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나지 않은 전쟁, '낯선 전쟁' [시각예술]

한국전쟁 발발 70년, 국립현대미술관 <낯선 전쟁>으로 돌아보는 전쟁의 기억
글 입력 2020.10.2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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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2020년 6월 25일부터 11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낯선 전쟁 Unflattening》 전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징병제가 시행되고 있는 한국은 전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국가이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빠르게 형성되었다 빠르게 흩어진다. 전시 명 ‘낯선 전쟁’은 뉴스, 인터넷 기사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오늘날의 전쟁은 개인적인 체험으로 실감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낯선 전쟁》 전은 <낯선 전쟁의 기억>, <전쟁과 함께 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의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김성환, 이응노 등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남긴 전쟁에 대한 기록을 보여준다. 전쟁 발발 후에도 피난길에서, 또는 종군 화가로 활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국외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긴 한국의 모습 등이 전시되었다. 2부에서는 전쟁 이후의, 주로 200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전쟁 이후의 세대가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국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전시의 주제를 한국전쟁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인 범위로 확장한다. 4부에서는 군사주의, 난민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형성하기 위해 전쟁과 관련된 도서가 비치된 독서 공간을 마련하였다. 전시 전체는 전쟁, 평화 등 거대한 개념을 주제로 하지만 개별적인 작품에서는 작가 개인의 경험과 사유, 예술적 시도가 돋보이며, 결국 《낯선 전쟁》 전은 전쟁의 영향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아가 예술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250점의 작품은 전쟁이라는 큰 주제로 같은 전시에 놓였으나, 세부적인 내용과 형식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브제 설치를 통해 공간을 구현해낸 작업들이었다. 한석경, 아이 웨이웨이, 안은미의 작업은 각각 전쟁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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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경, <시언, 시대의 언어>, 2019, 혼합 재료, 650×550×300cm. 설치 일부

 

 

한석경의 <시언, 시대의 언어>(2019)는 한국전쟁 실향민인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생전에 기거했던 공간을 재현한 작업이다. 이 공간에는 개인이 경험한 한국전쟁 이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객은 신발을 벗고 컨테이너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에 마치 잠깐 다른 장소에 온 듯한 생경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실에 설치된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 내부에는 작가의 외조부가 사용했던 물건과 수집했던 자료들이 놓여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북한과 관련된 뉴스 등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인데. 작가의 외조부가 직접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는 함께 놓인 테이프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시청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리 케이스 안에 진열된 것이 아니라 사용감이 있는 서랍, 책꽂이에 진열된 북한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은 이 자료들을 개인이 수집하고 보존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이별해야만 했던 외조부의 삶과 그것을 2020년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현한 작가의 시도를 통해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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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여행의 법칙>, 2017, 강화폴리염화비닐,350x560x1600, 아이웨이웨이 스튜디오 소장,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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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난민과 새로운 오디세이>, 2016, 벽면부착 시트지, 가변크기,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소장. 작품 일부

 

 

중국의 작가이자 건축가, 큐레이터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는 중국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반체제적 작업으로 주목받아 2015년에는 미국의 미술 매체 아트시(Artsy)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작업에서는 사회 고발적인 주제와 거대한 스케일이 두드러지는데, 《낯선 전쟁》 전에 전시된 <난민과 새로운 오디세이>(2016), <여행의 법칙>(2017)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돋보인다. 두 작품 모두 여권을 뺏긴 채 구금 생활을 해야 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로부터 부정당해야 하는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주제로 삼고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전시실을 거의 꽉 채울 만큼 큰 스케일로 제작된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실 벽면에는 고대 이집트 벽화를 연상시키는 벽화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를 자세히 보면 군인과 난민들의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는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은 분쟁과 억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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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타다다다>, 2020, 비디오 설치, 비디오 2채널,컬러, 사운드, 카드보드, 코인라이더, 석탑 기단, 아크릴 프레임에 채색, 가변 크기, 설치 전경

 

 

안은미의 <타다다다>(2020)는 퍼포먼스, 포럼 등의 행사가 진행되는 멀티프로젝트 홀에 설치되었다. 무대에는 비행기, 함선 모양의 장난감 목마가 설치되었고 스크린 너머의 객석에는 관객 대신 사람 모양의 판넬이 설치되었다.

 

이 작업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의문사를 주제로 하는데, 흰색 종이가 깔려 있는 어두운 공간은 군피해장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관객을 대신하는 표정 없는 판넬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한다.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군대 문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 작업은 ‘전쟁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전쟁은 마치 이미 끝나버린, 현재와는 동떨어진 역사적 사건으로만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기억과 그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아직 종결되지 않은 전쟁은 군대 내부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낯선 전쟁》 전은 전쟁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적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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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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