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 - 출판저널 519호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이다'
글 입력 2020.10.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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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의 나는 혼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편하고 익숙했다. 오히려 머리가 클수록 혼자 다니는 게 부끄러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애들 무리 사이에 끼려고 애썼으니까, 아주 어릴 때야 말로 마음이 맑았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혼자 가던 초등학교 도서관은 나만의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이라 소중했다. 방과 후에 도서관에 남는 아이는 별로 없었기에, 손때가 묻은 커다란 테이블을 독차지하며 어린이 도서를 두세 권씩 쌓아두고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오후의 긴 볕이 큰 창으로 들어오고 연한 분홍빛의 커튼이 투명해졌다 짙어졌다 하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기억한다.


그때만큼 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을 좋아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교복을 입은 아이는 책을 골라 읽으러 간다기 보단 시험공부를 위해 책가방을 바리바리 챙겨서 갔는데, 그때부터였는지 도서관은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 아니라 치열하게 수학 문제를 풀고 암기하는, 시간을 십 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수험생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출판저널이 소개하는 '시민들의 삶을 재생해 주는 공간,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을 읽으며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써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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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도시를 새롭게 재건하는 과정에서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복합문화공간을 설계하며 함께 지어졌다.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은 5,270(제곱미터)의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고 50개의 디지털 태블릿과  50개의 터치 패드를 포함한 125개의 컴퓨터 스테이션, 3개의 소닉 의지가 구비된 음악 청취실이 마련되어있다. 이뿐 아니라 DVD와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장착된 스크린 룸까지 준비되어있는 그야말로 신도시에 어울리는 미래형 도서관이다. 내가 이곳의 시민이었다면  단지 자료를 찾으러, 공부하려 가는 게 아니어도 도서관 공간에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의 새하얀 외관은 푸른 하늘과 조응하여 바다에 온 듯 시원한 느낌을 자아낸다. 도서관 건물 내부는 겉의 시원한 느낌을 중화하기 위해 따듯하고 밝은 색상을 배치했다. 곡선으로 이뤄진 탁 트인 도서관 공간은 '일상의 모험을 위한 장소, 모든 연령대가 모험을 할 수 있는 장소이자 그 모험을 공유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따듯하게 내부를 비추며 조화로운 인테리어를 완성하는데, 지적 체험과 심미적 만족감이 충만한 이 공간에서 누군들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까. 멋진 공간에 오래 머물고자 하는 욕구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에서 기인한다.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은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욕구와 지적 앎에 대한 욕구를 함께 만족시키며 언제라도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하지만 정작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도 맘 편히 가지 못하는 일상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로 직접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게 어려워짐에 따라 자연스레 전차책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나 또한 전자책을 구매하는 게 더 이상 차선책으로 느껴지지 않고 태블릿으로 활자를 읽는 일이 어느 때보다 익숙해졌으니, 전 세계적으로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2020년 6월, 미국의 5대 출판사 중 세 곳이' 온라인 도서관 인터넷 아카이브'에 대해 디지털 사본에 대한 손해배상과 해당 사이트의 폐지를 목표로 뉴욕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는 크게 보면 무료 배포를 주장해온 온라인 커뮤니티와 저작권 사업의 기초인 전통 출판사의 싸움으로 언택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터넷 상의 자료열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당연해진 만큼 피해 갈 수 없는 충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아카이브 도서관은 원격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140만 권의 디지털 도서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온라인 국가비상 도서관'을 개설했는데 이는 곧 출판사와 저자들을 자극했고 출판사 측과 인터넷 아카이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양 측 모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어느 때보다 인터넷 아카이브의 혜택을 누린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결국 '온라인 국가 비상 도서관'을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10억 명이 넘는 학생과 교사들의 교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도서관의 공적 의무를 생각하면 인터넷 아카이브 도서관은 시행되어야 마땅한 것 같다. 하지만 출판사 측이 주장하듯, 인터넷 아카이브가 수입이 절실히 필요한 수천 명 작가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인터넷 상의 대량 복사 및 배급이 출판업자들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에 대해 지불하지 않았다면 이를 통해 혜택을 누린 소비자에게도 '무료로 물건을 구할 권리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


출판사 측에서 지적한 부분은 소비자인 내가 꽤나 체감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했다. 실제 책 보다 저렴하고 저장이 용이한 전자책, 언제든지 열람 가능한 교내 온라인 도서관,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수많은 논문과 아티클까지. 월 6500원에 무제한으로 전자책을 열람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신청한 이래로는 웬만한 책은 비싸다고 느낀다. 따로 값을 지불해야 하는 콘텐츠라면 내가 왜 이걸 이 돈 주고 사야 하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 비난할 수 없는 합리적인 발상일 것이다. 미국 출판사와 도서관의 전쟁은 공공서비스란 무엇인가, 창작자의 권리는 빅데이터 시대에 어떻게 보호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혹시 이미 무료로 물건을 구할 수 있다고 훈련된 소비자가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질문을 남긴다.


2020 연중 특별기획 -도서관 이야기에서 사서가 이야기하는 도서관이 기억에 남는다. "도서관의 역할은 늘 변해왔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역시 이용자들이다. 책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는 시기에 도서관은 책을 보관했고, 정보를 요구하는 시대에는 정보를 제공했다. 랑가나단의 도서관 5법칙 중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이다'라는 법칙이 있다. 이용자의 용도와 기대에 따라 도서관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린 시절 여유롭게 머물던 초등학교 도서관, 아름다운 건축으로 머리와 마음을 함께 채우는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 그리고 출판사와 치열한 공방을 펼친 온라인 아카이브 도서관을 생각해본다. 도서관은 고정된 개념이 아닌 성장하는 유기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가깝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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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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