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ir Omnibus [문학]

우릴 태우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글 입력 2020.10.20 20: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1. 계절과 기분을 전달하는데 공기만한 게 없다. 부유하는 비물질, 이를테면 음악과 언어와 향기 역시 공기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몸을 띄운다. 공기를 사랑하지 않고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사랑할 수 없다. 공기가 음악과 입말의 파동을 전달한다. 공기는 적실하고 불규칙하며 적확하고 혼탁한 것이어서 그것이 전달하는 파문에 대해서 무심하다. 말 그대로 공기에는 마음이 없다. 원망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공기의 성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2. 낮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A의 학교로 갈 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A가 우리 학교 쪽으로 오면 그 다음에 내가 A의 학교 근처로 가는 식이었다. A의 학교로 가는 길에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는데, 그날은 작은 크기의 버스가 왔다. 흔들림이 심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어도 손잡이와 차체가 삐거덕 거리는 게 온몸을 통해 전해졌다. 터널을 두 개쯤 지나면서 나는 악몽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본 적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간밤의 꿈을 복기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동안 버스는 캠퍼스 안에서 멈췄다. 나는 종점의 버스에서 내려 A를 기다렸다. A를 기다리며 ‘The Girl From Ipanema’를 들었다. 버스에서 얻은 상상과 회상에 대한 깨달음 때문인지 나른하고 벅찬 기다림 때문인지 그때의 공기는 얼마간 나를 붕 뜨게 만들었다. 그 부양은 나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조금 이동시켜 놓은 게 분명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형 뽑기 기계가 어디엔가 얼굴을 묻고 있던 날 잠깐 집어 올렸다가 놓치는 바람에 다른 틈바구니 속으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나타난 A에게 달뜬 얼굴로 음악을 들으면서 기다렸다고 얘기했지만 내 공기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1번에 따르면 공기는 적실하고 불규칙하며 적확하고 혼탁한 것이어서 그것이 전달하는 파문에 대해서 무심하기 때문에 개별자의 기분을 낳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메신저는 아니기 때문이다. 공기의 공평함은 이렇게 개별자의 곳곳에 놓여있었다.


3. ‘기운’ 속 공기의 함량에 대해

 

내가 일하는 곳에는 빨간 잎 달린 나무가 있다. 나뭇잎은 겨우내 오그라들어 떨어지지도 않고 가지를 꼭 껴안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단풍 같은 잎사귀들은 그제서야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동상이 아닐까 걱정하며 바라본 잎들은 너무도 새빨개서 오히려 화상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기운을 가장 기민하게 느끼는 건 분명 식물일 테다. 식물은 기운에 온전하고 솔직하게 반응한다. 분명 식물의 기운에는 공기의 함량이 높을 것이다.

 

식물에게 기운이란 공기의 동의어에 가깝다. 외부 자극에 따라 내부의 반응이 성기면서 가장 솔직한 생의 표현을 만들어낸다. 추우면 잎이 오그라들고, 바람이 불면 더 단단하게 뿌리로 바닥을 붙잡고, 가장 향기로울 시기에 맞춰 꽃이 피고지고... 공기에 가깝지 않고선 이렇게 솔직하기란 쉽지 않다. 이 솔직함 때문에 식물을 반기고 맞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말없이도 진솔하니까. 식물에게서 정직을 배운다는 건 과장일 테지만 식물을 보듬는 사람에게 식물의 기운이 스며드는 건 꽤나 지당한 얘기인 성싶다. 이렇게 사람의 기운에도 공기의 함량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다.

 


나무.jpg

 

 

4. A는 식물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꽃에 관심이 있더니 점점 식물 전반에 시선을 넓혀갔다. 스토크와 금관화를 선물하던 A는 선물할 수 없는 더 다양한 식물들을 나와 함께 보러가기 시작했다. 그저 식물의 모양새에 감탄을 얹을 줄 만 알았던 나에게 A의 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식물의 기운과 비슷하게 자신의 공기 함량을 늘려갔는데, 나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A가 가진 식물의 기운에 생경함을 느꼈다. 표현할 줄 아는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움츠러든 빨간 잎사귀를 오래 응시할 줄 알 게 된 초봄 즈음의 일이었다.

 

다시 1번의 말을 빌리자면, 공기를 사랑하지 않고서 나는 나의 감정에 솔직할 수 없었다. 공기를 사랑하는 건 누군가의 이해에 가닿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식물과 공기를 둘 다 사랑하기로 했다. 이해말고 사랑을.


5. 공기가 없으면 불이 붙지 않는다

각자의 공기가 없으면 서로 불이 붙을 일도

마음이 연소될 일도 없다

그런데 공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우릴 태우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6. 계절과 기분을 전달하는데 우리만한 게 없다. 부유하는 비물질, 이를테면 음악과 언어와 향기 역시 우리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몸을 띄운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음악과 입말의 파동을 전달한다. 우리는 적실하고 불규칙하며 적확하고 혼탁한 것이어서 그것이 전달하는 파문에 대해서 유심하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다. 원망하기도 바라기도 하는 우리의 성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조원용 에디터.jpg

 

 



[조원용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7599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