한 노래악장이 있듯이, 인생에서도 라르고와 안단테가 있어야 더욱 풍요로운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지금 한 악장 이상을 천천히 가져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계도, 내 시간도 잠시 방향을 잃었던 거라면 나는 이제 다시금 방향을 잡고 달려나갈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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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들 위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어떤 에세이를 읽느냐에 따라서 아주 완전한 공감을 바탕으로 글을 읽어내려갈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 그대로 글이 이어지다가 책을 덮게 되기도 한다. 에세이는 완전히 작가 개인을 녹여낸 글이기 때문에, 그 글을 접하는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시간 블렌딩"역시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다를 것 같다.


저자 진영이 남긴 글들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글은 그의 경험과 생각일 뿐이다. "시간 블렌딩"을 읽어가는 독자는 그저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꼭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당신의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


 



시간 블렌딩

- 어제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


저자: 영진


분야: 국내 에세이 > 그림/사진 에세이


사양: 152*225 신국판, 무선제책, 192쪽, 4도


가격: 13,000원


출간일: 2020년 10월 1일


ISBN: 979-11-90545-06-8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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