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7. 내가 아는 사람의 노동이 아른거려서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다.
글 입력 2020.10.26 11:09
댓글 2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 <내가 아는 사람의 노동이 아른거려서>로 이어갑니다.

 

*

 

최근 일어난 과로사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니까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했다.

 

자고 일어나면 와 있는 배송의 뒤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주6일 동안 일하는 내 친구 H가 있었다. H는 누적해서 쌓이는 인센티브 때문에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 6일을 일했다. 그리고 내가 있었다.

 

취업이 되기 전까지 쿠팡에서 일했다. 졸업 전까지 인턴으로 모인 돈이 있었지만, 언제 취업이 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쿠팡에 있으면서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고 느꼈다. 비밀의 방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마스크를 두겹으로 쓰고 방한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고 영하 18도의 냉동창고에서 물품 갯수를 셌다. 속눈썹이 눈이 내린듯 하얗게 얼었고 목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찢어질 듯 아팠다. 마스크 안에는 물이 생겼다. 처음에는 재채기 때문에 생긴 침인줄 알았으나 내 숨과 냉동창고와의 온도차 때문에 나타난 결로 현상이었다.

 

8시간동안 한번도 앉아있지 못했다. 바닥이 딱딱하고 무거운 안전화를 이끌고 걷다보면 종아리와 허벅지가 곧 분리될 것만 같았다. 관리자는 재촉하기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조금만 빨리 하자고 말끝을 흐렸고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다리로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걷다보면 오십 판 정도 되는 계란이 담긴 지게차를 끌고 걸어가는 사람, 박스를 접는 사람, 박스에 물건을 담아 포장하는 사람, 포장된 박스를 택배차에 싣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새벽 4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집앞에 쿠팡차가 보이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럼에도 두 번을 더 나갔다. 내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월세를 못내서, 가스비를 못내서, 전기세를 못내서, 핸드폰 요금을 못내서, 커피 한잔 마실 돈이 없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됐으면 아마 아직까지 나갔을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여기보다 돈을 잘 주는 데는 없었기 때문이다.

 

욕조에서 웅크려 죽은 채로 발견된 故 장덕준씨는 27살이다. 나랑 한 살 차이다. 내 친구 H와는 2살 차이다. 그가 한번에 옮겨야 하는 물건 무게가 1t에 가까웠는데 '로켓배송'이라는 쿠팡의 특성 때문에 쉬지 않고 몇 시간씩 힘을 쏟아야만 했다고 한다. 계란을 끌고 가던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카트에 토트를 얹어 주던 사람이, 카트를 끌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의 어머니는 "덕준이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만보기에 기록된 하루 걸음 수가 무려 5만보였다. 그래도 1년만 더 일하면 정규직 도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업체의 말마따나 물론 한 사람의 선택을 강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가는 일터를 죽음으로 가는 일터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

 

비단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2
  •  
  • 똘이누나
    • 새벽배송 알림 메시지는 항상 4시-5시에 와있어서 이 노동의 이면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는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계속 발생하는 모 회사들의 기사님들 과로사, 엘리베이터를 타다보면 택배박스가 한가득 쌓인 기사님들의 카트를 보며 내가 아깝다고만 생각했던 2500원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 이런 경험에서 담긴 글이 또 생각에 빠지게 하네요. 노동의 가치만큼, 존중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더불어 에디터님의  취업을 축하드립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좋은 글을 써주길—
    • 0 0
  •  
  • 한슬아
    • 무언가 편하게 얻어진다면, 힘들게 가져다준 자가 있음을.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