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와 기억으로 훑어나가는 허구 속 진실 -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0.10.2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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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구에서 마주하는 진실



현재가 고통스러울수록 인간은 이상향을 만들어 내어 현실을 살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이상향은 말 그대로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곧, 닿을 수 없는 희망을 의미하죠. 실재하지 않는 희망은 허구이므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진실을 가리는 ‘거짓’의 존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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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가의 ‘이어도’ 역시 제주도민들에게 희망의 섬으로 묘사됩니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에 대해, 그들이 이어도에 갔다고 믿으면서 자신도 언젠가 이어도로 가겠노라 꿈꾸며 현재를 살게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간 사람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어도는 실체가 없는 유토피아이자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낙원으로 인식됩니다.


실제로는 수중 암초로 드러난 이어도의 부재는 천남석 기자의 실종으로 되살아납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현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제주도민들이 다시 소망의 세계에서 살게 해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어도는 수중 암초라는 사실로써 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희망’으로써 실재하는 섬입니다. 그래서 이어도는 제주도민들에게 소망의 세계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현상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어도의 제주도 사람들은 사실을 외면하고 허구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일까요? 이청준 작가는, 우리가 때로는 가시적인 ‘사실’보다는 ‘허구’에서 진실을 만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어도가 있어줬으면 좋겠다. 한 개인의 내면사와 그가 실존하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 속에 우리는 가장 절실한 우리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청준

 

  

<새들의 무덤>을 쓰고 연출한 하수민 연출가(작가) 역시 이 허구의 힘을 믿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수민 연출가는, 연극이란 무대 위 허구의 세계에서 신명 나게 살아 움직임으로써 객석이라는 실제 세계와의 독특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무대 위의 허구, 즉 희망이 모두 사라진 후 객석이라는 현실에 남는 것이 바로 ‘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들의 무덤>의 주인공 ‘오루’는 딸을 잃은 후 새 한 마리를 만나 과거 기억에 대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오루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꿈꿉니다. 이 극에서 희망은 곧 허구를 의미하지만 (기억이라는 추상을 쫓아가는 이 극의 플롯처럼), 그 희망은 단순히 막연한 기대감에 의한 것이 아닌, ‘삶을 살게 하는 진실’과 마주하는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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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따라가는 오루의 여정은 과거와 기억을 되돌아봅니다. 동시에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지금, 여기,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살기 위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지금껏 자신의 기억과 현재를 마주하게끔 인도해 준 새를 날려 보내며 오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날아가야지,

이제 날아서 집에 가야지.”

 



2. 모순된 근현대사, 모순된 '새 섬'


 

한국의 역사를 한 개인으로 압축한다면 그 인물이 바로 ‘오루’일 것입니다. 그래서 극은 미시적으로는 한 개인의 기억과 함께, 거시적으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훑어 나갑니다.


오루의 고향인 진도 어촌마을에는 이어도처럼 꼭 가기를 꿈꾸지만 두려운 ‘새 섬’이 있습니다. ‘어머니처럼 아름답지만 짐승처럼 잔인하게 너를 삼킬’ 새 섬은 이처럼 모순투성이이지만, 그것은 오루가 지나온, 아니 어쩌면 오루를 포함한 우리의 아버지들이 지나온 한국의 근현대사가 모순으로 점철된 역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극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가령, 지주 노릇을 하는 아버지 ‘수학’에게 일제나 다름없다고 비난하던 아들 ‘수필’은 곧 자신도 지주 행세를 하게 되고, IMF로 ‘태봉’이 봉직 공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순간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새 섬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희생당하고 죽어간 이들의 시체가 쌓여 거대한 무덤의 형상으로 떠오릅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이었음을, 이 극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순수하게 고향 마을을 지키고 싶었으나 역사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음을 알게 된 판수가 달동네 철거 운동에 앞서 집을 얻은 것처럼 말이지요. 이들 모두가 그 시대를 지나 새들의 무덤 위에 쌓인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새들의 무덤 안에서, 살아있는 새 한 마리가 오루를 인도합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는 이 여정은 오루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곧 변화의 계기를 가져오는 미래의 희망으로 변주합니다. ‘새 섬’이 허구의 섬이듯이 오루의 희망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지만, 진실에 가닿은 그에게 새 섬은 다시금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현상의 세계’가 됩니다.


이청준 작가의 말처럼 저 역시 하나의 희망을 품어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도’가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이 비록 역사의 모순으로 얼룩진 ‘새 섬’, 실재하지 않는 허구라 할지라도  그 허구가 때로는 진실로 인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현실을 살게 하는 힘으로, 새로이 미래로 나아가게끔 하는 희망으로 변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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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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