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新)데렐라 남자친구 [TV/드라마]

글 입력 2020.10.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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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뭘까? 아마 대다수가 노란 머리에 푸른 드레스를 입은 디즈니의 신데렐라(1962)를 떠올릴 것이다. 신데렐라는 디즈니 프린세스 사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인기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일까? 2019년인 지금까지 수많은 신데렐라들이 등장했고, 또 등장하고 있다.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에도 올곧게 자란 소녀가 사랑을 통해 Happily ever after 하게 됐다는 감동적인 동화 속 이야기와 달리 안타깝게도 지금의 신데렐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멸칭이 됐다. 국회의사당 폭파 사건으로 환경부 장관에서 한순간에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에 앉게 된 박무진(지진희 분)을 두고 '청와대 신데렐라'라 수근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 많은 대중 매체 속의 '신데렐라'는 완벽한 왕자님을 만나 사랑의 힘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할리퀸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사랑만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어낸 신데렐라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비난 역시 사랑의 장애물에 불과하기에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사랑은 빠질 수 없는, 빠져서는 안되는 필수 요소다. 이러한 대중 문화 텍스트들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지만, 신데렐라 로맨스는 여전히 성행 중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특별한 신데렐라 로맨스와 함께 한국 할리퀸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업계 1위의 호텔 대표인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아 숨 한 번 마음대로 못 쉬고 살았다. 뭐 하나 마음대로 선택한 적 없는 인생에서 변화는 예상치 못한 순간 시작됐다. 출장지에서 만난 맑고 순수한 영혼과의 우연한 만남. 그 우연이 인연으로, 다시 사랑으로, 그를 변화하게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어딘가 결여된 주인공과 가난해도 순수한 마음만은 지키고 살아가는 또 다른 주인공은 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작년 11월에 방영한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2018)의 줄거리다. 드라마 남자친구는 쿠바 올로케 촬영과 함께 배우 송혜교, 박보검이 주연을 맡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종영 당시 8%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마무리를 맺었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와 함께 탄탄한 마니아층을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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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마니아'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드라마는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로맨스 서사의 특별함에 있다. 기존의 신데렐라 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남자친구>의 로맨스는 호텔 대표인 ‘그 ’로 차수현(송혜교 분)이 등장하면서 그 전형성을 배반한다.

 

1화 도입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수현의 삶을 한 줄로 정리하면 ‘예쁜 얼굴로 재벌가에 시집가서 위자료로 호텔을 받은 이혼녀’다. 정치인 아버지, 좋은 대학, 뛰어난 두뇌, 아름다운 미모. 수현은 남부럽지 않은 배경과 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인형으로만 살아왔고, 또 살아야만 하는 인물이다. 위자료로 받은 동화 호텔은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수현의 예쁜 얼굴이 정치인 아버지를 성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것처럼, 수현 역시 동화 호텔 대표라는 사회적 직위를 이용해 자신을 억압하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수현의 호텔 대표직에는 ‘태경 그룹 이미지에 결점을 남기는 불상사가 발생할 시 다시 반환한다.’는 매우 불합리한 조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현은 호텔 대표의 직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통제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진혁은 과일 장수 아버지를 둔 평범한 집안의 아들이다. 진혁 역시 좋은 대학, 뛰어난 두뇌, 잘생긴 얼굴을 가졌지만 수현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사람이 마주한 건 이국의 땅 쿠바에서다. 수현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지에서, 진혁에게는 취준생의 신분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린 사치가 될 여행지에서.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낯선 도시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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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대표와 신입사원 같은 신분의 차이는 신데렐라 물의 필수 요소다. 여기에 전혀 다른 두 인물의 성장 배경은 둘의 관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수현의 어머니는 진혁을 협박하고, 주변 사람들은 호텔 대표와 만나는 진혁을 두고 수군거리기 바쁘다. 진혁의 어머니는 이 사랑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확신하며, 수현에게 제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낮은 자세로 부탁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보면 남자친구의 로맨스는 성 역할 반전의 신데렐라 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남자친구는 신데렐라 로맨스로 대표되는 전통적 할리퀸 로맨스보다 현대 할리퀸 로맨스에 더 부합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 할리퀸 로맨스의 핵심은 "여성 주인공이 실제적으로 이야기를 이끌며, 강하고 21세기 여성에 어울리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여성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통해 감정적 마찰이 일어나며,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특징이다. 하지만 남성 주인공은 여전히 강하고 카리스마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거나 수입이 넉넉해야 한다. 이러한 설정은 전통적 할리퀸 로맨스에서 반복되어 온 수동적인 여성상의 문제를 보완 하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왕자님과의 로맨스를 통해 현대판 동화를 추구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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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할리퀸 드라마 역시 시대상의 변화와 함께 계속해서 변모해왔다. 2000년대 초까지는 전통적 할리퀸 로맨스를 따르는 작품이 많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3)에서 뚱녀로 묘사되는 김삼순(김선아 분)과 잘생긴 준재벌 2세 현진헌(현빈 분)의 로맨스와 평범한 여성 강태영(김정은 역)이 까칠한 재벌 한기주(박신양 분)와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되는 파리의 연인(2004)이 대표적인 전통적 할리퀸 로맨스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높은 학력과 경제적 능력을 바탕으로 결혼과 출산 대신 커리어를 택하는 골드미스가 등장하면서 한국의 할리퀸 드라마 역시 변화하게 된다. tvN에서 방영한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2011- 2014)가 이러한 추세를 잘 반영해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30대 여성의 사랑과 결혼, 일과 우정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시즌 3까지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전의 할리퀸 드라마와 달리 남성과의 로맨스만큼 우정이 서사의 핵심으로 등장하며, 여성의 사회적 성취도 중요한 요소다. 또 남성 주인공이 ‘완벽한’ 왕자님이 아니라는 점 역시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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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여기서 진일보한 형태의 할리퀸 로맨스를 보여주고 있다. 성 역할이 반전된 전통적 할리퀸 로맨스와 현대 할리퀸 로맨스가 결합 되면서 여성의 능력이 부각되는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기존 할리퀸 드라마에서 골드미스로 대표되는 여성 주인공의 결핍은 이성과의 로맨스다. 하지만 수현의 결핍은 억압된 환경에서 기인한다. 진혁은 그런 수현에게 로맨스를 통해 감정적 도움을 주는 서포터의 역할을 맡는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로맨스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애정 관계를 통한 수현의 성장 서사까지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로맨스를 두고 혹자는 현실성이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아직 우리는 능력 있는 남성과 사랑에 목마른 어린 여성 간의 로맨스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뷰티 인사이드(2015)에서 신부 지망생 류은호(안재현 분)의 집에 쳐들어가 “아드님을 저한테 주십시오.”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항공사 대표 강사라(이다희 분)에 이은 차수현의 등장은 한국 할리퀸 드라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제 할리퀸 로맨스 속에서 진짜 할리’퀸’이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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