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일까?
글 입력 2020.10.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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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이고 선명한 붉은색, 그러나 그것이 진짜일까?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놀이공원에서나 볼 법한 과한 리액션의 안내원이 나를 반겼다. 저 정도 리액션이라면 연극배우를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즈음에 나는 그 사람이 진짜 안내원이 아니라 극 중 안내원을 맡은 연극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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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이렇게 연극과 객석, 배우와 관객, 현실과 비현실을 마구 뒤섞는 극의 형식으로 '본질'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극장 초입 우리를 반기던 안내원은 사실 연극배우였고 극장 중간중간 빈자리는 사실 배우들의 자리였다. 또 연극 안의 연극(마임극)은 더한 혼란을 주어 마임극과 무대 위 상황 중 어느 것이 진짜 연극일까 질문하게 한다.

 

극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휴대폰 분실사건의 범인이 당연히 중년 여성일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극 중 '여배우'가 진실되고 수줍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 모든 것은 '의심'으로 바뀐다. 누가 진짜 휴대폰 범인일까? 어떤 것이 극 중 배우의 진짜 모습일까?

 

연극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모든 철학적 사유의 근간인 '당연한 것들을 향한 의심'을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 선명한 색감과 예술적인 마임극으로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킨다. 진실된 자아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짜인가. 눈 앞의 것들을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의심들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에 나는 문득 데카르트가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하고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 기억났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가 결론짓기에 생각하는 나를 자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나'만큼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은 그마저도 의심한다. 극의 마지막, 격정적인 춤을 추며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 기억이 진짜로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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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진행되는 내내 온통 선명한 빨간색을 강조한다. 극 중 빨강의 의미는 우리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선명한 빨강은 사실 없다. 극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하고 숙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여성학적 관점에서는 아쉬운

 

다만 여성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우선 '여'배우, 도둑'년', '된장녀' 등 여성 비하적인 워딩이 거침없이, 그리고 불필요하게 남발되는 부분부터 흠칫 놀라기 시작했다. 극 중 '여배우'는 소위 말하는 '꽃뱀'처럼 묘사되는데 이것 역시 인간 본질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기 위한 장치였다기엔 성찰이 더 필요한 지점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또 극의 마지막, '여배우'가 자신의 본질에 혼란을 느끼며 추는 격정적인 춤에서도 내내 '엄마' 탓만을 하는 바람에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관람했던 지인은 후배 작가의 스토킹과 폭로가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스토킹 피해자들이 관람했다면 충분히 괴로울만한 요소들이었다고. 나 역시 동의했다. 극 중에서 그간 그녀의 뒤를 캐고 다닌 후배 작가의 모습이 주인공의 이중적인 모습을 폭로하는 장치로만 쓰여 자칫 스토킹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또 여성학적인 아쉬움뿐만 아니라 현 작가가 나와서 설명해주는 식의 연출은 너무 과하게 친절해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다. 연극 이후 상영된 영화 '누굽니까' 역시 연극 내용의 축소뿐인 데다 연극보다도 덜 정제된 느낌을 주어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주인공 '여배우'를 맡은 배우 장하란 님이 위의 아쉬운 부분들을 상쇄시킬 만큼 멋진 연기력으로 모든 것을 승화시켰다. 소위 '하드 캐리'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극의 마지막, 자신도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이라는 존재 속에서 혼란을 느끼며 격정의 춤을 춘다는 연출 역시 자칫 촌스러울 뻔했는데 장하란 배우의 소름 돋는 연기로 마임과 함께 극의 예술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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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내용과, 기존의 연극 형식을 파괴하고 무대와 관객의 경계 허무는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멋진 연극이었다. 다만 다음 극을 올릴 때엔 여성학적 관점에서 좀 더 숙고하고 수정한다면 훨씬 근사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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